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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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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4시간 / 손발이 퉁퉁 붓도록 / 유명브랜드 비싼 옷을 만들어도 / 고급 오디오 조립을 해도 / 우리 몫은 없어, / 우리 손으로 만들고도 엄두도 못내 / 가리봉 시장으로 몰려와 / 하청공장에서 막 뽑아낸 싸구려 상품을 / 눈부시게 구경하며 / 이번 달엔 큰 맘 먹고 물색 원피스나 / 한 벌 사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박노해, '가리봉 시장', <노동의 새벽>)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물건에 자신의 일당보다 비싼 가격이 붙어 그 물건을 가질 엄두를 낼 수 없을 때 사람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답은 '소외감'이다. 독일의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서인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동 소외, 물신숭배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분석했다.

<경제학-철학 수고>를 교재로 지난 23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사회학 고전읽기' 시즌3 첫 번째 특강에서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본주의의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소외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이 여전히 현대인들의 삶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데 유용한 문제의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강의 중 박노해 시인의 시 '가리봉 시장'을 인용하며 "요즘 대학 내 청소노동자들의 삶이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삶을 보면 박노해 시인이 절규했던 소외된 노동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현재진행형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어떻게 '왕따'로 만드나

<경제학-철학 수고>는 자본주의 속에 있는 노동 소외에 대한 통찰을 담은 작품이다. 마르크스는 이 책을 1844년에 집필했지만 오랜 기간동안  출간하지 못했고, 이 책은 그가 죽은 뒤인 1932년에야 비로소 출간되었다. 초고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한 권의 저작이 가져야 할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마르크스가 가지고 있던 영국의 고전경제학, 프랑스의 사회주의, 독일의 관념론에 대한 이해가 결합된 최초의 저작으로 유명하다. 

마르크스는 <경제학-철학 수고>를 세 개의 초고로 구성했다. 첫 번째 초고에서는 노동임금, 자본의 이윤, 지대, 소외된 노동에 대해 다뤘고, 두 번째 초고에서는 사유재산의 관계에 대해 다뤘다.  세 번째 초고의 내용은 사유재산과 노동, 사유재산과 공산주의, 욕구, 생산과 분업, 화폐, 헤겔의 변증법과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외는 마르크스가 근대 자본주의에서 가장 주목할 사회적 현상 중 하나로 꼽은 <경제학-철학 수고>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다. 김 교수는 "마르크스의 소외는 노동자와 그가 생산한 재화(상품)가 분리되는 현상"이라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하나의 상품으로 바뀌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자연을 변형시켜서 상품을 만들잖아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는 또 다른 상품이 되면서 그가 생산한 결과물인 상품과 같은 객체가 되어 버립니다. 객체가 된 노동자는 주체성을 잃어버리면서 심지어는 객체인 상품에 복종하게 되지요. 이것이 마르크스 소외론의 핵심입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 소외는 네 가지 과정을 통해 진행된다. 우선 생산활동과 인간 고유의 '유적 본성'에서 소외된다. 인간은 본래 노동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는 '유적 존재'인데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지불받고 생존을 위해 노동하게 되는 순간, 노동은 자기 삶을 실현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지루하고 무의미한 과정이 된다는 얘기다. 거기에 노동의 결과물인 생산물은 자본가의 소유이기 때문에 생산물로부터도 소외되고, 다른 노동자들과 임금이나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되면 동료 노동자들로부터도 소외되게 된다. 

'김호기 교수의 사회학 고전읽기' 특강 수강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김호기 교수의 사회학 고전읽기' 특강 수강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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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소외, 자살 등 자기 파괴로 이어지기도"

그렇다면 이러한 노동 소외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사유재산과 임금노동제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의 사회주의를 연구하면서 초기에 가졌던 민주주의론을 넘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주목하지요. 인간이 불평등해지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사유재산과 그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화폐입니다. 사유재산제도가 근대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면 이를 철폐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 마르크스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였습니다. <경제학-철학 수고>의 세 번째 초고에서는 이 부분을 다루고 있지요. 그가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쓴 노동 소외의 문제의식은 그가 나중에 집필한 자본론에서 '상품에 대한 물신숭배'로 다시 나타납니다."

김 교수는 "마르크스의 소외론은 20세기 현대사회 이론들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고 인간의 의식이 한 존재의 일방적인 결정의 결과가 아닌 이상 자본주의 사회구조와 문화 분석에서 소외된 노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얘기다.

그는 "무한경쟁을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대상과의 거리감과 그로 인한 낯섬의 경험은 현대인들이 갖는 본질적인 숙명인 것처럼 나타나고 있다"며 "소외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은 현대인들의 삶을 설명하는데 여전히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압축 자본주의 발전을 경험한 만큼 한국사회에서 소외는 매우 예각적인 현상으로 나타나 왔다"고 지적하고 "소외는 대상을 낮설게 느끼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이로제 등 왜곡된 정신구조 형성이나 자살 등 극단적인 자기파괴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하며 강의를 마쳤다.


태그:#김호기, #사회학, #고전읽기,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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