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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역에서 대낮에 만난 만난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
 순천역에서 대낮에 만난 만난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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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철이 되면 우리 집은 성수기다. 아내와 내가 워낙에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 하는지라 우리 집은 손님이 끊임없이 오는 편이다. 그런데 요즈음 상수도가 폭우로 파열이 되어 며칠째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웃집 혜경이 엄마가 우수개소리로 말했다. "물도 안 나오는데 이제 손님 그만 받아요." 그 말에 아내의 말이 더 재미있다. "그래도 예약된 손님은 받아야지."

12일날은 큰 아이 영이가 휴가를 받아 서울에서 왔고, 13일에는 처남 아이들이 목포에서 기차를 타고 왔다. 또 14일에는 친조카와 아이들 식구 6명이 왔다. 그러나 이 꼬마 손님들은 모두 예약된 손님들이다. 옛날부터 어른 손님보다 꼬마 손님들을 더 잘 맞이하라는 말이 있다. 14일 날은 어른 손님 부부 두 쌍이 온다고 전화가 오더니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바람에 취소를 했다. 내심으로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겹손님을 받다보면 꼬마 손님들에게 소홀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처남 가족이 오는날 순천역으로 갔다.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싶다고 하여 목포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일부러 타고 온 것이다. 아내와 영이랑 함께 12시 20분에 도착하는 처남 가족을 맞이하러 순천역으로 갔다. 계족산을 넘어 순천역에 도착을 하니 12시 10분이다.
전라선과 경전선이 합류하는 1930년에 개통한 유서깊은 순천역. 역사를 새로 신축하여 거대한 건물이 들어 서 있다.
 전라선과 경전선이 합류하는 1930년에 개통한 유서깊은 순천역. 역사를 새로 신축하여 거대한 건물이 들어 서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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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역사를 지은 순천역은 크고 고급스럽다. 경전선과 전라선이 합류하는 순천역은 1930년에 개통을 한 역사적인 역이다.  자동차를 역사에 파킹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한 무리의 무장 군인들이 철모를 쓰고 기차에서 내려 지나갔다. 그 무장군인들을 보는 순간 갑자기 '여순10.19사건'이 떠올랐다.

여순 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14연대가 일으킨 사건은 동족을 학살 할 수 없다는 사건이다. 국군 14연대는 38선을 철폐하고 조국통일을 이루자며 제주 4.3사태 진압을 위한 출동명령을 거부했다. 

대낮에 순천역에서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을 바라보자 마치 비상시 계엄군 파견을 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때마침 나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해방이후 1948년부터 6.25 한국전쟁, 1953년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는 가을까지 시대적인 배경으로 쓰인 태박산맥은 우리민족의 한과 가슴 아픈 역사를 구구절절 반추해낸 역사소설이다. 지리산 지역으로 이사를 온 후 다시 읽는 <태백산맥>은 현지 배경을 답사하며 읽어보게 되니 새롭다. 이 작품 속에서도 순천역은 자주 언급이 된다.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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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처남 가족이 도착했다. 우리는 벌교로 가서 꼬막정식을 먹기로 했다. 그 쫀득쫀독득 꼬막정식을 먹고 조정래의 <태백산맥문학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순천에서 벌교까지는 그리 멀지가 않다. 순천만을 끼고 20여분 만에 우리는 태백산맥문학관에 도착했다.

문학관은 벌교읍 회정리 현부자네 집과 소화의 집이 있는 역사의 현장에 위치하고 있다. 문학관 앞에는 태백산맥화이트하우스란 건물이 있다. 목조건물에 하얀 페인트를 칠한 이 건물에는 <현부자네 꼬막정식>과 <소화찻집>이 있다. 찻집 앞에는 수련을 심은 연못이 마치 소화처럼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소설 태백산맥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정경이다.

문학관 앞에 있는 현부자네 꼬막정식과 소화찻집
 문학관 앞에 있는 현부자네 꼬막정식과 소화찻집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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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을 1박 2일로 찾는 방문객들에게 권하는 코스가 있다. 첫날은 노고단에 올라 지리산과 섬진강을 조망하고 내려와 섬진강 다슬기국을 먹는다. 둘째 날은 오전에 순천만을 거닐며 바다와 갈대밭에서 낭만을 만끽하고, 벌교로 가서 쫀득쫀득한 꼬막정식을 먹은 다음에 태백산맥문학관을 둘러보는 코스이다. 산과 강, 그리고 바다와 문학을 동시에 느껴보는 멋진 코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대부분의 방문객은 이 코스에 대 만족을 느낀다.

꼬막정식은 벌교에서 먹어보는 백미중의 백미다. 갯뻘에서 채취하는 참꼬막은 소설 태백산맥에서 기술을 햇듯 그 맛이 쫀득쫀득하고 독특하다. 장기간 해외에 나가 있을 때에도 생각나는 벌교만의 토속음식이다. 해서 사람들은 벌교에 가면 태백산맥에 나오는 빨치산의 아내 외서댁을 생각하며 모두가 꼬막정식의 맛에 흠뻑 빠지고 만다. 꼬막정식을 배불리 먹고 차를 한 잔 마신 다음 우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문학관을 들어섰다.

쫀득쫀득한 맛을 내는 벌교 꼬막정식
 쫀득쫀득한 맛을 내는 벌교 꼬막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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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문학관은 조정래 작가가 생각하여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건축가 김원씨가 설계하여 건축한 독특한 건물이다. 소설 태백산맥을 통해 어둠에 묻혀버린 우리의 현대사를 보며, 동굴과 굿판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고 절제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한 발 물러선 듯한 모습으로 시각화시킨 북향의 문학관은 깊이 10m 아래에 자리 잡았다. 건물이 북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통일의 염원을 담은 것이다. 벌교읍 제석산 등줄기를 잘라내고 공중에 매달려 있는 형상으로 건축된 문학관 앞에는 소화의 집과 현부자네 집을 복원시켜 놓고 있다.

