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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자 궁
 스폰자 궁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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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의 중요 문화유산을 본 우리는 성 도미니크 거리로 간다. 그곳에 성벽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기 때문이다. 가면서 보니 왼쪽으로 스폰자 궁이 보인다. 이 궁전은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결합된 건물로, 1520년 지어질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건물 1층 앞쪽으로 회랑이 있으며, 건물 안쪽으로 사각형의 안마당(中庭)이 있다.

이 건물 자리에는 원래 1296년에 지어진 세관이 있었다. 디보나(Divona)라 불리던 이 건물은 궁전을 건축하면서 사라졌지만, 그 업무와 정신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궁전 1층에 상품을 평가하는 사무실, 창고, 조폐국이 있었고, 2층에는 상인들이 만나고 거래하는 방이 있었다. 이들 상인의 정신은 건물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법은 저울의 눈금을 속이는 것을 금한다. 상인들아, 상품의 무게를 달 때 정직하게 계량을 해라. 그리고 잊지 말아라. 신께서 항상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성곽 밖의 항구
 성곽 밖의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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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자 궁은 항구에 연하고 있어 두브로브니크가 해양무역으로 번성할 때 가장 각광을 받던 건물이었다. 현재는 국립 문서보관소가 되어, 두브로브니크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문서와 자료들을 보관·전시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자료로는 1022년의 것이 있으며,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20세기 자료가 있다. 이들 자료의 언어는 라틴어, 이탈리아어, 크로아티아어가 가장 많으며, 터키어, 에스파냐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도 있다.

이제 성곽을 나와 옛날 항구로 간다. 성곽과 방파제에 둘러싸인 항구로 15세기에 처음 만들어졌다. 항구에는 요트가 대부분이고 어선과 여객선이 몇 척 보인다. 이곳에서는 카브타트와 로크룸으로 이어지는 연안 여객선이 운행한다. 항구의 동남쪽 성곽 돌출부에는 해양박물관과 수족관이 있다. 항구에 정박한 하얀색 배들과 파란 바다가 여름 햇살에 반짝인다.

두브로브니크 시가지를 조망하다

도미니크 수도원
 도미니크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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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을 한 바퀴 돌기 위해서는 성곽 동쪽에 있는 출입구로 올라가야 한다. 가이드가 성곽을 돌 사람들을 파악해 입장권을 끊으러 간다. 입장료는 70쿠나(Kuna)로 유로로 계산하면 10유로다.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우리는 기꺼이 10유로를 투자한다. 두브로브니크에 한 번 와 본 적이 있는 권순긍 교수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두브로브니크라면, 두브로브니크의 하이라이트는 성곽일주라고 말한다.

성곽으로 오르니 항구가 한 눈에 조망된다. 항구와 로크룸 섬 사이에는 대형 크루즈선이 정박해 있다. 성곽길은 북쪽으로 가면서 계속 오르막이다. 그것은 성곽의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기 때문이다. 성곽의 동북쪽 모서리에는 도미니크 수도원이 있다. 14~16세기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667년 지진으로 파괴된 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도미니크 수도원은 수도원 기능을 하고 있을뿐 아니라, 두브로브니크 출신 위인들의 무덤으로, 박물관과 미술관 같은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와 바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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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수도원 북쪽 성곽 너머로는 슈르드(Srd) 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보인다. 이제 우리는 북서쪽 모서리에 있는 민체타 타워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남쪽으로는 우리가 이미 보았던 종탑과 대성당 그리고 성 블라호 교회가 우뚝하고, 빨간 지붕이 태양빛을 받아 더욱 강렬하게 빛난다. 성곽 너머로는 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날씨까지 좋아 그 풍경이 더 인상적이다. 빨간 지붕 사이로 보이는 골목길에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이곳은 최근에 탤런트 고현정이 모 회사의 커피 광고를 찍어 더 유명해졌다.

두브로브니크 성곽은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 12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14~15세기에 현재와 같은 성곽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그 후 17세기까지 확장되고 증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곽의 전체 길이는 1940m고, 높이는 25m에 이른다. 성곽 서쪽에 원형의 대형 보루 겸 타워가 세 개 있고, 성 전체에는 14개의 좀 더 작은 타워가 있다. 그리고 방어용 요새가 5개 마련되어 있다. 이 성곽을 포함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민체타 타워
 민체타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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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 전체를 조망하기에는 민체타 타워가 가장 좋다. 이곳은 성 전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할뿐만 아니라 타워 위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타워는 원통형이며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1층에 올라가니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책자도 있고, 향주머니도 있고, 모자와 티셔츠도 있고, 핸드폰 줄도 있다. 이곳에서 2층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오르면 방어벽이 있는 조망대가 나온다.

여기서는 지금까지 걸어온 북쪽 성곽길과 앞으로 걸어갈 서쪽 성곽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보면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의 빨간색 지붕과 그 너머로 보이는 아드리아해의 파란색 물빛이 멋진 대비를 이룬다. 건물 중에는 프란시스코 수도원이 눈에 띈다. 그것은 수도원이 워낙 크고, 지붕의 색이 황갈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두브로브니크의 빨간 지붕은 대개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때 파괴된 것을 새로 해 올렸기 때문이다. 원래의 지붕은 수도원 지붕처럼 색깔이 퇴색해 황갈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지붕에서까지도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과 나란히 걷다

북쪽 성곽길에서 바라 본 두브로브니크와 바다
 북쪽 성곽길에서 바라 본 두브로브니크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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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성곽길을 따라 가면서 보니 필레문을 통해 관광객들이 계속 성안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우리처럼 오노프리오 분수를 보고 프란시스코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서쪽 성곽길의 남쪽 끝에는 보카르 보루 겸 전망대가 있고, 거기까지 성곽길이 똑 바로 이어진다. 서쪽 성곽길은 성곽 안과 밖을 나누기 때문에, 서쪽에 펼쳐진 필레 지역을 조망할 수도 있다.

