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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 팔순 아버지만큼이나 늙어 보입니다. 바람이 다 빠져 푹 꺼진 바퀴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하네요. 고향집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자전거를 바라보며 느낀 상념입니다.

한 때는 온 동네를 씽씽 누비던 자전거입니다. 아버지는 이 자전거를 타고 논에 물꼬도 보러 다녔고 장에 가서 생선도 사 오셨습니다. 가끔 고향집에 다니러 올 때는 저의 '애마' 가 돼 주기도 했고요.

넘어지는 쪽에 몸을 맡기라고 했지만

 자전거
 자전거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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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2학년, 여섯 살 터울 형이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는 지금 이것과 똑같이 생긴 자전거를 사오셨습니다. 흔히 '신사용'이라 부르는 자전거입니다. 형은 다음 날부터 그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있는 학교에 갔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형이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고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형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형이 돌아오기 무섭게 저는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댔습니다. 동생인 저를 끔찍이 아끼던 형은 교복도 벗지 않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 몸보다 더 큰 자전거를 타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중심을 잡아주던 형 손이 자전거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꽈당꽈당' 넘어지기 일쑤였지요. 덕분(?)에 무릎이나 팔꿈치가 성한 날이 없었습니다.

넘어지려고 할 때마다 형은 "넘어지는 쪽에 몸을 맡겨" 라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제 귀에는 그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형 말을 믿지 못한 것이죠. 결국은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버둥대다가 크게 넘어져 무릎과 팔꿈치가 수난을 당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형은 내 팔꿈치나 무릎이 벗겨진, 딱 그만큼 아버지한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무릎과 팔꿈치에서 노란 고름이 흘러나올 때쯤 아버지는 '자전거 금지령' 을 내렸습니다. 그냥 내 버려두었다가는 막내아들이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나 봅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어린아이 마음이지요. 금지령이 내려지자 자전거가 더 타고 싶어졌습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자전거를 타고 멋지게 신작로를 달리는 모습이 눈에 아른 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잠이 들어서는 또 자전거 타는 꿈을 꾸었고요.

결국 저는 며칠 만에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든 깊은 밤에 혼자 자전거를 끌고 신작로에 나온 것이죠. 그날 밤, 저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신작로와 한길 이상 차이가 나는 깊은 논이었습니다. 자전거와 함께 그 논으로 굴러떨어진 것이죠. 그곳에 굴러 떨어지기 전에는 신작로에서 수도 없이 많이 넘어졌고요.

6월 중순경, 모를 심은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논이 물구덩이 같았습니다. 어린모가 잠길 만큼 물이 '찰름찰름' 거렸지요.

저수지 옆 상여 집을 지날 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몸은 흙탕물 범벅이었고 무릎과 팔꿈치에선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른 쪽 발목이 '으악' 소리가 날 만큼 아팠습니다. 굴러떨어지면서 발을 헛디뎌 접질린 것이죠. 너무 아파 한 동안은 일어서지도 못하고 물구덩이에 철퍼덕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아픔을 참고 간신히 일어났지만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접질린 발이 땅에 닿기만 하면 '으악' 소리가 났거든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자전거, 내 몸과 자전거에 짓눌려 자빠진 모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논바닥에 내버려 둔 채 달빛을 벗 삼아 집으로 향했습니다. 깨금발로 걷기 시작한 것이죠. 달음박질치면 5분이 채 걸리지 않던 그 길이 왜 그리도 먼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수지 옆 상여 집을 지날 때 갑자기 푸드덕 소리가 나며 무엇인가 하늘로 튀어 올랐습니다. 몸에 소름이 '짜르르' 돋고 머리칼이 하늘을 향해 곧추서는 느낌이었습니다. 도망쳐야 했습니다. 심장이 빨리 뛰라고 재촉했습니다. 귀신에게 붙잡히면 죽을지도 모르니 빨리 도망치라고.

