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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가 아니라 폭우에 당하고 말았다. 보스턴 시내를 구경하고 돌아온 날 저녁, 야영장의 텐트 안을 본 순간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날 오후 늦게 내린 폭우로 평소 물이 샜던 텐트가 아예 물을 받아놓은 어린이용 수영장처럼 변해 있었다. 전날 야심한 시각, 야영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너무 외지고 인적이 없어, 큰일을 당할까 봐 경계했었다. 그러나 우리를 망연자실케 한 것은 괴한의 습격이 아니라, 홍수의 기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로키 산맥을 넘어온 뒤로 제대로 화창한 날이 거의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비가 오거나, 새벽, 그것도 아니면 오밤중 주로 비가 오곤 했다. 내리는 비는 대부분 국지성 호우나 폭우 형태였다. 세계가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데, 유랑자 입장에서는 이게 실질적인 안위의 문제다.

차가 터질 만큼 비좁아 처음에 실었던 물건을 거의 절반쯤 내려 두고 여행 길에 오른 입장에서 여분의 텐트나 침낭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렇다고 한밤중에 침낭과 텐트를 파는 가게를 찾아 나서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설령 밤을 새워 영업을 하는 가게가 있다손 쳐도, 주머니가 얇은 우리로서는 감히 새 침낭과 텐트를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홍수의 기습으로 수영장으로 변한 텐트        

보스턴으로 들어가던 날 마른 하늘에 갑자기 큰 구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텐트를 홍수로 만든 주범이 우리 차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해 온  이 구름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 주범 구름 보스턴으로 들어가던 날 마른 하늘에 갑자기 큰 구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텐트를 홍수로 만든 주범이 우리 차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해 온 이 구름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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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차 안에서 잘게요."

선일이, 병모, 윤의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낭을 양보하겠다고 했다. 한국으로 치면 액센트 만한 크기의 차, 우리 넷 중 누구도 제대로 발을 뻗지 못할 것이 자명한데 '아들 셋'이 모두 차에서 자기를 자원했다.

말이 그렇지, 발 못 뻗고 자는 잠이 어떤 것인지를 자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예 눈을 뜨고 서성이면서 밤을 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무릎을 구부리고 자야 하는 잠은 거의 고문과 동의어이다.

"너희 셋, 모두 텐트 귀퉁이를 하나씩 잡아라. 자, 위 아래를 완전히 뒤집자."

난감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내 말을 특히 잘 따라줬다. 텐트를 뒤집어서 부숴져라 흔들어 댔다. 물이 텐트에서 사방으로 줄줄줄 빠져 나갔다. 앞서 침낭 2개와 요는 미리 꺼내 놓았었다. 텐트를 다시 바로 세운 후 수건 두어 장을 들고 텐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정신 없이 걸레질을 했다. 물에 흠뻑 젖은 텐트 바닥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아무리 닦아도 땅바닥 자체가 비에 젖어 축축한데다, 대기 습도도 높아 비닐로 된 텐트 바닥의 끈적끈적한 기운은 여전했다.

"너희들 셋이서 한 텐트에서 자라. 자동차 안에서는 힘들어 못 잔다."
"괜찮겠어요. 저희가 그래도 젖은 텐트에서 자든지, 아니면 자동차에서 잘게요."

윤의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다행히 침낭은 1개만 젖어 있었다. 아침에 시내로 나가기 전에 침낭을 접어서 차곡차곡 쌓아놨는데, 제일 위쪽의 얇은 요와 맨 밑에 놔뒀던 침낭만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젖은 침낭을 죽 펴보니, 세로 방향으로 전체 면적의 1/4 정도가 길다랗게 물에 젖어 있었다. 물을 머금고 있는 건 안감에 싸인 인조 솜이었는데, 세로 방향으로 젖어 있어서 좀체 물을 짜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1/3 왔는데...앞날을 생각하니 막막