태백산맥 작가 조정래 씨
 태백산맥 작가 조정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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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의 자료수집을 한 취재 수첩
 4년간의 자료수집을 한 취재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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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는 작가의 육필원고 등 719점이 진열되어 있다.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했던 각종 취재 노트와 준비, 탈고, 출간 이후, 작가의 삶 등이 적나라하게 진열되어 있다. 또한 불어와 일어로 번역된 번역판, 영화 속의 태백산맥을 느껴 볼 수 있도록 소화, 염상구, 하대치의 육성을 청취해 볼 수 있는 이어폰도 설치되어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의 육필원고이다. 사람 키보다 높은 원고지 1만6500장이 태백산맥보다 높게 보인다. 이 원고를 쓰기 위해 작가는 4년간의 준비와 6년간의 집필, 10년간 <글감옥>에 갇혀 총 10권의 대하소설을 완성하였다. 전시실 2층으로 가면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독자들이 베껴 쓴 원고가 차례로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사람 키보다 높은 조정래 작가의 육필원고 1만 6500매
 사람 키보다 높은 조정래 작가의 육필원고 1만 6500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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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독자들이 베껴 쓴 육필 원고지
 작가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독자들이 베껴 쓴 육필 원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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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쓴 작가의 만년필
 원고를 쓴 작가의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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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일랑 이종상 화백의 벽화는 높이 8m, 폭 81m에 이른다. <원형상-백두대산의 염원>이란 제목의 작품은 지리산에서부터 백두산까지 4만여 개의 자연석 몽돌을 채집하여 그 하나하나에 민족의 염원을 담아 건식 공법으로 제작되었다. 이 벽화는 국내 최초, 최대의 자연석 옹석벽화로 한국기록원으로부터 공식인증(2011.6.9)을 받았다.

우리나라 5만 원권과 5000원 권 화폐의 영정을 그린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 이종상 화백과 조정래 작가, 문학관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김원이 공동으로 기획한 대작으로 제작 기간만 1년8개월에, 연인원 4850명이 투입됐다.

백두대간의 염원을 담은 벽화는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자연석 몽돌 채집하여 4만 여장의 옹돌로 쌓았다.
 백두대간의 염원을 담은 벽화는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자연석 몽돌 채집하여 4만 여장의 옹돌로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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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염원을 담은 벽화
 통일의 염원을 담은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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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와 김원 건축가, 이종상 화백은 소설 속의 주요 무대와 지리산 등을 찾아 상징적인 옹석 수집에 나섰으며, 특히 이 화백은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등 북한지역까지 찾아다니면서 민족통일의 염원을 담은 옹석을 모으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전시실을 나오니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태백산맥문학관을 나온 우리는 <현부자네집>과 <소화의 집>을 돌아보았다. 정하섭과 무당의 딸 소화가 뜨거운 사랑을 불태웠던 소화의 집은 어쩐지 슬픔과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소설 속의 여자 주인공 무당의 딸이자 정하섭의 애인이었던 소화네 집
 소설 속의 여자 주인공 무당의 딸이자 정하섭의 애인이었던 소화네 집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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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부자네 집
 현부자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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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읍내로 차를 몰았다. <조정래의 길>을 따라 철다리와 제2부용교를 지나 소화다리로 갔다. 염상구와 주먹패들이 패권을 놓고 한 판 승부를 버린 장소다. 벌교(筏橋>라는 이름은 '뜬 다리'라는 뜻의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벌교는 다리가 많다. 기차가다니는 철다리, 차가 다니는 다리가 세 개, 인도로 개량한 소화다리, 그리고 문화재로 지정된 홍교에 이르기까지 작은 읍에 다리가 유독 많다. 

소화다리 인근 로터리에는 꼬막정식 집이 많았다. 이 거리는 마치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한다. 그중에서 <외서댁 꼬막나라>란 간판도 보였다. 외서댁은 소설 속에서 빨치산 강동식의 아내로 청년단장 염상구에게 겁탈을 당한 기구한 운명을 지닌 빨치산의 아내로 그려진다. 다음에 벌교에 오면 <외서댁 꼬막나라>에서 그 쫀독쫀독한 꼬막정식을 먹어보리라.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하는 거리의 간판. <외서댁 꼬막나라>란 간판이 눈길를 끈다.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하는 거리의 간판. <외서댁 꼬막나라>란 간판이 눈길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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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는 순천, 보성, 고흥반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다. 일제 강점기 철교 아래 선착장에는 밀물을 타고 들어온 일인들의 통통배가 득실거렸다고 한다. 보성군과 화순군 등 내륙으로 직결되는 포구에는 상업이 번성하였고, 돈을 좇아 인구가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 그에 못지않게 짱짱한 주먹패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인도교로 복원을 한 소화다리
 인도교로 복원을 한 소화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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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화순, 내륙을 잇는 상권을 형성했던 벌교역
 보성,화순, 내륙을 잇는 상권을 형성했던 벌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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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벌교에 가서 돈 자랑,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말은 '순천에 사거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 가서 멋 자랑 하지 말라'는 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말들이 생겨났다. 비가 세차게 내렸다. 우리는 벌교역을 지나 태백산맥 역사 속의 벌교를 등지고 지리산으로 넘어왔다. 


태그:#벌교, #태백산맥문학관, #조정래, #벌교꼬막정식, #외서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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