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위에 떨어진 물방울이

모래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꽃이 진 발자국마다

아직 별이 남아 있어

나는 보고 있었다

낯선 시간이 다가와 물었다

그때를 기억하느냐고

바람이 불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을 뿐이다

어깨 위에 떨어진 꽃잎의

무게를 느끼지 않았더라면

나는 울었으리라

최종천의 시 <모래 위에 떨어진 시선>전문이다. 용접공 노동자인 그는 '손상되지 않은 자연과/ 소외되지 않는 노동'을 줄곧 이야기해왔다. 이 시에서는 그가 늘 묻는, '부란 무엇인가?'보다 '인간적인 사회는 도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그 어떤 구체적인 노동의 세계에서 벗어나 단지 모래와 물방울과 꽃잎의 무게로 속삭이듯 쓸쓸하게, 또는 외롭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모래 위에 떨어진 물방울을 보았던 것이다. 그 맑은 물방울이 모래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 끈질긴 모습을 가슴 깊숙이 새긴 것이다. 꽃이 진 발자국마다 아직 별이 남아 있는 그때! 그는 어깨 위에 살풋 떨어진 꽃잎의 무게를 느끼고 울었으리라.

그러나 이 시는 새삼 전율을 느끼게 한다. '낯선 시간이 다가와 물었다/ 그때를 기억하느냐고'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이내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다. 낯선 시간은 이미 수천 년 동안 모래를 물고 놓아주지 않은 물방울을 헤집고 있다. 꽃이 진 발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거기에 남아 있는 별들은 덤프트럭과 굴삭기 삽날에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바로 그 무자비한 현장이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남은 모래강, 내성천이다.

만석보 터지는 물에 

한반도는 7할 이상이 산악이다. 어디를 가나 산천이 수려하고 경개가 좋다. 산마다 여울물이 흐르고 골짜기마다 우금치 계곡이 휘돌아나온다. 그 물들이 모여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평야를 이룬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이 물줄기를 가두어 백성들을 수탈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자들이 있었다. 고부농민전쟁의 발단이 되었던 것도 다름 아닌 만석보였다.

만석보는 아다시피 고부군수 조병갑이 정읍과 태인천 아래에 있는 동진강을 막아 쌓은 것으로, 조병갑은 이 보를 쌓고 농민들로부터 수세란 명목으로 세금을 받아 착복하였다. 마침내 수탈에 항거한 고부농민들이 들고 일어났고 만석보를 허물어뜨렸다. 이로 인해 조선팔도를 뒤흔든 동학농민운동의 불길이 타올랐다.

만석보는 허물어지고 사적으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최근, 만석보 아래 드넓은 평야에는 멀리 부안 쪽으로까지 엄청난 규모의 새만금방조제가 들어섰다. 아예 강물의 하류를 바다로 부터 통째로 막아버린 것이다. 그래 놓고 그것을 "서해안시대를 여는 21세기의 대역사"라고 이름 지었다.

대역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라는 4대강 사업으로 이어졌다. 살아 있는 국토가 숨을 내쉬는 대동맥과 정맥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강과 지천에는 어김없이 댐이 들어서고 보가 들어섰다. 하구에는 거대한 둑이 만들어지고 바다는 방조제로 가로막혔다. 도대체 무얼 어쩌자는 역사(役事)란 말인가? 하나님도 감히 이루지 못할 일을 하나님을 순종하는 악마가 기를 쓰고 해내고 있다. 만석보 터지는 물에 유지비를 세우듯 우리는 악마가 만들어 놓은 보를 터뜨리고 과연 후일에 무슨 비문을 새겨야 할까?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되돌아온다

지금, 강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황홀하게 노을 지는 강변과 갈대밭과 모래톱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있다. 버들치도 우렁이도 왕버들숲도 물새도, 물새들의 울음도 꽃잎, 풀잎도… 시멘트에 뒤범벅된 모래알처럼 굳어지고 묻히고 버려지고, 사막과도 같은 야적장에 분진막으로 가려진 모래무덤이 아무런 대책 없이 쌓여 있다.

이렇게 강을 죽이는 원흉은 곳곳에서 건설되고 있는 댐이다. 댐은 1960년대 경제개발과 더불어 수력발전과 홍수예방, 그리고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강의 상류에 대부분 다목적댐으로 건설되었다. 상류에 놓인 댐이 흐르는 물길을 가두어버리자 강의 아래쪽은 당연히 수량이 부족하게 되고, 때문에 중하류에서는 콘크리트 보를 쌓아 또 다시 물을 가두었다. 그래서 흐르지 못하는 물은 썩고, 물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와야할 모래는 강바닥을 채워주지 못했다.