아이들이 지도를 펴놓고, 보스턴 시내를 어떻게 돌아다닐지 상의하고 있다. 이때 까지만 해도 하늘은 더없이 쾌청했다.
▲ 어디로 갈까 아이들이 지도를 펴놓고, 보스턴 시내를 어떻게 돌아다닐지 상의하고 있다. 이때 까지만 해도 하늘은 더없이 쾌청했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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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잠을 자듯이 몸을 옆으로 세워 옆구리를 땅바닥에 붙이고 잠을 청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잘만했다. 거의 젖어있지 않은, 나머지 3/4 정도의 침낭 면적으로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와 습기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새벽 2시 정도까지가 한계였다. 어깻죽지와 종아리가 에이는 듯한 느낌에 새벽녘 갑작스럽게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모세관 현상에 어느새 물에 젖은 침낭 부위는 전체의 거의 절반으로 확대 돼 있었다. 내 어깻죽지와 다리가 젖은 침낭 부분에 걸쳐 있었다. 더 이상 잠을 잘래야 잘 수 없었다. 난생 처음 물에 젖은 요와 이불을 덮고 잔 셈인데, 이게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됐다.

텐트에서 빠져 나와 누적된 수면 부족으로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차 쪽으로 옮겨갔다. 선득선득한 날씨에 그냥 밖에 서있기 보다는 몸이라도 좀 녹여볼 요량으로 운전석 쪽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덩치 큰 병모가 조수석 쪽 의자 위에서 몸을 잔뜩 웅그린 채 잠들어 있었다. 우리 넷 중에서 추위를 가장 안 타는 편인데, 새벽의 한기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얇은 모포를 덮어주고 다시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젖은 침낭에 더 이상은 몸을 눕힐 수 없었으므로 마른 쪽을 골라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이거,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먼." 입에서 신음 비슷한 소리가 절로 나왔다. 로키 산맥을 넘기 전, 열사의 서부 사막지대는 그만하면 무사통과였다. 헌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동부에서 물벼락을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여행 일정을 겨우 1/3이나 소화했을까 말까 한 상황인데, 앞날을 생각하니 막막했다.

내일은 정말 내일의 태양이 뜨는 걸까

갑자기 낮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보스턴 시내가 어두워졌다. 바로 이 시간 우리 텐트는 물에 잠기고 있었다. 왼쪽으로 보이는 높은 건물이 보스턴을 상징하는 고층빌딩 가운데 하나인 존 행콕 타워이다. 서울의 한강 격인 찰스 강 남쪽에 있다.
▲ 행콕 빌딩 갑자기 낮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보스턴 시내가 어두워졌다. 바로 이 시간 우리 텐트는 물에 잠기고 있었다. 왼쪽으로 보이는 높은 건물이 보스턴을 상징하는 고층빌딩 가운데 하나인 존 행콕 타워이다. 서울의 한강 격인 찰스 강 남쪽에 있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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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짐승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네, 뭐했네 하며 큰소리친 게 엊그제인데 한 단계 높은 시련이 진짜 들짐승 자격이 되는지를 테스트하려 드는 것 같았다. 변명이 아니라 물을 이겨 낼 장사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야생에서 단련된 짐승이라도 물 난리는 피해가기 힘들다. 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까지 저지대를 피해 높은 곳에서만 살아온 탓에 평생 수해다운 수해를 겪은 적이 없는데, 이게 한 번 당해보니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도망갈 곳이 없다는 그 아득함, 절망감이 공포로 온몸을 엄습한다.

"아~, 따뜻한 집이 그리워요."

지난 밤 빗줄기 속에서 홍수 난 텐트의 물을 빼낼 때, 윤의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빗줄기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부침개 먹는 상상까지는 호사이다. 그저 비만 피해 잠을 청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은 더디 오고, 가부좌를 틀었던 탓에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았던 발바닥은 더 빨리 차가워졌다. 우습지만, 하늘에 영영 해가 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정말 내일의 태양이 뜨는 걸까."

다리가 저려 와 가부좌를 풀고, 다시 텐트 밖으로 나와 나뭇가지 등을 주워 불을 붙이려 시도했다. 그러나 거의 침수 상태로 젖어있던 나뭇가지들은 불꽃에 의연하게 제 몸을 맡기는척해도 실은 껍질조차 내주지 않았다.

