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내가 주워 온 통나무를 캠프 파이어 용 장작으로 만들기 위해 윤의가 도끼질을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주워온 캠프 파이어 용 나무만 우리 돈으로 6만~7만 원 값은 족히 됐다.
 내가 주워 온 통나무를 캠프 파이어 용 장작으로 만들기 위해 윤의가 도끼질을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주워온 캠프 파이어 용 나무만 우리 돈으로 6만~7만 원 값은 족히 됐다.
ⓒ 김창엽

관련사진보기

"아니 이게 뭐예요, 어디서 났어요."

뉴욕에 온지 닷새째 되던 날 밤 윤의가 우리 야영 터에 쌓여있던 장작더미를 보더니 놀라서 물었다. 윤의를 포함해 '아들 셋'은 저녁 늦게까지 맨해튼에 있다가 거의 새벽녘에 비버 폰드 야영장으로 돌아 왔다. 헌데 점심 무렵 맨해튼으로 나가면서 보지 못했던 장작이 서너 개도 아니고 한 무더기나 쌓여 있는 걸 보고 의아했던 것이다.

"우리도 캠프 파이어 좀 하면 안될까요"하고 그간 아이들이 사정을 해올 때마다 나는 단칼에 거절하곤 했다. 비버 폰드 야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 저거 봐라, 나무토막이 대략 열 조각쯤 들어 있는 것 같은데, 한 다발에 12달러라니 말이 되냐."

12달러는 그간 우리 수준으로 볼 때, 12개 들이 달걀 두 판에 어른 엄지손가락 2개 크기의 소시지 10개짜리 한 봉지, 그리고 우유를 거의 2리터 가량 사고도 얼마간이 남을 수 있는 돈이었다.

경비를 절약하느라, 캠프 파이어 조차 마다했던 내가 50~60달러어치는 족히 될법한 장작을 쌓아두고 있었으니 '아들 셋'은 하나 같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 가운데서 누가 영어 좀 하냐, 혹시 '캠프빈저'라는 단어 들어봤냐." 다들 그런대로 머리 회전이 되는 '아들 셋'은 캠프빈저라는 말에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캠프빈저(campvenger)는 내가 지어낸 말이다. 캠프(camp)는 캠핑할 때 바로 그 캠프이고, 빈저(venger)는 동물세계에서 청소부(scavenger)를 뜻하는 말의 뒷부분이다. 요컨대 아프리카 초원의 청소부가 하이에나이듯, 내가 캠프장의 청소동물이라는 의미였다. 

떠돌이 여행이 계속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짐승처럼 살게 되더니, 마침내 캠프장의 하이에나 수준까지 발전하게 된 거였다. 캠프 파이어 용 장작만 해도, 아이들이 맨해튼에 나가 있는 동안 야영장을 한 바퀴 쓱 돌면서 주워온 것들이었다. 비싼 장작을 사놓고도 다 때지 못하고 철수하는 사람들이 야영장에는 적지 않았다.

사실 이날 캠프장을 어슬렁거리면서 수거해온 것들은 태우지 않은 장작만이 아니었다. 간이 바비큐 장치, 빨랫줄로 쓸 수 있는 노끈, 꼬치 구워 먹을 때 쓰는 긴 대나무 젓가락 세트, 식기 세척용 세제. 플라스틱 소재의 놀이용 부메랑, 우산 등 야영 생활을 하면서 요긴하게 쓸만한 물건들은 다 주워 모았다. 돈으로 따지면 모두 합해 족히 80~90달러 값어치는 되는 물건들이었다. 

이런 종류의 재활용은 나에게 두 배, 세 배의 기쁨을 준다.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저지른 '비행'에 대해, 다소나마 속죄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번 북미대륙 횡단을 포함해 어찌하다 보니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을 그간 유달리 많이 했다. 자동차로 움직이다 보면 기름을 쓰는 게 불가피하다. 6년 전 약 10개월 동안 북미대륙을 자동차로 누빌 때는 주행거리가 지구 두어 바퀴를 돌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 거리에 비례해 엄청난 기름을 길바닥에 뿌리고 다녔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매연 공해에도 기여했을 것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지구 온난화에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이런 차에 버리고 간 물건들을 주워 십분 재활용하게 됐으니 다소나마 죄 갚음을 한 기분이었다.

