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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의 대마도 일정

대마도 이즈하라에 도착한 씨 플라워호
 대마도 이즈하라에 도착한 씨 플라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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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가는 길이 열렸다. 3월11일 발생한 일본 대지진으로 닫힌 항로가 다시 열린 것이다. 6월 17일부터 금토일 3일간 운행을 한다고 해서 우리 예성문화연구회는 이번 여름 대마도를 답사하기로 했다. 주제는 역시 문화유산 답사다. 2박3일간 대마도에 머물면서 대마도의 역사와 문화유산, 조선통신사 유적, 한반도와 대마도의 관계 등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회원 30명이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2박3일간 대마도를 탐방하게 되었다.

우리는 12일 오전 9시30분 부산 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씨 플라워호를 탔다. 약 3시간쯤 걸려 대마도의 중심도시인 이즈하라(嚴原)항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200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거리다. 그런데 언어가 달라졌다. 또 한 가지 국내항 같았으면 그냥 들어갈 텐데, 입국심사를 거친다. 그제사 나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입국심사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지문을 찍고, 얼굴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통신사 관리들이 묵던 서산사
 조선통신사 관리들이 묵던 서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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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일정은 이즈하라 시내 문화유산 탐방으로 이루어졌다. 수선사, 하치만구(八幡宮) 신사, 고려문과 조선통신사비, 대마 역사민속자료관, 가네이시성(金石城), 서산사, 국분사를 보았다. 절과 신사, 박물관을 보는 것 같지만, 이 모든 곳에는 우리 선조들의 역사와 흔적이 서려 있다. 수선사에는 조선말 이곳 대마도에서 순절한 최익현 선생의 영정과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서산사와 국분사는 조선통신사 관리와 수행원들이 묵던 절이다. 단지 하치만구 신사만 일본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즈하라는 나가사키현 쓰시마 시청이 있는 곳으로 대마도의 중심도시이자 관문이다. 이즈하라 항을 포함한 이즈하라마치(嚴原町)에는 현재 만 사천 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즈하라마치는 쓰시마 섬의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다. 쓰시마시(市)는 현재 6개의 마치(町)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인구는 3만4000 명 정도로 보고 있다. 정확한 인구조사를 한 것은 2005년으로 3만8481명이었으며, 통계상 10년에 5000명씩 줄고 있기 때문에 현재 인구를 그렇게 추정하고 있다.

아유모도시 자연공원
 아유모도시 자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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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시라다케(白岳)에서 오후나코시(大船越)에 이르는 미쓰시마마치(美津島町)를 둘러볼 수 있는 가미자카(上見坂) 전망대에 올랐다. 이어 원나라군이 닻을 내린 고모다하마(小茂田浜) 신사를 찾았다. 다음은 이시야네(石屋根)에 있는 돌지붕 창고를 보았다. 지붕이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을 돌로 만들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아유모도시(鮎もどし) 자연공원이다. 은어가 돌아온다는 계곡으로 대마도에서 물이 가장 풍부한 곳이다.

둘째 날은 하루 종일 관광 일정이 잡혀 대마도 중앙에 있는 도요타마마치(豊玉町)까지 구경을 했다. 그곳에는 에보시다케(烏帽子岳) 전망대와 와타즈미(和多都美) 신사가 있다. 에보시다케 전망대는 아소만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와타즈미 신사는 일본 건국신화와 관련이 있다. <고사기(古事記)>에 따르면, 천신의 자손인 야마사치히코(山幸彦)와 해신의 딸 도요타마히메(豊玉姬)가 결혼을 해서 나은 아들이 우가야후키아에즈(葺草葺不合命)다. 그리고 그가 다마요리히메(玉依姬)와 결혼하여 최초의 인격신 덴노천황(神武天皇)을 낳았기 때문이다. 저녁에 나는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의 무덤이 있는 장수원을 찾았다.

대마도의 남과 북을 연결해 주는 만제키 다리
 대마도의 남과 북을 연결해 주는 만제키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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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에는 남섬과 북섬을 연결하는 만제키바시를 구경했다. 이 다리는 아소만과 미우라만을 연결한다. 그리고 북쪽으로 차를 몰아 미네마치(峰町)에 있는 역사민속자료관을 견학했다. 그리고는 사가(佐賀)에 있는 원통사(円通寺)를 찾았다. 오후에는 가미쓰시마마치(上對馬町)로 가 왕인박사 현창비와 한국전망대, 조선역관사 순난비를 찾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을 찾아 자연을 즐겼다. 우리는 오후 3시 히다카츠(比田勝) 항에서 부산항으로 떠나는 배를 탔다. 

이즈하라에서 만난 충신 최익현

수선사
 수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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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하라 항은 멀리서 봐도 그렇게 큰 항구가 아니다. 바다가 안쪽으로 들어간 만에 자리 잡은 여객항으로 어항과 연결되어 있다. 배를 내린 우리는 거북바위를 지나 이즈하라 시내를 가로지르는 하천을 따라 수선사로 간다. 선을 닦는 절 수선사(修禪寺)는 말 그대로 하면 선종 계열의 절이 되어야 하지만 정토종 계열이다. 아미타여래를 신봉하고 나무아미타불을 독송하며, 내세에서의 극락왕생을 염원한다.

그래서일까? 이즈하라 수선사에는 이즈하라의 사지키바라 형무소(棧原屋形)에서 순국한 최익현 선생 추모비가 있다. 우리는 먼저 비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한다. 그는 을사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 넘어가는 것을 보고 '창의토적소(倡義討賊疏)'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것이 별 효력이 없자 그는 1906년 윤4월 의병을 조직, 공개적으로 일본군과 싸웠다. 이에 일본군은 그를 체포하여 7월 8일 대마도로 압송했다. 대마도의 일본군 경비대에 수감된 최익현은 7월11일 마지막 상소를 올린다. 이것은 왕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유소(遺疏)로 남았다.

