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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 한국 상황을 정리한 주한 미국대사관 전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 한국 상황을 정리한 주한 미국대사관 전문.
ⓒ 위키리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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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가 미국 외교 전문을 공개한 후, 한국 사회의 관심사 중 하나는 미국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직후 상황을 어떻게 봤을까 하는 것이었다.

최근 위키리크스는 자신들이 확보한 25만여 건의 미국 외교 전문을 모두 공개했다. 이 중 주한 미국대사관이 2009년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미국 국무부에 보고한 전문들에는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에 관한 내용도 있다.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5월 23일, 사실 관계를 중심으로 간략히 자국에 보고했다. 5월 25일에는 장례식 준비에 관한 사항을 중심으로 전문을 작성했다. 미국대사관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엿볼 수 있는 것은 장례식이 끝난 후인 6월 5일에 보낸 두 전문('한국에서 자살(의 의미) : 노무현 죽음의 맥락', '노무현 자살의 정치적 영향')이다.

"노무현 자살은 전설의 소재, 순교자의 소재가 됐다"

'한국에서 자살(의 의미) : 노무현 죽음의 맥락'에서 미국대사관은 자신을 "부패와는 거리가 먼 정치인"으로 내세웠던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아내가 사업가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3월에 인정하면서 지지자와 반대 세력에게 똑같이 충격을 줬다"고 봤다.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던 2008년 2월 "지지율이 28퍼센트에 불과했다"며, 대중이 노 전 대통령 사망 후 매우 비통해하는 모습은 이것과 균형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보고했다.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했다"고 평가했다. "유죄를 입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무현의 자살은 전설의 소재, 심지어 순교자의 소재가 됐다."

미국대사관은 상황이 이렇게 변한 근거를 한국의 역사에서 찾았다. 미국대사관은 "한국 대중의 반응은 자살이 저항의 한 형태였던 이 나라의 역사에서 많은 부분 비롯된 것"이라고 봤다.

미국대사관은 먼저 한국이 2009년 기준으로 OECD 국가들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임을 상기시킨 후, 저항의 의미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로 전태일을 거론했다. 이 대목에서 미국대사관은 "이전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던 학생운동가들"이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소개했다.

미국대사관은 "1970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인 107명이 자살로 저항했다"며 이를 유형별로 분류했다.

"저항을 표현하는 가장 두드러진 (자살) 형태는 분신으로 전체의 73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밖에 11명이 건물에서 몸을 던졌고 8명은 목을 맸으며 6명은 독을 마셨고 3명은 할복했다."

미국대사관은 "이러한 경향이 줄어들긴 했지만 4월 30일에도 대한통운 노동자가 택배기사들에 대한 해고에 항의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덧붙였다. 미국대사관이 거론한 것은 고 박종태씨다. 당시 택배기사들은 건당 운송수수료 30원 인상을 요구하다 대한통운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문자메시지로 통보받았다. 박씨는 이에 맞서다 세상을 떠났다.

미국대사관은 "자살은 현존하는 정치·경제 시스템을 궁극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죽은 사람을 위해 복수하게 만드는" 행동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에서 그런 (형태의) 저항은 어떤 호소를 담고 있는 듯하며 때때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대사관은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노 전 대통령 사건을 진단했다. 미국대사관은 "유서로 볼 때, 노 전 대통령의 의도가 자기 가족의 재정 문제에 대한 검찰 수사에 항의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봤다.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겠다고 느낀 이유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많은 분석가들은 (노 전 대통령이) 심각하게 의기소침한 상태였다는 것을 지적한다"고 자국에 보고했다.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실제로 동기를 유발한 것과는 상관없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민주화 운동 기간 동안 자살로 저항했던 일들을 떠올리게 하고 검찰 수사의 부당함과 현 정부의 이른바 점점 더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부각시켰다"고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자살로 저항했던 이들이 목표했던 것과 비슷한 목표를 이뤘다."

미국대사관(천안함 사건 이후인 2010년 5월 26일 경찰특공대의 장갑차가 배치돼 있는 모습).
 미국대사관(천안함 사건 이후인 2010년 5월 26일 경찰특공대의 장갑차가 배치돼 있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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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로 상처 입은 이명박 정부, 경찰력에 의존"

'한국에서 자살(의 의미) : 노무현 죽음의 맥락'과 같은 날 생산된 전문인 '노무현 자살의 정치적 영향'에서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 사건 이후 한국 각계의 분위기를 정리했다.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노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혐의로 괴롭혀 죽게 만들었다'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했다"고 자국에 보고했다.

"노 전 대통령을 동정하는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이 재직 중에 혹은 퇴임 직후 600만 달러 이상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이 대통령이 정치적 동기로 수사를 하게 했으며, 검찰이 그야말로 노 전 대통령을 괴롭혀 죽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은 4월 30일, 아내와 자녀들이 받은 돈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조사받기 위해 검찰에 소환되는 굴욕을 겪었다"고 보고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정치적 타살", "살인"이라고 주장한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발언을 전했다.

전문에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목소리만 담긴 것은 아니다.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검사들이 노 전 대통령을 여타의 전임 대통령들과 다르게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자국에 보고했다. 이 대목에서 미국대사관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부패 문제로 한때 감옥에 갇히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이 뇌물수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을 거론했다.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수만 명이 모이는 반정부 시위를 시도했지만 경찰이 저지했다"고 전했다.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시도한 시위에 대해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힌 2008년 5~6월의 촛불시위와 유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2008년 촛불시위 때 상황이) 재현되는 걸 방지하기로 결심한 청와대가 대규모 시위를 막기 위해 경찰력에 의존했다"고 자국에 보고했다. 미국대사관은 경찰이 서울광장의 출입을 통제한 사실도 자국에 보고했다.

마지막으로 미국대사관은 노 전 대통령의 인생 역정을 정리했다. 노 전 대통령이 "매우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정규 교육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엘리트주의 사회에서 대학 학위 없이 자수성가한 인물"이며 지역주의에 맞섰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미국대사관은 "스스로 시인한 대로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비전을 실행하는 데 실패"했지만, 새로운 정치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많은 한국인들 사이에는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약속이 실행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영속적인 바람이 있다."


태그:#위키리크스, #노무현, #미국, #촛불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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