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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사원 야생화
▲ 야생화 라마사원 야생화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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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에서 잠을 자고 난 아침. 무척 추위를 타는 똑순이는 밤새 추워 죽는 줄 알았다며 잠을 못 잤다고 했지만 난 그럭저럭 잠을 잤다. 아침이 되니, 또 식당가서 못 먹으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저쪽 게르에서 박순일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원장이 컵라면을 꺼내들고 왔다. 한국 컵라면이다!

"한 기자가 계속 밥을 못 먹으니 이거라도 먹어야지."

밥 못 먹는 걸 눈치 못채게 행동했다 생각했는데 박 원장은 눈여겨보고 있던 모양이다. 신기하게도 컵라면은 거부감 없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갔다.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 고추장 한 번 안 챙겨 갔던 나였는데 시원한 라면 국물을 마시니 살 것 같다. 한국 사람은 한국음식이 최고라는 진리는 변함없다.

아리아발 라마사원
▲ 라마사원 아리아발 라마사원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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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오늘 테를지 관광이 끝난 후, 울란바토르로 돌아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 브리야트 공화국으로 출발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리아발 라마사원을 향해 출발했다. 가는 도중 기암괴석이 눈을 즐겁게 한다. 창밖을 내다보며 내 맘대로 웅얼웅얼 보이는 바위를 평가한다.

테를지 명소 거북바위
▲ 거북바위 테를지 명소 거북바위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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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티라노사우루스 같네요."
"저게 거북바위예요."
"거북이 닮았네!"

나라의 말에 일제히 목을 빼고 바라보니 거북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나타났다.  테를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보고 같다는 거북바위다.

여우털로 만들었다는 모자는 무척 가볍고 포근했다.
▲ 몽골전통모자 여우털로 만들었다는 모자는 무척 가볍고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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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여우털모자를 쓰고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거북바위 근처에도 관광객을 겨냥한 작은 상점과 말을 끌고 나온 몽골인이 보였다. 뭐, 신기한 거 없나. 조악한 좌판을 들여다보다가 여우털로 만들었다는 몽골 전통 털모자에 시선이 꽂혔다.

모자를 쓰자 주위에서 "멋있다!"는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65달러란다. 좀 허접해 보여서 그 돈 주고 살 생각이 없었는데 똑순이가 모자를 써보더니 흥정에 들어갔다. 똑순이의 흥정은 국제적 수준이다. 대단한 똑순이는 35달러에 낙찰했고 나는 '싸구나!' 싶어 얼른 모자를 샀다. 김종구 한·몽사회정책학회 회장, 똑순이, 나 셋이서 몽골 털모자를 샀다. 가볍고 폭신폭신한 촉감이 겨울에 쓰면 안성마춤일 듯싶다.

 김종구 한·몽사회정책학회 회장이 몽골 전통모자를 쓰고 '몽골 곰모자 번개팅'을 약속했다.
▲ 몽골 모자 김종구 한·몽사회정책학회 회장이 몽골 전통모자를 쓰고 '몽골 곰모자 번개팅'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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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거 쓰고 서울에서 '몽골 곰모자' 번개팅 해요."
"그럽시다! 이 모자 쓰고 와야 참석할 자격 있다고요."

아리아발 라마사원의 들꽃

아리아발 라마사원은 우리나라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사원이지만 은자들의 기도 명소로 유명하다. 한가한 라마사원은 산 중턱에 있었고 나는 곧장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카메라를 꺼내들어 꽃을 찍기 시작했다. 아리아발 사원의 주변은 푸른 숲, 기암괴석, 들꽃이 만발해 기후가 척박한 몽골이라는 상식을 깨기에 충분했다.

원추리 꽃
▲ 야생화 원추리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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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꽃, 야생해당화, 야생부추꽃 등 아는 꽃과 이름 모를 꽃을 찍으며 일행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는데 어디선가 또 구역질나는 냄새가 솟구치기 시작한다. 주위를 살펴보니 사방이 말똥 밭이다. 좀 가라앉았다싶은 속이 다시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리아발 라마사원
▲ 라마사원 아리아발 라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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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게르로 돌아와 점심을 먹지 못했다. 아마 1700m 고도 때문이리라. 고도를 벗어나면 이 구역질은 가라앉겠지.

그러나 울란바토르로 돌아와 저녁을 먹을 때도 양고기 만두에는 손을 대지 못했고 야채만두만 겨우 한 입 먹고 홍차로 때울 만큼 나는 심한 구토에 시달렸다. 러시아로 가면 나아지겠지. 지금으로선 그것만이 희망이었다.

