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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방고 델타에서 노는 방법은 너무나도 많죠."
▲ 오카방고 델타에서 만난 여행자들. "오카방고 델타에서 노는 방법은 너무나도 많죠."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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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의 국경마을 카사니(kasane)에서 난 절망적이었다. 많이 피곤했고, 잘 될 거라는 어떤 안도감이 필요했다. 역시, 다른 곳에 비해 정보가 많이 빈약한 이유가 있었다. 배낭여행을 했던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게다.

다른 아프리카 나라에 비해, 보츠와나는 배낭여행에 쉬운 인프라는 아니었다. 숙박 등의 물가가 너무 비싸서 (물론 배낭여행을 하던 나에게. 충분한 자금으로 다니는 사람이야 뭐가 걱정일까.) 택시를 타고 숙소를 찾으러 돌아다녔던  나의 어깨를 축 처지게 만들고 있었다.

별 네 개짜리의 비싼 호텔 앞에서 난 후회가 밀려들었다. 오카방고 델타가 가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이 보츠와나에 발을 들여놓은 내가 원망스러워지고 있었다. 어쩌면 잠비아에서 마음이 맞았던 친구들을 따라 새해를 보냈어야 했을 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택시를 타고 몇 군데를 돌았으나 성에 차는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내린 직후였다.

이런 숙박가격으론 보츠와나에서 계획만큼 있지는 못한단 말이다! 만약 내가 텐트를 가지고 다녔다면 나았을 법했다. 많은 호텔과 숙박업소들이 텐트족(본인의 텐트를 가지고 다니며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잔디를 개방하고 있었다. 그것도 5달러 정도의 편안한 금액에!

잠비아 리빙스톤은 짐바브웨 및 보츠와나, 나미비아로 연결이 된다.
▲ 잠비아에서 보츠와나 국경넘기. 잠비아 리빙스톤은 짐바브웨 및 보츠와나, 나미비아로 연결이 된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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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짧지 않은 시간동안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다 막 혼자임을 느껴서 그런지 상당히 외로웠고, 당장 오늘 어디서 지내야 할 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다른 때보다 더 큰 우울함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게 보츠와나는 나에게 서글프게 다가왔다. 국경마을 카사니에서의 보츠와나에 대한 내 첫인상이 그랬다면, 오카방고 델타를 들어가기 위한 곳인 '마운(maun)'에선 또 어땠을까?

오카방고 델타는 내가 보츠와나에 발을 들였던 가장 큰 이유였다. 어쩌면 유일한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보츠와나에 발을 들였을 때는 크리스마스를 잠비아에서 보낸 뒤였으므로 "해피 뉴 이어!"를 외쳐야 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잠비아 리빙스톤으로부터 5분강 강을 건너, 이 곳에서 비자를 받으면 끝.
▲ 보츠와나 출입국사무소 잠비아 리빙스톤으로부터 5분강 강을 건너, 이 곳에서 비자를 받으면 끝.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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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방고 델타들 들어가기 위한 관문인 곳, 마운(maun)이란 동네에 도착했을 때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대다수의 여행사들이 휴가를 들어간 때였다. 시기적인 것에 대해선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았건만, 하루, 이틀을 다운타운을 돌아보니 계획대로 개인적으로 오카방고 델타를 경험하고 남아공을 넘어가긴 점점 불가능해 보였다.

"거기(아프리카)서도 이렇게 연락이 되?"냐고 온라인으로 묻는 분들을 위해.아프리카 어느나라도 인터넷이 안되는 곳은 없다는 것!
▲ 인터넷 쓰실래요? "거기(아프리카)서도 이렇게 연락이 되?"냐고 온라인으로 묻는 분들을 위해.아프리카 어느나라도 인터넷이 안되는 곳은 없다는 것!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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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방고 델타를 경험하기 위한 트럭투어(보통 남아공에서 출발해 보츠와나 나비미아 잠비아 등을 돌며 여행하는 투어) 중인 단체 여행객들이 마운의 다운타운에 멈춰 쇼핑을 하기도 해, 몇몇 한국 사람까지도 만나고 인사를 나눴지만, 왜 보츠와나에 개인여행자들이 그렇게 드문 지 점점 확실해지기만 했다. 숙박비 및 물가도 저렴하지 않은 편이었고, 개인적으로 접근하기는 상당히 쉽지 않았다. 한 둘의 브로커를 만나 개인적으로 접근해보자고 딜을 하기도 했지만 가격이 너무 높았다.

마운의 다운타운을 헤맨 지 삼일째 되는 날인가.., 난 결단을 내렸다.

보츠와나 카사니의 한 주유소에서 기르는 멧돼지인줄 알았더니 그냥 야생이라고...
▲ 도시와 야생의 향연, 아프리카 보츠와나 카사니의 한 주유소에서 기르는 멧돼지인줄 알았더니 그냥 야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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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들어오는 데, 엊그제도 잠깐 얘기 나눈 적 있는 경찰관 아저씨가 나에게 알은체를 한다.

"안녕? 오늘 날씨 좋지?"
"네, 안녕하세요? 더워요. 아, 그런데 아저씨 혹시 언제 떠난다고 하셨어요? 내일 프란시스타운으로 간다고 하셨나요?"

