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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을지전망대에 오르는 길에 만난 해안면 분지 펀치볼(Punch Bowl)의 광경은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줌머'라는 말은 산을 깎아 농사짓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해안면 분지를 둘러 층층이 일군 밭의 풍경은 줌머족의 고향인 치타공 산악지대와 닮았다. 그리고 산꼭대기 초소에서 군인들이 감시하는 모습 또한 고향 풍경과 낯익다.

방글라데시 이주민들에게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의 전경은 정겹다. 고향인 치타공도 이와 닮았기 때문이다.
▲ 해안면 펀치볼을 배경으로 방글라데시 이주민들에게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의 전경은 정겹다. 고향인 치타공도 이와 닮았기 때문이다.
ⓒ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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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에서 1971년 독립한 뒤로, 주류 벵갈족과 소수 부족간 연대인 줌머족은 갈등을 겪고 있다. 줌머족 또한 방글라데시로부터 독립을 원하기 때문이다.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멀리 한국으로 오기도 했다. 그리고 8월 7일~8일 생태지평연구소와 김포마하이주민지원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주민과 함께하는 DMZ탐방'에 함께한 것이다.

이번 DMZ탐방에 함께한 이주민은 모두 방글라데시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벵갈족과 줌머족, 무슬림과 불교도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대부분 불교도이지만 무슬림 중에는 라마단 기간이라 금식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벵갈족과 줌머족 간의 갈등은 이들의 고향인 방글라데시에서는 서로를 죽이고 탄압하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멀리 타국에선 갈등이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이주민 공동체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차이일 뿐이다.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인근 인북천 또한 고향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린 시절 줌머족들은 인북천보다 더 깊고 물살이 센 곳에서 날마다 수영을 하며 놀았다고 한다. 성인이 된 이들은 탁월한 수영 실력을 자랑하며 자연 속에서 한데 어우러져 자유를 만끽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돌아가는 길에 더 놀다 갔으면 하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가시지 않는다. 내일 바다로 가면 안 되냐고 묻지만 다음 날 일정은 양구 두타연으로 예정되어 있던 터였다.

생태지평연구소 이승은 연구원이 한국의 전통놀이인 제기차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 공동체 놀이 시간 생태지평연구소 이승은 연구원이 한국의 전통놀이인 제기차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 김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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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마치고 생태지평연구소 이승은 연구원이 공동체 놀이를 진행했다. 한국의 전통놀이인 제기차기를 가르쳐주지만 이 연구원 또한 서투르긴 마찬가지. 그래서 손으로 제기를 튀기며 제기차기 경연을 벌였다. 딱 보기에도 유치하지만 이들의 표정에는 즐거움만 가득하다. 제기차기 경연에서 우승한 디만 씨는 줌머족의 한 부족장 출신이다. 그는 여성 우승자와 우승 세러머니로 춤사위를 한판 펼쳤다.

공동체 놀이가 끝나자 세 그룹으로 흩어져 그들의 놀이를 이어갔다. 한 그룹은 벵갈족들이 한데 모여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끊임없이 노래한다. 여성들은 또 다른 그룹을 만들었고, 나머지 한 그룹은 비주류의 느낌을 물씬 풍기며 카드놀이를 한다.

우리가 들어서자 카드를 얼른 치우고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미군은 계약기간이 언제까지냐?' '일본 식민지에서 독립했을 때 일본군은 어떻게 몰아냈나?' '일본은 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냐?' 등등. 한국의 역사에서 줌머족이 처한 현실을 보는 듯했다.

한국의 뙤약볕에서 컨테이너를 만드는 일을 하는 샨티 프리요 차크마 씨는 UPDF(United People Demdcracy Fund)란 단체에서 활동하며 줌머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한국으로 망명했다. 그의 가족은 아직 치타공에 살지만 탄압을 피해 집을 떠나 전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한국에서 사는 모습을 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하는 모습에서 온갖 회한이 묻어난다.

이 어린이에게 한국의 DMZ는 어떤 의미일까?
▲ 을지전망대에서 북녘을 바라보는 방글라데시 이주민 2세 어린이 이 어린이에게 한국의 DMZ는 어떤 의미일까?
ⓒ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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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부족장 출신 샨티 지반 차크마 씨는 남북이 통일이 되면 DMZ가 온 세계에 평화를 전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들 고향의 현실이 우리와 다르지 않기에 한국의 DMZ가 남달리 보였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을 떠나며 라나 씨는 벽에 그려진 방글라데시 국기를 가리켰다. 그는 방글라데시 국기의 초록색 바탕은 푸른 벵골 초원을, 빨간색 원은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위해 흘린 피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벵골족으로서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행기간 동안 소수 민족인 줌머족과 함께하기 위해 끊임없이 섬기고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동안 남과 북, 그리고 온 민족이 평화로운 미래를 즐겁게 상상해보았다.

다음은 방글라데시 이주민들이 보내온 소감문 일부이다.

"결국에 희망의 땅 DMZ은 만들기 위에 양쪽에  있는 군인하고 철근이 없어져 하늘에 날라 다니는 새처럼 양쪽 모든 시민들 마음 컷 여행 다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DMZ를 통과하여 흘러내려오는 인북천  맑고 깨끗한 물에 물놀이 하면서 물고기도 잡고 아주 신나게 놀았습니다."   비단(박진형) 씨(김포 마하이주민지원센터 총무)

"I wanted to take picture but it was quite prohibited in the North Korea side. The most heart-breaking scene is punchbowl where a fatal war occurred between south-north Korea during liberation war.  I came to know that DMZ is not only a tourist place but also represent a great historical turning point of the Korea peninsula. Where both Korea found a new portal of amity. The tour was thrilling and enjoyable.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북한 쪽으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펀치볼이었다. 그곳은 한국전쟁 동안 남한과 북한 사이에 끔찍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었다. DMZ는 단지 관광지가 아니라 한반도의 역사적인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남북한이 새로운 우호관계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여행은 짜릿하고 즐거웠다." 디만 트리푸라 씨


태그:#이주민, #줌머족, #생태지평, #한국DMZ평화생명동산, #D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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