댐과 보의 콘크리트 벽에 가로막힌 모래는 제 갈 길로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물살에 떠내려오는 모래가 강이 되고, 그 강이 다시 물을 품고 흘러 흘러 바다로까지 나아가야 할 텐데, 물과 모래의 공급이 끊긴 강은 점점 돌자갈이 드러나고 억새풀이 무성하고 끝내는 육지화가 되어버렸다. 이 같은 현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있으면서도 수자원공사는 강을 죽이는 이 무자비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자연제방을 콘크리트 블록으로 단장하고 휘돌아 굽이치는 물길은 일직선으로 바꾸고, 수백 수천 년 쌓인 강바닥의 모래를 끝간 데 없이 퍼올려 어마어마한 모래의 신전을 만들고 있는 4대강 토목공사! 흡사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이 기가 막힌 속도전이 어이없게도 강을 살리기 위한 공사란다. 내가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동안, 우리가 그저 머리만 가로젓고 한숨만 쉬고 있는 동안…. 한 번 사라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물이, 금모래가, 갈잎의 노래가 영영 사라지고 있다.

지율스님을 모시고 한국작가회의 회원들과 사진, 영상 기록인들 십수 명이 내성천을 찾았을 때, 내성천 상류의 영주댐 건설현장은 본댐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우리는 단지 눈으로 그 모습을 확인하고 무력하게 돌아서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모래톱을 맨발로 걸으며, 서로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한없이 무기력했다. 그때, 낯선 시간이 다가와 물었다. 그때를 기억하느냐고? 아, 우리는 그때를 기억한다고 대답하기 위해서 흐르는 강물에 발을 씻었더란 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비로소 상주보에 가서 보았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다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신비한 모래강에서 그것을 깨달았다.

이미 공사를 끝내고 중장비들이 철수한 상주보에는 수십 대의 굴삭기와 덤프트럭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지난주에 2~3일 내리 쏟아진 폭우 때, 말끔하게 파놓은 강바닥에는 모래를 퍼내기 전 그대로 다시 쌓였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그 모래들을 정신없이 퍼내고 있었다. 그렇다. 저게 말 그대로 사상누각이요, 도로아미타불이다!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의 투자와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재벌집단의 건설자본이 이른바 삽질정권과 야합하여 멀쩡한 강바닥을 파고, 또 파고, 메워지면 또 파고, 죽도록 파고, 그렇게 평생 편하게 앉아서 보수, 관리만으로도 큰돈을 벌 수 있는 일거리를 마련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운하, 강의 고속도로

강만수 대통령경제특보는 올 2월, 4대강 사업이 치수사업이 아닌 호텔 레저사업이라고 드디어 고백을 했다. 여기에서 대규모 개발을 통해 파생사업을 늘리고 청년실업자 구제사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단다. 개발레저사업이라니! 그렇다면 개발 가능한 예정지만 배를 띄우게 하면 될 것이지, 왜 강바닥 전체를 일정한 깊이로 파내고 그 높이에 맞춰 길목마다 보를 세우는 것일까? 운하에서 치수로, 치수에서 다시 개발레저사업으로 말 바꾸기만 할 뿐이지, 4대강 현장을 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사업이 운하를 위한 전초전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화물차 운전 일을 하는 나는 수출입 물량을 싣고 인천공항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면서 한창 공사 중인 경인운하를 본다. 장관이다! 가히 무지막지하게 파헤쳐 놓았다. 수십 미터의 언덕처럼 경사진 강둑 안으로 무시무시하게 밀어붙여 놓은 강물! 그 물줄기를 가두어 대체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들끓어 오른 촛불을 때려잡는 데 눈을 돌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 이듬해, 착공식도 없이 굴포천 방수로 공사를 시작으로 한강 하구에 삽날을 꽂았다. 국민들은 까마득히 몰랐다. 착공식은 고사하고 이명박이 직접 테이프를 끊은 기공식마저 "저탄소 녹색 성장의 꿈을 안고" 국민들 몰래 추진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나 일직선으로 뻗은 강의 고속도로가 생겨나고 있다. 이른바 '경인아라뱃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경인운하, 아라뱃길 사업의 타당성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속내를 보면 전면적인 반대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이와는 반대로 오세훈 서울시장은 여의도 한강공원에 국제무역항까지 만들겠다고 말했다. 여의도에 선착장을 비롯한 대단위물류기지를 거느린 항만이 과연 만들어질까? 