"아 정말 맛있는데요." '아들 셋'은 공짜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캠프 파이어로 만든 숯불을 이용해 소시지 구이를 해주자, 다들 맛있다며 정신 없이 먹었다. 물론 소시지를 꿴 대나무 젓가락도 주워 온 것이었다. 할인 판매를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슈퍼마켓에서 사온 소시지였는데, 훈제를 하니 맛이 제법 났던 것이다. 비버 폰드 야영장에서 캠핑하는 동안 경비를 최대한 줄여볼 생각이었는데, 출발은 상당히 상큼했다. 장기전을 치를 생각을 하고 야영장에 진을 친 덕분에 한동안 하루 8~9시간씩 달릴 일도 없으니 자동차 기름 값 지출도 크게 줄 것이다. 또 매일 한두 끼 사먹는 대신 삼시 세끼를 대부분 직접 해먹을 예정이므로 식비 역시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자정이 돼도 뉴욕서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 "무슨 일이야?"

한밤에도 인파가 넘실거리는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 미국은 밤과 낮이 현저하게 다른 나라이다. 밤에 무슨 나쁜 일이 생길지 모르므로 항상 경계하는 게 좋다. 새벽 기차를 타고 밤늦게 맨해튼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밤에도 인파가 넘실거리는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 미국은 밤과 낮이 현저하게 다른 나라이다. 밤에 무슨 나쁜 일이 생길지 모르므로 항상 경계하는 게 좋다. 새벽 기차를 타고 밤늦게 맨해튼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 김창엽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일이 술술 너무 잘 풀려 어딘지 불안한 느낌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도 뉴욕에서였다. '아들 셋'의 뉴욕 도시 게릴라전은 '저인망'식이었다. 맨해튼의 최남단에서부터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도시 전체를 싹쓸이하다시피 섭렵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우리들의 야영 진지에서 맨해튼까지 거리가 60km 이상 떨어졌다는 점이었다. 1시간 혹은 2~3시간 간격으로 배차되는 교외선 기차를 타고 뉴욕까지 들어갔다가 밤중에 퇴각하는 식으로 야영장으로 돌아오는 게 당초 계획이었다. 

기차는 새벽 3시가 막차였는데, 이 기차까지 놓치면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이 경우 '아들 셋'은 우범지대로 악명 높은 뉴욕의 지하철 역에서 밤을 새워야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우리들 네 명이 가진 전화는 딱 1대뿐이었다. 중간에 사고가 나도 연락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일이 생길 조짐은 맨해튼에 출정한 첫날부터 보였다.

"어디냐, 지금. 시간이 11시가 넘었는데 기차역에 나가 보니까 없더라."
"예 저희들이 말이죠."
"그래 무슨 일 생긴 것 아냐."
"…"

선일과 병모가 타임스스퀘어 앞에서 비키니 걸과 포즈를 취했다.
 선일과 병모가 타임스스퀘어 앞에서 비키니 걸과 포즈를 취했다.
ⓒ 김창엽

관련사진보기


야영장에 가까운 시골역, 슬로츠버그(sloatsburg)에 도착하기로 한 시간이 밤 11시 52분쯤이었는데, 기차는 제 시간에 왔지만 아이들은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공중전화를 이용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는 연결됐다,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혹시 뉴욕에서 촌놈들이 깡패들에게 당한 것 아닐까.' 속으로 별의별 불길한 생각이 다 들었다. 엄청난 공중전화비를 지출하며 가까스로 확인한 결과 술을 좀 마시고 어쩌다 보니, 기차를 놓쳤다는 거였다. 한편으로 안심이 돼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화도 났다. 다음 기차는 막차로 새벽 3시가 다 돼서야 슬로츠버그 역에 도착하게 돼 있었다.

달랑 조명등 하나뿐, 역무원도 없고, 역사도 없는 시골역 슬로츠버그에서 나는 일단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시골은 밤중이 무섭다. 도시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은 밤과 낮이 현저하게 다른 나라이다. 시골에서 느닷없이 한밤중에 문을 두드렸다간, 총을 들고 나오는 주인을 맞지 말란 법이 없다. 가끔 짐승의 울음소리만 들려올 뿐, 사위가 깜깜하고 정적이 감도는 시골역에서 어슬렁거렸다간 나도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편도 15km쯤 하는 야영장으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야영장과 슬로츠버그 역 사이 중간쯤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자정이 지난 시간 그 옆을 지나 아이들을 태우러 가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는 않았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더욱 그랬다. 그래도 세 녀석을 한번에 태워올 때는 괜찮았다. 뉴욕을 제 각각 더듬고, 각자 다른 시간을 택해 야영장으로 귀가하던 날은 정말 입술이 다 타 들어가는 줄 알았다.

덧붙이는 글 | cafe.daum.net/talkus



태그:#맨해튼, #뉴욕, #도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