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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월 전 그 자리에서 살해될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여기저기 피부가 바짝 말라붙은 뼈들이 살인자들, 아니면 개와 새와 벌레 같은 청소부들 소행인 듯 몸통에서 잘려 나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그나마 형체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시체들만 그들이 한때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꽃무늬프린트의 천에 싸인 한 여성의 시체가 문 가까이 놓여 있었다. 그 여성은 살점 하나 없이 앙상한 엉덩이뼈를 치켜든 채 두 다리를 약간 벌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어린아이의 두개골이 뒹굴고 있었다. 여성의 몸통은 속이 텅 비어 있었고, 갈비뼈와 등뼈가 썩어가는 천조각 사이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중략) 그는 교실에 있는 시체는 살해되기 전 강간을 당했던 여성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에서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갈라파고스 펴냄)는 1994년 봄과 초여름을 거치는 석 달 가량 르완다 공화국의 인구 10퍼센트가 분당 7명, 시간당 400명, 하루에 만 명이라는 유례없는 속도로 살육된 '르완다 대학살'을 한 기자가 몇 년 간에 걸쳐 취재한 것이다.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겉그림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겉그림
ⓒ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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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대학살' 당시 르완다 공화국의 인구는 약 750만 정도. 불과 100일 만에 80만 명이 무참하게 살육되었다고 보고되어 있다. 하지만 르완다 사람들은 종종 100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말하고, 그들의 말대로 100만 이상이 죽었을 거라는 것은 공공연하게 인정된 사실이다. 

참고로 살해당한 속도는 홀로코스트(1933~1945) 때 나치에 유대인들이 살해당한 속도의 세배에 달한단다. 대체 왜 그처럼 끔찍한 살육이 벌어졌던 걸까? '인류 최대의 참극'으로 불리는 '르완다 대학살' 그 실체를 알려면 르완다의 지난 역사부터 먼저 알아야 한다.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한 르완다공화국은 나라 이름을 주변국에 걸쳐 적어야 할 정도로 아주 작은 나라다. 우리나라의 9/1정도, 경상도 보다 조금 작다고 한다. 우리와는 1963년에 수교가 시작됐다.

르완다 대학살 때문에 르완다란 이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민족은 투치족과 후투족이다. 하지만 원래는 현재 1%정도밖에 남지 않아 선거권마저 없는 소수족으로 전락한 피그미족의 땅이었다.

후투족이 르완다에 정착한 것은 7~10세기경, 트와족 등과 함께 별 마찰 없이 살아간다. 이후 13~16세기경에 이디오피아계인 투치족이 들어와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고 투치족은 16세기에 이르러 르완다 역사상 최초의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1899년, 르완다는 브룬디와 병합되어 독일 식민지가 되어 '루안다우룬디'라는 명칭으로 공동 관리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후 베르사이유 협정으로 벨기에가 두 나라를 접수(1918)하는데, 벨기에는 키가 큰 소수의 투치족을 내세워 키가 작은 다수의 후투족을 통치하게 하는 부족별 분리식민지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이웃하고 있는 르완다와 브룬디는 식민지 이전부터 언어도 비슷한데다 두 지역의 후투족과 투치족의 비율 또한 같은지라 두 종족 갈등이 심했다. 그런데 이에 벨기에가 분리식민지정책으로 기름에 불을 붓는 꼴을 초래한 것.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 르완다는 2차 세계 대전 후 유엔신탁통치를 거쳐(1946) 부룬디와 분리된 후(1959) 1962년에 독립을 선언한다. 1962년 르완다는 후투족 출신의 카이반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완전 독립한다.

그런 가운데 1963년 말~1964년 초에 이르는 동안 정부의 사주아래 투치족에 대한 후투족의 대량 학살이 일어나 투치족 25만 명이 피란길에 오르게 된다.

그후 어떤 면에서 르완다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쥐베날 하비아리마나가 1973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고 제2공화국 수립을 선포한다. 외형적으로 폭력사태는 줄어들었지만 투치족에 대한 차별 정책은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후투족 극단주의자들의 후투 파워 이데올로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에 어린시절(1963~1964년) 대량 학살을 피해 우간다로 망명해 자란 젊은 투치족 청년들이 르완다로 돌아와 1990년에 르완다애국전선(RPF)을 조직하여 정부군과 전투를 개시한다. 그리하여 두 종족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부족은 평화협정을 체결, 1993년에 두 부족이 골고루 참여하는 정부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런 평화가 깨진 것은 1994년에 다수종족인 후투족 출신의 하비라니마냐 대통령이 비행기 사고로 숨지면서부터.

