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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보금자리주택 홍보관에서 광교신도시 10년 공공임대주택 청약 접수가 이뤄지고 있다.
 5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보금자리주택 홍보관에서 광교신도시 10년 공공임대주택 청약 접수가 이뤄지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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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가명, 75)씨는 5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보금자리주택 홍보관에 들어섰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수원 광교신도시에 짓는 공공임대주택 1순위 청약 접수가 한창이었다. 그는 "전세금도 올려줘야 하는 상황에서 지인이 이곳 청약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서울 장안동에서 전철과 버스를 이용해 이곳까지 오는 데 2시간이 걸렸다.

관련 책자를 보던 그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가장 작은 전용면적 74㎡(29평)형의 임대보증금은 8900만 원이고, 월 임대료는 62만 원에 달했다. 이씨는 "전세보증금 6000만 원짜리 주택에 살고 있고, 5남매 자식들로부터 받는 용돈이 50만 원"이라며 "이렇게 비싼 줄 몰랐다, 서민이 들어갈 수 없는 임대주택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전세난이 심화되자, 저렴한 임대주택 인기가 치솟고 있다. 하지만 국민임대주택과 달리, 5~10년 후 분양 전환이 가능한 공공임대주택은 비싼 임대료로 서민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토지주택공사가 공공임대주택을 통한 수익 극대화에 힘을 쏟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찾은 청약현장에서는 서민이나 실수요자만큼 '떴다방(이동식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청약자는 "공공임대주택은 서민보다는 투기꾼들을 위한 주택이 됐다"고 지적했다.

"월 임대료에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80만 원 넘어... 서민에겐 큰 돈"

광교신도시 공공임대주택 청약 현장에서 만난 많은 이들은 "전세난을 피해 이곳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지숙(가명, 44)씨는 허름한 다세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전세보증금은 8000만 원이다. 임대차계약기간이 만료된 이웃 주택의 경우, 보증금이 수천만 원씩 올랐다. 내년 초 임대차계약이 끝나는 이씨에게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씨는 "전세금 올려줄 생각을 하니 너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아파트를 사기에는 형편이 안 된다"며 "임대주택에 살아볼까 하는 생각에 이곳까지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소 62만 원에 이르는 월임대료에 놀랐다. 이씨는 "겨울에 관리비까지 포함되면 80만 원을 넘지 않겠느냐, 우리 같은 서민에겐 너무 큰 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청약 예정자는 중도금 도입에 큰 불만을 나타냈다. 지금껏 공공임대주택에 중도금은 없었다. 입주자들은 2013년 11~12월 입주 전인 그해 3월 임대보증금의 30%에 달하는 중도금을 내야 한다.

한 청약자는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데도 전 재산인 전세금으로도 부족해 대출을 받아야 한다"며 "전세난에 도움 안 되고 대출을 받게 하는 임대주택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날 홍보관 앞에는 새마을금고 대출모집인들로 북적였다. 한 대출모집인은 "당첨만 되면, 보증금의 최대 85%까지, 연 4.9%의 이자로 돈을 빌려준다"고 말했다.

청약 예정자 김미정(가명, 50)씨도 대출을 생각하고 있다. 김씨는 남편·두 자녀와 함께 수원 영통구 매탄동의 전세보증금 7000만 원짜리 빌라에 살고 있다. 오는 9월 말 2년의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난다. 최근 집 주인은 그에게 전세보증금을 3000만 원 올려달라고 했다.

김씨는 "보증금을 올리지 않는 대신 월세로 25만 원을 내는 쪽으로 집 주인을 설득하고 있다"며 "임대료가 비싸더라도 공공임대주택에 당첨만 됐으면 좋겠다,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더 내면, 월 임대료는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증금이 8900만 원인 74㎡형의 경우, 4600만 원의 보증금을 추가로 납부하면 62만 원인 월 임대료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공공임대주택은 광교신도시 내 민간 아파트 전세가격과 비교해도 부담이 크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최근 입주를 시작한 한양 수자인 아파트 전용면적 84㎡형의 최근 전세가는 1억8000만 원. 같은 크기의 공공임대주택 보증금은 1억600만 원으로 월임대료가 70만 원에 달한다. 월임대료를 35만 원대로 줄이면, 임대보증금은 1억5800만 원이다.

박완기 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광교신도시 공공임대주택의 택지비는 조성원가 800만 원의 85% 수준으로, 민간 아파트의 110%에 비하면 싸다"며 "그런데도 임대료 부담이 인근 민간 아파트 전세가격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임대주택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떴다방' 극성... "투기용 공공임대주택이 왜 필요하나"

5일 오후 광교신도시 10년 공공임대주택 청약 접수가 이뤄지고 있는 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보금자리주택 홍보관 앞에 떴다방(이동식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이 모여있다.
 5일 오후 광교신도시 10년 공공임대주택 청약 접수가 이뤄지고 있는 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보금자리주택 홍보관 앞에 떴다방(이동식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이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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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임대료에도, 이날 청약 현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청약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대기 번호표를 뽑고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날 194세대를 모집하는 A10블록의 경우 8: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부동산 활황기에나 볼 수 있는 떴다방 관계자들이 많이 보였다.

한 떴다방 관계자는 "공공임대주택은 시세의 90% 수준에서 분양 전환되는 데다, 광교 신도시 자체가 앞으로 집값이 많이 오를 지역이다, 돈 있는 사람에게는 인기가 많다"며 "당첨되면 편법으로 떴다방에 팔 수 있다, '피(프리미엄)'가 5000~6000만 원에 달한다, 오늘 떴다방에서 나온 사람만 수십 명"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떴다방에서는 아는 사람의 청약통장을 이용해 청약을 신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청약현장에는 대리 청약자가 많았다. 한 청약자는 "아는 떴다방 관계자가 신청하라고 해서 신청했다"며 "당첨되면 팔 거라서 임대료가 얼마인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실수요자나 서민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투기꾼들에게는 시세차익을 누리게 하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회의론이 크다. 박완기 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공공임대주택 땅값을 싸게 받았기 때문에 임대료를 더 낮출 여지가 있다"며 "전세난 겪는 서민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투기장이 된 공공임대주택이 왜 필요하나, 장기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토지주택공사 광교사업본부 관계자는 "5년 이상 무주택 서민 대상인 1순위 청약에서 최고 8:1의 경쟁률이 나타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이는 그만큼 청약자들이 가격에 대해 비싸다기보다는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태그:#공공임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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