최익현 선생 순국비와 판석
 최익현 선생 순국비와 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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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신 최익현(崔益鉉)은 일본 대마도(對馬島) 경비대 안에서 서쪽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황제 폐하께 말씀을 올립니다.

삼가 아룁니다. 신이 금년 윤4월에 의거(義擧)를 시작한 처음에 대략 상소로 아뢰었는데, 그 상소가 진달되었는지의 여부를 모르겠습니다. 신이 거사를 잘못하여 마침내 체포되는 욕을 당하여 7월 8일에 일본 대마도로 압송되어 현재 경비대 안에 수감되었습니다. 스스로 분간하면, 필경 살아서 돌아갈 희망은 없습니다. 지금 이놈들이 처음에 강제로 신의 머리를 깎으려 하였고, 끝에서 다시 교활한 수단으로 달래며 말을 하니, 놈들의 심사를 측량할 수 없어 반드시 죽이고야 말 것입니다.

삼가 생각컨데, 신이 여기에 온 뒤로 한 술의 밥이나 한 모금 물도 모두 적의 손에서 나왔으므로, 설령 적이 신을 죽이지 않아도 신이 차마 구복(口腹) 때문에 자신을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드디어 식사를 거절하고 옛사람의 '자신을 깨끗이 하여 선왕(先王)에게 부끄러움이 없다.'는 의리를 따르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이후 일본군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고 단식투쟁을 했다. 그는 약 4개월 후인 11월 17일 경비대 감옥인 위수영(衛戍營)에서 순국했다. 그의 시신은 이곳 수선사로 옮겨져 장례가 치러졌고, 4일째 되는 11월 20일(양력으로는 1907년 1월4일) 이즈하라 항구를 떠나 선산이 있는 충청도 논산 땅으로 향했다.

비천상
 비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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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곳 수선사에서 최익현 선생 추모비만 참배한 것이 아니고 절도 참배했다. 절 안에는 아미타여래입상이 모셔져 있다. 불상의 모습이 상당히 한국적이다. 그에 비해 불단은 일본식이다. 또 불단 앞에 있는 불구도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불단 옆에는 최익현 선생 73세 때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세워져 있다. 불단을 나오면서 보니 바깥벽에 비천상이 그려져 있다. 일본 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라 눈이 간다. 일본 절에서는 전각의 벽에 그려진 벽화나 탱화를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천황의 조상을 모신 신사 하치만구

하치만구 신사
 하치만구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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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사에서 하치만구 신사로 가려면 역시 하천을 따라 나있는 도로 오테바시(大手橋)를 따라 가야 한다. 가면서 보니 일본어와 한글을 함께 적은 간판들이 여럿 보인다. 그리고 한일 우호를 강조하는 그림도 있다. 우리 일행은 대마도를 남북으로 이어주는 382번 지방도를 건너 하치만구 신사로 들어선다. 신사 입구에는 도리가 있다. 첫 번째 도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두 번째 도리가 있다. 우리는 오른쪽에 있는 도리를 통해 계단을 통해 하치만구 신사로 오른다. 이곳에는 하치만구 신사 외에 우노도 신사, 천신 신사, 와카미야 신사가 있다.

하치만구 신사는 양력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있는 제례를 준비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13일에는 중외천황, 14일에는 응신천황, 15일에는 희대신의 제례가 있기 때문이다. 신사 건물 왼쪽에는 마신이라 쓰인 말 동상이 있다. 그 옆에는 용이 있고, 입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말은 인간을 하늘나라와 연결해 주고, 용은 물의 세계와 연결해 주는 기능을 하는 것 같다. 하치만구 신사 옆으로는 우노도 신사. 천신 신사, 와카미야 신사가 있고, 이곳에서도 역시 신공황후, 안덕천황 등을 모시고 있다.

하치만구 신사 계단에서 설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는 회원들
 하치만구 신사 계단에서 설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는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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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구 신사는 이들 천황을 제사지내기 때문에 다른 신사에 비해 격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다른 신사보다는 웅장하고 크게 꾸며졌다. 신사 뒤로는 울창한 삼림이 펼쳐져 있고, 주변의 조경도 아주 잘 되어 있어 겉보기에는 공원 같은 느낌이다. 여름이라 신사는 푸른 녹음이 절정이다. 우리는 하치만구 신사에서 일본문화의 한 단면을 보기도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먼저 고려문과 서산사로 갈 것이다. 그곳으로 가면서 보니 대마도 관광안내 센터가 나타난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대마도 관련 자료가 많다. 나는 이곳에서 일본어로 된 '국경의 섬 대마'라는 자료와 우리말로 된 '쓰시마와 이즈하라' 자료를 얻는다. 그리고 '쓰시마 가이드북'과 '등산용 지도'도 하나 얻는다. 그리고 또 다른 자료 '선린외교의 꽃 조선통신사' 자료도 하나 얻는다. 이 자료를 통해 나는 조선통신사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개관할 수 있었다. 이제 고려문으로 간다.

덧붙이는 글 | 8월12일부터 14일까지 일본 대마도를 여행했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대마도의 역사와 문화유산 알기, 조선통신사 흔적 찾기, 대마도의 자연감상하기다. 5회 내외로 답사기를 쓸 것이다.



태그:#대마도, #이즈하라, #수선사, #최익현, #하치만구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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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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