후투족은 비행기 사고를 투치족의 소행으로 간주하여 투치족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살해할 것을 지시하게 된다. 르완다 대학살은 이렇게 시작된다. 후투족은 투치족만이 아니라 투치족 혼혈과 중립적인 자세의 후투족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에 이른다.

1994년 4월 6일에 시작된 100일간의 무차별 살육전쟁을 치른 후 르완다애국전선이 후투족 정권을 붕괴시키고 종족대학살을 종식시키지만 대략 300만 명에 이르는 난민이 발생한다. 이중 약 200만 명에 이르는 후투족 난민들은 투치 정권의 보복이 두려워 주변국인 탄자니아, 부룬디, 우간다, 자이레(현재의 콩고민주공화국) 등지로 피난하게 된다.

하지만 상당수의 난민들이 르완다와 주변국의 난민촌에서 극심한 식량부족과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으로 숨진다. 이후 상당량의 국제원조와 함께 유엔의 도움으로 1996년과 1997년에 걸쳐 주변국으로 피난 갔던 후투족 난민 130만 명이 르완다로 다시 돌아오게 되지만 살육 초기 유엔이나 미국, 유럽 선진국 대부분은 뒷짐을 지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

저자 '필립 고레비치'는
1964년 필라델피아 출생. 코넬 대학을 졸업하고 콜롬비아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뉴요커>의 필진이자<포워드> 객원 편집자인 그는<그랜타> <뉴욕 북 리뷰><하퍼스> 등의 잡지사의 일원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취재 활동을 해왔고, 1994년 르완다에서 일어난 대학살을 다룬 자신의 이 첫 책으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이 책은 1998년 출간 즉시<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작에 선정되었으며, 전미 도서 비평가상,<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외국 취재 부문 조지 포크상, 뉴욕공립도서관 헬렌 번스타인 도서상을 받는 등 비평적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최근 저서로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사건을 다룬<아부 그라이브 발라드>(2008)가 있다. (책 프로필 인용)
저자는 1995년 5월부터 1998년 4월 초까지 6회에 걸쳐 르완다를 방문, 르완다 곳곳을 다니며 눈으로 본 광경과 생존자들로부터 들은 증언들을 책을 통해 전한다.

그런데 단지 르완다 학살의 참상을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 전반의 식민사와 정작 자신들의 식민통치 때문에 빚어진 문제인데도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서구 열강들의 위선적인 태도, 실리 없는 싸움에 끼어들기를 거부하는 학살방조자 유엔의 실체 등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옮긴이의 글에 르완다의 이와 같은 정치 역사적 배경에 관한 짧은 글이 실려 있다. 워낙 국제사회에 많이 알려진 사건이라 저자의 발길과 목소리를 따라 처음부터 읽으며 이런 역사적 배경을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것도 좋지만,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참고로 필자는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었다.   

아기를 낳는 그 상태로 학살당한 여인, 도륙된 시체들, 수천 명의 시민을 무차별 학살한 시장과 목사, 개와 고양이에게 뜯어 먹히며 죽어간 사람들 등, 소재가 소재인지라 끔찍한 표현들이 좀 많다. 차마 책소개 글에 인용하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아마도 나처럼, 너무 끔찍한 표현의 공포에 읽던 페이지를 덮어버리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끔찍한 표현들이 충격스럽지만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 걸까?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물으며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 이 끔찍한 참상이 100년 전의 일도 아니고 50년 전의 일도 아닌, 인류의 최첨단 문명 기기들이 날로 발전을 거듭하던 불과 15~16년 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어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랴.

1998년에 출간된 이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와 퓰리처상 최종후보작으로 선정, 전미 도서 비평가상을 비롯하여 외국 취재 부문 조지 포크상 외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필립 고레비치의 르완다 제노사이드 보고서처럼 흥미진진한 책이나 소설, 논픽션은 본적이 없다. 그는 우리 모두의 눈높이를 올려놓았다.-<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월 소잉카

-이처럼 눈길을 끄는 책은 처음이다. 그의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20세기 말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라는.-<로스엔젤레스 타임스>

-제노사이드라는 무자비한 공포를 통렬하게 분석한 보고서. 한마디로 열강과 인도주의 단체의 무관심과 편견, 비겁함에 대한 기소장!-브라이어 어커트

-잊을 수 없는 책, 이 책을 읽고 나면 사회가. 인간이, 그리고 우리 자신이 다시는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로널드 스틸

덧붙이는 글 |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필립 고레비치 씀, 강미경 옮김, 갈라파고스 2011, 16,500원)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 르완다 대학살

필립 고레비치 지음, 강미경 옮김, 갈라파고스(2011)


태그:#르완다 대학살, #후투족, #투치족, #제노사이드,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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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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