어차피 서울과 인천, 한강과 서해는 공항과 철도와 강물로 연결되어 있고, 그러므로 사업의 성격이나 내용이 일부 변경될지언정 뱃길은 예정대로 뚫릴 수밖에 없다. 반대를 이야기하기엔 너무 늦었다. 이미 빼도 박도 못하게 콘크리트 타설이 끝나고 멋들어진 블럭으로 정리된 어마어마한 강둑이 완성되었다. 막상 공사 현장을 보면 직선의 수로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4대강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아, 낮은 탄식과 절망뿐이다. 사업을 시행하기 이전에 아무런 물리적인 저항이나 충돌이 없었으므로, 기껏해야 종교인들의 기도와 시민환경단체의 답사와 생명을 지켜내려는 이들의 삼보일배! 이렇게 착하고 순한 행동들은 이명박에게 어쩌면 축원이었다. 너무나 손쉽게, 밤낮없이, 중장비의 바퀴를 굴릴 수 있었다. 아무도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고 격렬한 논쟁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운하가 뭔가 했다. 그런데 그것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니 다름 아닌 강의 고속도로였다. 멀리서 보면 참 멋들어져 보일 만도 했다. 색색으로 단장된 둑이 있고, 둑 안에 갇힌 강물이 있고, 강물 옆으로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와 꽃밭과 공원이 가꾸어질 것이다. 어쩌면 도시인들에게 이와 같은 환경은 퍽이나 어울리고 그들은 이를 얼마든지 즐기고 좋아할 만 하다.

청계천을 보라! 그게 어디 우리가 생각하는 냇가이고 시냇물인가? 청계천은 수직으로 파놓은 낭떠러지다. 직각의 콘크리트 장벽은 족히 이삼 미터는 되고, 그 밑으로 술 먹고 낙상하기에 딱 좋다. 뻔히 떨어져 죽을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청계천을 찾고 좋아라 박수를 친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 돌다리를 건너고 발을 담근다. 그걸 친환경 생태복원이라고 해놓은 이명박을 얼이 빠진 국민들은 열나게 지지하며 얼씨구나, 대통령까지 만들어줬다.

그렇다면 4대강 공사가 완공되면? 그 뻔뻔스럽게 아름다운 상상을 한번 해보시라. 눈앞에 그려지는 풍경이 있을 것이다. 한강에는 여의도에서 행주대교를 지나 인천, 서해까지 여객선과 유람선이 넘나들고, 낙동강에서는 여유롭게 요트를 타고 관광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이 선착장과 아름다운 전망대가 있는 수상 카페에서 멀리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볼 것이다.

강변 공원에서는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카지노와 예술적인 야간조명과 인공폭포와 테마파크! 이제 바야흐로 강은 문화, 상업, 업무, 엔터테인먼트 등 이른바 워터프린트형 복합공간으로서 4대강 시대의 프로젝트가 완성된다. 바로 그날, 환상적인 그날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음흉한 악마의 미소를 띠고 어지러운 환상을 뚫고 다가오고 있다. 두 발로, 두 손으로, 힘들게 일하지 않고 땀 흘리지 않는 지갑이 두툼한 사람들에게는 꿈과 같은 현실이다.

강물을 사육하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인간이 곧 상품이 되어버린 근대사회 이전에는 사람들은 주로 보행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점점 마차를 사용하였고 폭발적으로 재화가 늘어나자 새로운 도로인 운하를 이용했다. 운하에 이어 레일을 깔고 열차로, 마침내 자동차로, 비행기로 이동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에서는 난데없이 강물에 고속도로를 내겠다고 야단법석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자본에 의한 인간의 야만성이 강물을 가두어 사육하는 '친환경 운송시설'로 완벽하게 복원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지극히 단순한 발상이다. 인간이 야생동물을 가축화하고 토지를 경작해 땅을 지배한 것처럼 야생의 물을 가축처럼 가두어 놓고 마음대로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욕망을 어떻게 통제 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재화와 부를 무한대로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자들이 그 절대적인 힘을 이용하여 토지와 시장, 은행과  빌딩, 공장과 백화점에 철옹성처럼 튼튼한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치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만인의 소유인 강물까지도 사유화시키려고 한다.

하다못해 강바닥을 파내서 얻은 엄청난 양의 골재는 당장 누구의 잇속을 챙기게 만드는가만 생각해봐도 뻔하다. 더구나 국민의 혈세 수십조 원을 쏟아 부은 부대시설에 대한 일방적인 점유는 물론이고 돈을 내지 않으면 이제부터는 누구도 강을 이용할 수 없게 하려는 악랄한 음모이다. 한마디로 대동강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중앙선도 없는, 그러므로 역주행도 신호등도 없는 강의 고속도로에 경광등을 켜고 무작정 달려가는 앰뷸런스가 한 대 있다. 거기엔 사람의 말귀를 아예 알아듣지 못하는 정신병자가 타고 있다. 그는 어떻게든 강물을 사육하려 하지만 강은 말이나 염소처럼 마음대로 고삐를 매달아 키울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아무리 강물을 가두려고 해도 결코 가둘 수 없고 묶으려 해도 결코 묶일 수 없다. 모래 위에 눈물처럼 떨어진 물방울이 절대 모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낯선 시간이 다가와 그 때를 기억하느냐고 물을 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어깨 위에 떨어진 꽃잎의 무게를 느끼고, 마침내 강가로 나와 울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