뛰었습니다. 그러나 채 두 발짝도 떼지 못하고 '악' 하는 단말마를 지르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발목이 접질린 사실을 순간적으로 잊은 것이지요. 

두려움이 큰 탓인지 아픔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쓰러지자마자 벌떡 일어나 깨금발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뛰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습니다.

사립문을 열면서부터 조금씩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안도의 눈물입니다. 이젠 살았구나 하는. 잠 귀 밝은 어머니가 인기척을 느끼고 안방 문을 열었습니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참았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자전거는 깨끗한 모습으로 원래 있던 자리에 모셔져 있고 나는 말쑥한 꼬마 신사가 돼 있었습니다. 오로지 퉁퉁 부어오른 발목만이 악몽 같은 지난 밤 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엉엉 울다가 난 그만 씻지도 못 한 채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피곤이 몰려온 탓이죠. 어머니가 잠이 든 저를 씻기고 새 옷으로 갈아 입혀 방에 눕힌 것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쓰러져 있던 논으로 달려가 자전거를 건져 와서 깨끗이 닦아 놓은 것이고요. 

형은 그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갔고 저는 아버지 등에 업혀서 건너 마을 침쟁이 할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아버지 등에 업혀서 지난 밤 쓰러져 있던 자리를 지나쳤습니다. 쓰러져 있던 모가 모두 세워져 있었습니다. 아버지 손길이 닿은 게 분명했습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발목이 낫기 무섭게 저는 다시 자전거를 끌고 신작로에 나왔습니다. 식구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또 몰래 끌고 나온 것이죠. 그 날도 달이 무척 밝았습니다.

"한 번 타 보거라."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아버지였습니다. 분명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잠든 척 하고 있다가 제가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것을 보고는 뒤따라 나온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붙잡아 주니 마음이 한결 푸근했습니다. 형이 붙잡아 줄 때하고는 차원이 다른 듬직함이었습니다. 아버지도 형하고 똑 같은 말을 했습니다. 넘어지는 쪽에 몸을 맡기라고.

아버지 말대로 넘어지는 쪽에 몸을 맡겼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기도 하지, 정말로 중심이 잡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때서야 저는 두 바퀴로 달리는 자전거의 간단하면서도 오묘한 원리를 터득한 것입니다. 

"얘 한번 내려와야 것다. 아버지가 요양원 보내 달라고 떼쓰느라 밥도 안 드신다."

어머니 전화를 받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쁜데, 가봤자 해결 방법도 없는데……. 아버지는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습니다. 점점 어린아이가 돼 가는 중이죠. 도대체 감옥 같은 요양원에 왜 가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누구에겐가 요양원이 천국 같다는 얘기를 들었나 봅니다.

아버지는 반평생 애지중지하던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끌고 다닙니다. 지팡이 대용이지요.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고 나갈 때마다 혹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떼쓰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해 봅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말씀을 하시지는 않습니다.

넘어지는 쪽에 몸을 맡기라는 말은 인생의 지침이었습니다. 인생은 두 바퀴로 달리는 자전거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페달을 밟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넘어진다는 점이 그렇고 잘 달리다가도 갑자기 넘어질 수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기도 하고 너무 빨리 달리다가 중심을 잃어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넘어지려 할 때가 위험한 순간입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크게 넘어지는 법이지요. 사업하는 분이 사채를 끌어 쓰다가 패가망신 하는 경우나, 부정을 저지른 정치인이 자신의 죄를 숨기려 발뺌하다가 더 큰 망신을 당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큰 진리를 어린 제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 인생의 가장 큰 후원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아버지에게 별로 해 줄 게 없습니다. 그냥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끔 투정을 받아 주는 것 밖에는.

고향집 한편에 서 있는 낡은 자전거를 볼 때마다 그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아른 거립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거뜬히 업던 넓은 등이 사무치게 그립고,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말끔히 정리 돼 있는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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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게 많아 '기자' 합니다. 르포 <소년들의 섬>, 교육에세이 <날아라 꿈의학교>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