포기하고 다시 또 텐트로 기어들어갔다. 여행 시작 후 사나흘 만에 생긴 치질 종기가 더 부풀어 올라 있었다. 허리를 펴고 반듯이 앉아 있으면 작은 돌멩이가 항문에 박혀 있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생전 치질 같은 걸 모르고 살았는데, 6년 전 혼자 차 타고 10개월 가량 북미대륙을 쏘다닐 때 여름철 처음으로 치질을 경험했다. 이번이 두 번째인데 매우 빠르게 생겨나 거의 엄지 손톱만한 크기로 확대됐다.

"죽고 사는 병은 아니지"하면서도 의지의 한 귀퉁이가 깎여 나가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앞서 운동하다 당한 부상으로 오른쪽 무릎과 오른쪽 어깨가 수술이 필요한 상태인데, 뒤로 미뤄놓고 시작한 여행 길이다. 나이를 못 속인다고, 법랑질이 벗겨진 치주는 진작부터 말썽을 일으켰다. 오른쪽 무릎과 어깨는 그래도 버틸만한데, 잠을 충분히 못 자니 치아는 들고 일어나고, 치질 종기는 급속히 덩치를 불린다. 세세한 의학 지식이 없으니, 면역능력이 꽤나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닌가 막연히 짐작해볼 뿐이다.

비실비실 언제 드러누울지 모르는 자동차나 그 운전자인 나나 피장파장 수리를 요하는 상태이다.

"결국 무리였나, 순리는 여행 길에 오르지 않는 거였나."

후회까지는 아니지만 판단 실수가 있지는 않았는지 내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한국에서 비행기까지 타고 날아 온 아이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 진다. 오만 가지 생각이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어느 새 햇살이 빽빽한 숲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숲 사이로 비친 햇살...해야, 너 본 지 오래로다

"해다 해, 해야 해."

반가움에 탄생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 어젯밤 홍수와 그로 인한 불편한 잠자리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아이들을 좀 넉넉히 재우고 8시에 깨웠다.

"야, 너희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말 알지."

조금 유치한 생각이 들었지만, 흥분해서 내가 애들을 향해 떠들었다. 애들은 그저 살짝 웃는 정도로 말을 받는다. 더 이상의 대꾸도 없다. 한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신세가 암울 그 자체였는데, 해처럼 온 세상이 밝게 보였다. 워싱턴까지 가는 길이 어쩌면 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오늘은 정말 햇빛 있을 때 좀 들어가 보자. 늦어도 10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선일이가 앞장서 "좀 서두르자"고 말한다. 텐트를 걷고, 비에 젖은 침낭과 가재도구를 주섬주섬 싣고, 자동차 키를 꽂자 계기판 아래 쪽의 시계가 들어왔다. 10시 23분. 정확히 일어난 지 2시간 23분의 출발이다. 그 동안의 3시간 공식이 처음으로 깨진 순간이기도 했다.

"뉴욕만 속을 썩이지 않는다면 잘될 것도 같은데…."

미국에서 그간 제법 차를 몰아본 경험으로 볼 때 보스턴과 워싱턴의 딱 중간인 뉴욕에서 교통 지체만 없다면 워싱턴에서는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지 않고, 텐트를 치고 밥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 주행거리 720km, 주행 시간 8시간, 아니 2시간쯤을 길에서 허비한다 쳐도 잘하면 최소한 여명이 남아있는 시간 워싱턴 입성이 가능했다.

그러나 뉴욕 남쪽부터 워싱턴에 이르는 지역에 비가 올 수 있다는 예보가 찜찜했다.

"누가 기상이변을 초래한 거야. 정말 패버리고 싶다. 아무리 초저가 여행이라지만 우리도 사람 아니냐, 좀 인간답게 살게 해달란 말이다."

뒷자리에서 탄 두 녀석이 킥킥거렸다. 녀석들, 뭘 잘 모른다. 날씨 이거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당장 여행 때려치우고, 전 세계에서 동지를 규합해 '날씨당'이라도 하나 만들어서 싸움을 시작해야 할 판이다. 

덧붙이는 글 | cafe.daum.net/talkus



태그:#텐트, #수영장, #폭우, #보스턴,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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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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