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새벽 3시쯤 잠을 깼다. 천둥소리가 요란스럽더니, 이내 억수처럼 비가 쏟아졌다. 텐트 안에서 듣는 빗방울 소리는 특히 시끄럽다. 그러나 새벽녘까지 보드카를 마시다 잔 '아들 셋'은 잠에 푹 빠져 있다. 나는 전날 자정이 되기 좀 전에 잠들었으므로 3시간 남짓 자고 깬 셈이다. 더 잘 수도 있었지만 사실은 불가능했다. 잠이 더 이상 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홍수 대책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내리는 비는 강한 바람을 동반하고 있었다. 서둘러 텐트 밖으로 튀어 나왔다. 허리를 구부리고 방수막을 점검했다. 그리고 앵커 자리를 살펴봤다. 텐트를 땅에 고정시키는 쇠말뚝을 박지 않은 상태여서 텐트가 요동을 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선 얼른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와 배수 작업을 시작했다.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됐지만, 고양이 눈물 정도의 빗방울들로 텐트 가장자리 여기저기는 이미 젖어 들고 있었다. 로키산맥 등성이에서 밤을 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수건 배수'를 시작했다. 수건으로 물을 훔쳐낸 뒤, 밖으로 계속해 짜내는 방식이다.

폭우에 대비해 사놓은 가로, 세로 약 8미터짜리 비닐 천막을 칠까 하다 포기했다. 왠지 지나가는 비 같은 느낌이 들었고, 텐트를 치려면 단잠에 빠진 아이들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은 깨워야 했다. 비는 다행히 먼동이 트기 직전에 잦아들었다. 새벽 6시가 좀 넘자 희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빛이 텐트 안을 제법 밝혔다. 텐트 바깥으로 나왔다. 서쪽 하늘은 맑았고, 시커먼 구름은 동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우리가 밤을 난 나이애가라 폭포에서 멀지 않은 뉴욕 주의 한 야영장. 텐트들이 숙달된 솜씨로 야무지게 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람불면 날아가고, 비오면 물이 새는 우리들의 텐트치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 선수들의 텐트 우리가 밤을 난 나이애가라 폭포에서 멀지 않은 뉴욕 주의 한 야영장. 텐트들이 숙달된 솜씨로 야무지게 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람불면 날아가고, 비오면 물이 새는 우리들의 텐트치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 김창엽

관련사진보기


누가 충청도 사내들 아니랄까봐... 속 터져서 여행 못하겠네

'아들 셋'을 바로 깨울까 하다 그만뒀다. 강행군이 예상되는 날인데, 잠을 좀 더 자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한 시간쯤 지나 오전 7시에 모두를 기상시켰다.

"잘들 잤니."
"옙!"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하는 게 시간이 충분치는 않았어도 제법 숙면을 취한 것 같았다. '아들 셋'은 텐트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아침 운동을 개시할 태세였다. 운동화 끈을 조이고,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준비운동을 했다. 요즘 아이들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들 셋'만 보면 몸매와 용모 관리에 쏟는 신경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늘도 일정이 간단치 않다. 밥 차릴 준비는 거의 다 됐으니, 침낭도 개고 텐트도 접고, 샤워할 사람은 샤워도 해라. 서둘러 출발해야겠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속으로 '이놈들, 오늘도 느려터지게 굴면 한마디해야겠다'고 별렀다. 그간 '아들 셋'의 굼뜬 동작에도 불구하고 나름 무던하게 화를 삭여내곤 했다. 충청도 사람으로서 자부심이 남다른 '아들 셋'의 기본 동작이 내겐 모두 '슬로 비디오'로 비쳐지곤 했다.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성질 급한 나로서는 미치고 팔딱 뛰고 환장할 정도였지만, 그때마다 참고 또 참았다. 내 성질이 폭발하면 여행이고 뭐고, 그때는 모두 끝장나는 거였다. 그런 파국을 나는 원치 않았다.

속으로 내가 벼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 셋'은 하던 대로 했다. 집에서와 다른 점이라면, 침낭을 개고, 텐트를 접는 일 정도였다. 아침을 먹고, 차에 짐을 다시 집어넣고, 엔진에 시동을 건 시각이 정확히 10시였다. 나는 심호흡을 몇 차례 하고, 지그시 소리를 낮춰 한마디했다.

'유랑인의 피' 흐르는 내 눈에는 모두 '슬로 비디오'일 뿐

"이건 좀 너무하지 않니, 내가 그동안 유심히 봤는데, 아침에 일어나 출발하는 데까지 매번 정확하게 3시간씩 걸렸다."

한번 더 참기로 하고, 짐짓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의사를 표출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음~, 여행이 달리 수행이 아니군. 내가 너희들로 해서 많이 배우고 있다, 요놈들아.'

자동차 핸들에 손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어깨의 힘을 빼고, 목젖까지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을 차분하게 음미했다. 술을 못 마시는 내가 상상해본다면, 소주를 이런 맛으로 먹는지도 모르겠다. 

'아들 셋'이 정확히 3시간 걸려 한 일을 나더러 하라고 한다면 40분 정도면 족하다. 난 이들의 '느림의 미학', 혹은 '게으른 일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가식서가숙 스타일의 여행에 난 확실한 장점을 가진 사람이다. 무엇보다 먹고, 배출하는 데 능수능란하다. 식사 시간은 집에서도 여간 해서 5분을 넘기지 않는다.

