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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난 지 여러날 째, 곧 처서다. 어제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미 울음소리 쟁쟁했는데 오늘은 매미소리 들리지 않고 귀뚜라미가 귀뚤귀뚤 귀뚜르르~ 쉬지 않고 울어댄다. 이상한 일이다. 이제 매미소리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점령한 것일까.

 

아침에 깨어 일어나면 서재 창문 너머 마주 뵈는 나무들에서 매미울음 소리 가열하게 들려왔다. 맴 맴 맴 맴 맴 매에 엠... 그것들은 지치지도 않고 그악스러울 정도로 울어댔다. 7년(혹은 17년까지도) 간 땅 속에서 굼벵이로 지내다가 땅 위로 올라와 탈피를 하고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의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목청껏 힘을 다해 노래하고 자기 생을 마감하는 매미. 그래서 더욱 온몸 온힘을 다해 울어대던 매미였다. 그 울음소리는 나무를 진동시키고 공기를 찢으며 열정을 다해 노래했다. 온 생애를 다해서.

 

얼마 전 여름휴가를 거제자연휴양림에서 보냈었다. 뜨거운 여름햇살이 내리쬐는 무더운 날 의 숲은 온통 매미소리 가득해 한낮의 더위를 더 뜨겁게 했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은 뜨거운 것'이라 했던 안도현 시인의 싯귀가 떠올랐다. 휴양림에서 야영하던 날 동안 매미는 이른 아침의 기상나팔이었고 알람시계였다. 이른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숲은 매미소리가 점령했다.

 

우연히 한밤중에 산책하던 길에서 나무 위에 붙은 매미가 탈피를 하고 있는 것을 처음으로 목도했다. 잠자리채를 한밤중에도 들고 놀던 아이들이 내게 다가와 탈피광경을 많이 보았다며 자랑했다. 탈피하는 시간은 대략 5-6시간. 그 짧은 생애에 비하면 탈피하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 마침 매미는 하얗게 등껍질에서 빠져나오고 있었고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놀라웠다. 매미 울음소리는 여름 내내 그토록 뜨거웠다.

 

오늘은 귀뚜라미 울음소리로 가득하다. 이른 아침부터 뜨겁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 잦아들고 저녁이 되면 가까이 들려오던 귀뚜라미 소리였다. 입추가 되기 며칠 전부터 밤마다 침대 머리맡에 누우면 창 밖 숲속 어디선가 귀뚜라미가 울었다. 가을을 예고하고 있었다. 밤마다 침대 위에 누우면 귀뚜라미 소리 가까이서 청량하게 울어댄다. 처절하지도 열정적이고 뜨겁지도 아니하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일정한 음높이로 한밤중의 벗으로 깊숙이 찾아온다. 가을이야, 이젠 가을이야...하고 속삭인다.

 

아침에 듣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소음 속에 묻혀서 들려오기 때문일까. 귀뚜라미 울음소리조차 바쁘게 느껴진다. 그것들의 울음소리 듣기 좋은 시간은 밤 이슥한 시간이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어둠이 깊어지면 귀뚜라미 울음소리 맑다. 밤이 깊을수록 사색하기 좋은 밤을 선사한다.

 

귀뚜라미는 생각하라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한여름 내내 뜨겁게 타오르던 열정과 욕심들...가만가만히 내려놓고 몸 낮추고 마음 낮추고 내면으로 침잠하라고 말을 걸어온다. 나는 문득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것은 없을까 돌아본다. 한 밤중에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으며 나는 철학자가 된다. 더 깊은 기도의 무릎을 꿇고 고요해지고 싶어진다. 김현승 시인은 '가을의 기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바야흐로 가을이다. 지난여름엔 매미 울음소리 가득했다. 그것이 뜨거운 열정과 제 한 목숨 다해 달려온 노래였다면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끌어안고 소유하려했던 그 모든 것 가만히 힘 빼고 내려놓고 고요하라고 내면을 돌볼 시간이라고 노래한다. 사유와 인식의 시간을 마련하라고 노래하는 듯하다. 매미 울음소리는 뼛속과 뱃속까지 꽉 찬 뜨거움 안고 쟁쟁하게 울어댄 것이라면, 귀뚜라미는 뱃속이 텅 빈 듯, 텅 빈 뱃속에서 올라오는 그 맑고 투명함으로 노래한다. 가을이야, 가을이야. 귀뚜라미는 모든 소요가 가라앉고 고요가 깃드는 밤이면 찾아와 머리맡 창밖 어둠 속에서 울어댄다. 이제 가을의 전령 귀뚜라미 울음소리 시나브로 들리니 정녕 가을이다.


태그:#가을, #귀뚜라미.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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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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