보카르 전망대에 이르니, 무리를 이룬 카약 떼를 볼 수 있다. 이들은 카약과 스노클링을 즐기는 관광객들이다. 로브리에나치 요새 앞바다에서 출발, 성곽을 한 바퀴 돈 다음 로크룸 섬을 돌아오는 코스로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요금은 1인당 33유로다. 이들 카야커들은 안내자로부터 잠깐 교육을 받더니 2인 1조로 출발한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남쪽 성곽길을 따라 간다. 남쪽 성곽길은 바다와 연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볼 수 있다.

성곽 아래 바다에서의 카약 타기
 성곽 아래 바다에서의 카약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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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성곽길 안의 건물들은 상대적으로 크면서도 서민적이다. 마당에 걸린 빨래도 보이고, 정원도 보이고, 무너진 벽체도 보인다. 바다 쪽으로는 11대의 카약이 우리와 함께 계속 동쪽으로 나간다. 성벽 아래는 거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천연의 요새를 형성하고 있다. 어떻게 나갔는지 바위 아래 바다에서는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리고 바다에는 카약 외에 어선과 유람선이 가끔 지나간다.

이제 아내와 나는 성곽에 마련된 카페에서 잠시 쉬어 간다. 목도 마르고 덥기도 하고, 다리도 피곤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생과일 쥬스와 커피가 가장 많이 팔린다. 우리는 커피를 마신다. 바쁜 가운데 잠깐 여유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이제 카약팀과도 헤어지고 우리는 성곽의 남동쪽길을 따라 걷는다. 이 길은 성 이반 요새까지 이어진다. 요새 위에서 우리는 팔이 없는 젊은이가 보이는 퍼포먼스를 잠깐 본다.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때 팔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데, 주변의 젊은이들을 즐겁게 하는지 모두 박장대소 한다.

성곽 바깥길
 성곽 바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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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성곽길은 항구를 따라 이어진다. 바다에 정박하고 있는 요트들도 아주 가까이 보이고, 종탑도 보인다. 성곽을 완전히 한 바퀴 돈 아내와 나는 종탑 앞 광장으로 내려간다. 이제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주변에서 이뤄지는 퍼포먼스를 살펴본다. 옛날 사람 복장으로 꽃을 바치는 흉내를 내는 사람도 있고, 병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이들 연주자는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 등 소품을 연주한다. 대단한 실력이다.    

다시 스트라둔 거리를 따라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한다. 스트라둔 거리 북쪽의 골목 어딘가에 있는 '라구사 2' 레스토랑으로 간다. 가면서 오랜만에 아드리아해에서 잡힌 생선들을 볼 수 있다. 이면수, 가재, 굴 등이 아주 싱싱하게 생겼다. 그러나 우리는 점심으로 생선을 먹는 게 아니라 육류를 먹을 예정이다. 그런데 음식이 생각보다 늦게 나온다. 나는 잠시 밖으로 나가 골목의 모습을 살펴본다.

아드리아해의 생선
 아드리아해의 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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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는데 길이 아주 좁고 복잡하다. 이곳에 주로 레스토랑과 기념품점이 몰려 있다. 기념품점에는 두브로브니크라는 글자를 새긴 다양한 기념품들이 있다. 엽서, 티셔츠, 모자, 머그잔, 맥주잔, 접시, 화병, 향주머니, 범선, 인형, 술 등 끝도 없다. 사실 해양강국 두브로브니크를 생각한다면 범선을 하나 사는 게 맞겠지만, 부피나 비용 등을 생각해 마음을 접는다. 나는 여기서도 두브로브니크를 소개하는 책자를 하나 산다.

점심을 먹고 나온 우리 일행은 다시 스트라둔 거리를 통해 필레문 쪽으로 간다. 그 반짝이는 대리석 거리에 사람이 조금은 준 듯하다. 아마 크루즈선으로 도착한 사람들이 구시가지를 구경하고 빠져나간 모양이다. 크루즈선을 타고 온 이삼천 명의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오면 시가지가 북적일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래도 여름에는 이 거리가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고 한다.

태극기를 단 외국인
 태극기를 단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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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프리오 분수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두브로브니크 성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를 빠져 나온다. 그런데 이곳에서 태극기와 KOREA라는 글자를 오른쪽 가슴 위에 새겨 넣은 외국인을 만난다. 참 반갑다. 그 옷을 입게 된 자세한 내막을 물어보지는 못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알려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을 한 장 찍고 그와 헤어진다. 이제 두브로브니크와도 헤어질 시간이다. 조지 버나드 쇼는 1929년 두브로브니크를 방문하고는, '당신이 지상 천국을 보고 싶으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잠시 두브로브니크 천국엘 갔다 나온 셈이 된다. 천국, 생각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


태그:#두브로브니크 성곽, #스폰자 궁, #도니미크 수도원, #민체타 타워, #카약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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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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