게다가 하루 3끼 식사를 한 차례에도 끝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엄지손가락만 한 소시지 40~50개쯤을 아침식사로 한자리에서 먹고, 이튿날 아침식사 때까지 전혀 배고프지 않게 견딜 수 있다. 화장실에서도 큰 것, 작은 것이 사실상 시간 차이가 없다. 바지를 올리고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추가될 뿐이지 용변에 걸리는 시간은 똑같다.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게 일상인 유랑인의 피가 내겐 진하게 흐르고 있다.

뉴욕주와 경계에 세워진 매사추세츠 주의 통행요금소. 미국에서 고속도로는 통행료가 없어 흔히 프리웨이로 불리지만, 보스턴 뉴욕 워싱턴 등 동부 지역을 잇는 주요 고속도로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료가 많다. 파이크(Pike) 혹은 턴파이크(Turnpike)라는 이름이 붙은 고속도로는 모두 통행료를 받는 도로라고  간주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우리같은 자동차 여행자들에겐 피해가고 싶은 도로이다.
▲ 돈 내세요 뉴욕주와 경계에 세워진 매사추세츠 주의 통행요금소. 미국에서 고속도로는 통행료가 없어 흔히 프리웨이로 불리지만, 보스턴 뉴욕 워싱턴 등 동부 지역을 잇는 주요 고속도로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료가 많다. 파이크(Pike) 혹은 턴파이크(Turnpike)라는 이름이 붙은 고속도로는 모두 통행료를 받는 도로라고 간주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우리같은 자동차 여행자들에겐 피해가고 싶은 도로이다.
ⓒ 김창엽

관련사진보기


좀비 나올 것 같은 밤풍경...'무섭다' 말도 못하겠네

7월에 시작한 여행이 8월로 넘어왔지만, 여름 햇빛은 여전히 창창하게 남아 있었다. 나이애가라폭포를 떠나 보스턴으로 향하는 길은 만만치 않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결코 유달리 힘든 축에 속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11월까지 서머타임을 실시하는 덕분에 보스턴에 오후 8시 30분까지만 도착한다면, 최소한 여명의 덕을 볼 수 있었다.

초행의 목적지에 햇빛이 살아 있을 때 도착하는 것과 어둠이 깔린 뒤에 도착하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텐트를 치고 밥을 해먹는 등 기술적인 어려움은 둘째 치고 심리 상태가 확 달라진다. 빛이 있는 세상과 어둠에 묻힌 세상의 차이를, 야생으로 전전하는 유랑자들만큼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부류들도 많지 않다.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들에게 밤은 안식의 시간이지만, 쉼 없이 이동해야 하는 유목형 여행자들에게는 으레 불안한 시공간이다.

"야 좀비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인데."

상황 판단 잘하고, 눈치 빠른 병모가 주변 상황을 정리했다.

"글쎄 말이야. 왜 사람들이 이런 데서 살지?"

선일이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사방을 둘러보며, 편치 않은 심사를 노출했다. '무섭다'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면 더 무서울 것 같아서인지, 젊은 친구들은 노골적으로 이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최소한 살짝 떨고 있음은 분명했다.

세계 대학가의 명소처럼 알려졌지만, 크기가 손바닥만한 광장에 불과하다. 대학생인 '아들 셋'은 하버드라는 이름 세 글자가 아주 조금 기를 죽이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 하버드 스퀘어 세계 대학가의 명소처럼 알려졌지만, 크기가 손바닥만한 광장에 불과하다. 대학생인 '아들 셋'은 하버드라는 이름 세 글자가 아주 조금 기를 죽이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 김창엽

관련사진보기


미국에서 여행하다 피습당하는 외국인들이 있다는데...

예상대로 또 늦었다.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해 처음 그랜드캐니언에 들렀을 때, 그리고 나이애가라폭포를 찾았을 때를 제외하곤 야밤 도착이 일상화되는 조짐이 있었는데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스턴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40k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야영장으로 향하는 조그만 마을의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구불구불 돌아가는 어둠의 숲길이 그 뒤로도 40분 가량 이어졌다. 지도만 보면 맞는 것 같긴 한데, 도대체 가도가도 야영장이 나타날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하늘을 완전히 뒤덮을 정도로 쭉쭉 벋은 활엽수림으로 사이로 난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길을 힘겹게 훑는 내 차의 전조등이 그만 기력을 잃고 꺼져버릴 것 같았다.

일부러 적막의 공간, 어둠의 공간, 죽음의 공간을 찾아가는 일행들처럼 우리들은 일순간 풀이 죽어 있었다.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았고, 차 안에 한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집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와서, 대륙까지 횡단하며 이게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그 사이에 저마다 한 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어렵사리 찾아간 야영장 입구는 을씨년스러웠다. 매표관리소 통나무 건물의 처마에 달린, 그렇잖아도 희미한 전등 빛은 부슬비로 인해 주기적으로 조금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마치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동물의 맥박 같았다. 우발적인 사건은 말 그대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분위기가 착 가라앉다 못해, 불길한 생각이 머리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강도한테 기습을 당하는 일은 없을까?'
'미국에서 떠돌이 여행을 하다가 가끔 피습당하는 외국인들도 있다는데….'

대륙의 동쪽 끝을 야심한 시각에 찾은 4명의 동양인 남자들인 우리는 등 떠밀려 사지에 발을 들여놓는 기분이었다.

덧붙이는 글 | cafe.daum.net/talku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공포, #야영장, #기습, #보스턴, #동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