각 지역의 경찰서를 출장이라는 경찰 간부 정도로 보이는 그 아저씨는 다음 목적지는 프란시스타운을 거쳐 가보로네(수도)를 간다고 했었다. 앗! 가보로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곳.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아저씨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텐트안에 메트리스가 깔려있는 형태로, 하루 숙박비 2만원의 저렴하지 않은 물가.
▲ 카사니에서 머물렀던 곳 텐트. 텐트안에 메트리스가 깔려있는 형태로, 하루 숙박비 2만원의 저렴하지 않은 물가.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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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
"아, 실은 저번에 제가 얘기했었쟎아요? 보츠와나에 와서는 꼭 오카방고 델타에 가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이리저리 좀 알아봤는데 새해가 껴서 다들 휴가기간인 모양이에요. 며칠 동안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포기해야겠어요. 계속있기엔 여러 가지, 뭐 예산이나 그런 것도 걸리고… 아쉽지만, 계속 여기 머무는 것은 제 상황에선 좀 아닌 것 같고요. 그래서 말인데, 가는 길에 저 좀 태워주실래요?"
"그래서 그냥 가겠다고? 흠… 태워주는 것은 어렵지 않아. 네가 원한다면. 그런데 정말 그냥 포기하고 가는 게 최선일까? 나랑 함께 좀 더 알아보는 게 어때? 네가 그냥 가는 게 너무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 혼자 여기까지 왔는데. 내일 아침에 나랑 다시 한번 돌아보자. 그리고도 안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해봐."

정보가 찾기 어려웠던 만큼 배낭여행하기엔 어려움이 있던 곳. 가장 큰 부분은 저렴한 숙박업소 찾기.
▲ 보츠와나 숙박 정보가 찾기 어려웠던 만큼 배낭여행하기엔 어려움이 있던 곳. 가장 큰 부분은 저렴한 숙박업소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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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아볼 만큼 알아봤다고 생각해서 아저씨를 애쓰게 하고 싶지 않았으나 아저씨의 눈빛에 담긴 진심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자기나라의 특정한 곳을 가겠다고 온 동양여자애가(그 사람의 눈엔 내가 애로 보인다) 포기하고 그냥 가겠다니, 그것도 다른 나라에 비해 보츠와나의 관광산업에 대한 아쉬움을 품은 채, 떠난다니 그 생각이 눈빛에 안타까움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다음날 아침 아저씨의 지프차를 타고 다른 경찰관 한 명까지 동승한 채, 군데의 장소를 들렀다. 투어 에이전시와 리조트를 함께 하고 있는 곳 한 군데. 지나는 길에 보인 투어 에이전시 한 군데. 그리고 마지막은 아저씨의 동생 집.

가족들과도 잠깐 얘기를 나누던 아저씨 또한 뾰족한 다른 수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새해 연휴로 인해 오카방고 델타를 포기하고 떠나는 필자가 못내 안타까웠는지, 진심으로 걱정을 해 주었다.
▲ 마운에서 만난 빅터 새해 연휴로 인해 오카방고 델타를 포기하고 떠나는 필자가 못내 안타까웠는지, 진심으로 걱정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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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것도 얻은 게 없어 보이는 그 오전의 외출은, 나에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짐을 차 안에다가 다 넣고, 프란시스 타운으로 떠나기 전, 차 앞에서 난 아저씨에게 얘기했다.

"아저씨, 저 그냥 오늘 안 갈래요. 좀 더 있다가 알아보고, 혹시 운이 좋으면 모르죠. 제가 오카방고 델타에 제 발을 담그고 떠나게 될지."

그냥 포기하고 가겠다는 나를 보는 아저씨의 눈빛에 담긴 진심에서 시작해,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아침의 외출이었지만 내 마음은 변했던 것이다. 자기 일마냥 기뻐하는 아저씨의 마음이 또 한 번, 날 감동시킨다. 아저씨는 너무 잘 생각했다며 날 격려하며 재빨리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그리곤 목소리를 높이며 근엄하게 얘기한 후, 나에게 번호를 하나 쥐어준다.

야생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조건.
▲ 마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차량의 형태 야생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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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번호 받아. 내 처남 번호거든. 우리가 아까 갔던 집 말야. 무슨 일이 생기거든, 이 쪽으로 전화해. 그 친구 이름도 빅터야. 나처럼. 내가 전화해서 얘기해 뒀으니 부담 갖지 말고. 아, 그리고 자 이거 받아."

아저씨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100뿔라. 한화로 2만 원가량의 돈이다.

내 눈에서 동공이 커진 물리적인 변화와, 당황스러운 심경을 목격한 아저씨는 내 눈을 빤히 보며 천천히 얘기한다.

"아… 아무래도 우리가 문화의 차이가 좀 있는 모양이로구나. 내가 이렇게 건네는 돈이 좀 무례한 건가? 그런데, 봐봐. 내가 나중에 코리아를 가면 너도 나처럼 그럴거야. 너 어차피 여기서 또 하루 머물게 되쟎니. 그걸 내가 내준다고 생각해. 큰일도 아니야."

빅터 아저씨는 기어이 내 눈에서 눈물을 떨궜다. 물론 아저씨가 탄 차의 뒷모습이 보일 때였지만. 아저씨가 보였던 그 진심 어린 도움과 배려의 느낌은 도장처럼 내 마음속에 찍혀있다.

물론 그 때문에 난 오카방고 델타의 강줄기에 내 발을 담글 수 있었던 거다.

강줄기를 따라 거슬러가는 여정 중 만난 물 속의 하늘.
▲ 오카방고 델타 강줄기를 따라 거슬러가는 여정 중 만난 물 속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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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총 6개월의 여정을 바탕으로 기고합니다.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태그:#보츠와나 , #카사니 마운, #아프리카 여행, #오카방고 델타,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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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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