 몽골 양고기 만두는 손바닥만큼이나 컸고 먹어본 사람들이 맛이 좋다고 평가했다.
▲ 양고기 만두 몽골 양고기 만두는 손바닥만큼이나 컸고 먹어본 사람들이 맛이 좋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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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역에서 저녁 8시 30분 기차를 기다리며 나는 좀 들떠 있었다. 내 소원 중 하나가 침대기차를 타고 여행해 보는 거였는데 브리야트 공화국 수도 울란우데까지 24시간 기차를 타고 간단다.

남은 만두를 차곡차곡 싸서 기차에서 먹으라고 전해주는 초이질 국장의 자상함에 다시 고마웠다. 배웅을 나온 초이질 국장은 차례차례 인사를 하다가 내 곁으로 오더니 가방에 '칭기즈칸 보드카' 한 병을 넣어주며 먹고 자라는 손짓을 한다. 오직 나에게만.

"와우! 국장님 최고!"

침대칸에 오르자 기차는 떠났다. 김종구 회장과 김문각 교수는 일정 때문에 먼저 한국으로 떠나고 나라 교수를 포함한 일행 11명은 러시아를 향해 출발했다. 이제 시베리아 횡단 국제열차는 러시아 브리야트 공화국으로 달리고 있다.

4인 1실 침대열차는 안락했다. 켜보진 않았지만 텔레비전도 있고 탁자도 있으며 한국인의 체형에 비해 침대도 넉넉했다. 안으로 걸어 잠그는 고리가 있어 보안에도 안전해 보인다. 침대칸은 열차 두 개인데 하나는 몽골인 전용이고 끝에 있는 우리 객차는 러시아인과 외국인용인 듯싶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물탱크가 차장 칸 옆에 있어 컵라면과 차를 마실 수도 있다.

이제 몽골의 공식일정은 끝나고 우리끼리 있으니 슬슬 마음이 풀어질 때다. 울란바토르 수입마트에서 사온 땅콩, 과자, 한국산 믹스커피(우리나라 제품은 엄청 비쌌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에서 가지고 온 팩 소주가 자리 잡았다.

내가 자리잡은 기차 칸에 공동으로 쓰는 먹을 식료품이 있는 까닭에 아쉬운 일행들은 우리 칸에 들를 수밖에 없는 실정.

기암괴석이 둘러싼 아리아발 라마사원 풍광.
▲ 아리아발 아마사원 기암괴석이 둘러싼 아리아발 라마사원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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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과 여행은 경험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낯선 지명이라든지 민족의 특성, 언어가 나올 때마다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가 나에겐 재미있었다. 참여연대 H교수와 현 정치 및 사회 복지제도 등에 대화를 나눈 것도 기차에 오르고 나서다.

2010년 6월 한·몽사회정책학회가 주최, 여의도에서 '국내취업 몽골 근로자를 중심으로한 외국인 근로자 근로취업 현황과 가족문제 현황 개선방향' 세미나가 열렸다. 몽골 국민 1%가 넘는 최대 몽골인 거주국가인 한국이 해외취업으로 인한 몽골의 가족해체(이혼) 증가와 취업자 가족동반유입을 허락하지 않는 한국 정책 체제의 문제점을 제시한 바 있다.

특히 몽골 아동(5~17세) 5만7000명이 농·축산 분야 노동에 투입돼 있고 30%가 한 번도 학교에 다닌 적이 없으며 매춘과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돼 있는 현실은 충격적이었다(2007년 통계).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몽골에는 맑은 강과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몽골인들이 휴식삼아 찾고 있다.
▲ 몽골의 강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몽골에는 맑은 강과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몽골인들이 휴식삼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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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경험했던 우리나라가 세계경제대국 13위에 오르고 있는 현재, 가난한 나라를 돕는 국가로 탈바꿈했다. 몽골의 가난과 어려움을 한국이 책임지거나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와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있다.

한·몽사회정책학회의 학자들이 몽골을 찾아와 세미나를 통해 몽골의 사회복지정책에 일말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며칠간 몽골에 머문 보람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차창 밖은 어두움이 밀려들고 있어 어딘지 알 수 없었고 기차는 국경지대를 향해 고른 숨소리를 뱉으며 달려가고 있었다.


태그:#몽골 모자, # 테를지, #아리아발 라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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