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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기 추모제에서
▲ 류기혁 열사 6주기 추모제에서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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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일 금요일 오후 7시 류기혁 열사 6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리니 참석 바랍니다.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류기혁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벌써 6년이 되었네요. 그 문자를 받고 가슴이 다시금 먹먹해졌습니다. 6년 전이면 2005년이 되네요. 그때는 저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2003년 말 노동부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습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모였고 노조가 결성되었으며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시작 되었습니다.

5공장에 다니던 안기호라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앞장 섰습니다. 1공장, 2공장, 3공장, 4공장, 5공장, 변속기 사업부별로 모여 각자 형편에 맞는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변속기에 다녔고 그곳엔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한 사람이 저뿐이었습니다. 저는 정규직화의 염원을 모아 1인시위에 나섰습니다. 그때 류기혁을 만나게 됩니다.

류기혁은 당시 서른 살 넘은 총각이었습니다. 류기혁은 2공장에 다녔습니다. 우리는 비정규직 노조가 아니었다면 못 만날 여건이었으나 비정규직 노조 덕분에 류기혁과도 만남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류기혁은 참 순박한 청년이었습니다.

"형님, 같이 오뎅이나 드시고 가세요."

류기혁은 언제나 잔업 마치고 나오면 정문이나 구 정문, 제가 1인시위 하는 곳에 들러 같이 서 있다가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마지 못해 따라가보면 그도 주머니 사정이 별로일 텐데 제가 배고플까봐 오뎅을 사주곤 하니 고마웠습니다.

류기혁 열사에 대해 판을 들고 서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 집회 류기혁 열사에 대해 판을 들고 서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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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류기혁 열사 약력
1975. 12. 28. 경북 영덕군 영덕읍 출생
1993. 2. 14. 영덕공고 졸업
2003. 6. 30. 현대자동차 승용2공장 보광기업 입사
노조 활동을 이유로 관리자들로부터 심한 횡포와 탄압에 시달림
2004~ 보광기업에서 부경기업으로 소속 변경
2005. 6. 12. 업체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해고
2005. 6. ~ 9. 노동조합 임시 사무실에서 상근하면서 복직과 불파투쟁 승리를 위해 매진 
2005. 9. 4. 노동탄압의 울분을 안고 노조 임시 사무실(3층) 옥상에서 목을 매 자결
* 가족관계 : 2남 1녀중 장남으로 홀어머니와 남동생을 부양

순박한 그는 업체로부터 많은 시달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업체에서 많이 심하게 나온다며 힘들어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났습니다. 그가 얼마간 안 보였고 저는 1인시위를 이어가느라 그에게 별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가 힘들다고 했을 때 조금만 더 신경 써주었더라면, 조금만 더 따뜻하게 그를 대했더라면…. 그렇게 무심히 보내는 사이에 안타까운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류기혁이가 임시 비정규직 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목매 자결했습니다.

그 문자 메시지를 받고 달려가 보았을 때는 이미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현대차와 업체는 정말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비정규직 노조에서도 영덕에 있는 그의 집으로 사람을 보냈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현대차 간부와 업체 간부 그리고 경찰이 벌써 다녀갔다는 것입니다. 류기혁의 가족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순박한 류기혁. 너무 가엾게 죽은 기혁이 한이라도 풀어주자고 사정해보았으나 가족은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현대차 간부와 경찰로부터 무슨 협의가 오갔길래 우리랑은 대화 자체를 묵살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류기혁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의 장례도 치러주지 못한 채 그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화상이 아직 덜 나아서 두건을 두르고 있습니다.
▲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황인화 추모사 화상이 아직 덜 나아서 두건을 두르고 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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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혁의 죽음은 아직 그곳에 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다시 모여 그를 추모했습니다. 100여 명이 모였고 수요집회 때마다 차량으로 그리고 인간 방패로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을 가로막던 현대차는 오늘 왠일인지 장소를 열어주었습니다. 오늘 추모문화제엔 황인화님이 추모사를 했습니다.

황인화님은 지난해 11월 2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있었던 불법파견 항의 집회 도중 무대 위에서 분신을 시도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다행히 몇 차례 수술을 했고 잘 되어서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입니다. 아직도 다 낫진 않아서 몸을 가리고 다닙니다. 그가 한 추모사 내용입니다.

류기혁 열사에게

류기혁 열사의 마음도 그 때 저와 같았겠죠! 동지를 위해 내가 죽어서라도 비정규직이 철폐되고 정규직화 된다면, 그리고 나로 인해서 이 투쟁이 모든 비정규직의 불씨가 되고 씨앗이 된다면, 나 하나로 인해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이 된다면, 나는 나를 버릴수 있다고 생각 하셨겠죠! 많은 생각이 흐르고 온몸이 떨렸던 그 경험, 나와 같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류기혁 열사도 "그래 너는 그렇게 하지 마라" 하시며 다시 이 세상으로 돌려 보냈겠죠. "너 옆엔 동지가 있고 활동가가 있고 너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다"고요. 나도 처음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시 살아나서 알게 됐습니다. 내 옆에 있는 동지가 있고 가족이 있고 날 믿어주고 아껴주는 많은 분들 있었다는 걸요.

나 하나만으로도 족하니 꼭 살아서 승리하라고, 꼭 살아서 승리하여 더 많이 움직이고 활동하라고, 승리하는 그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동지를 믿고 나를 믿고 꼭 승리하겠습니다.

열사의 염원 살아있는 우리의 몫이고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꼭 승리하여 내 자신이 당당해지고 열사의 뜻 이루겠습니다.

열사의 염원이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류기혁 열사에 대해 제를 올린 후 모든 행사는 조촐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오늘은 경찰 방송차가 서 있었기는 했는데 "불법집회이니 해산하라"는 방송은 하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아직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 서려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황인하 씨가 추모사를 읽고 류기혁 열사 앞에 절을 올리고 있습니다.
▲ 황인화 씨가 절을 하고 있습니다. 황인하 씨가 추모사를 읽고 류기혁 열사 앞에 절을 올리고 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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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류기혁,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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