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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드디어 수험생활에서 벗어나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찾아간 학교는 비록 상상했던 것만큼 크고 넓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담하고 깨끗했다.

특히 학교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성신여대 '성신관' 건물은 규모가 가장 크고, 증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하고 세련된 외양을 갖추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 외벽에 마음을 빼앗겨 몇 번이나 건물 사진만 찍어 댔다. 얼른 저곳에서 수업을 받고 싶었다.

성신여자대학교 '성신관' 건물. 다양한 학과의 수업이 모여있어 학생들이 자주 찾는 건물이다.
 성신여자대학교 '성신관' 건물. 다양한 학과의 수업이 모여있어 학생들이 자주 찾는 건물이다.
ⓒ 박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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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름을 보내면서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성신관에서 수업이 있는 날이면 무더운 공기에 힘들었다. '왜 이렇게 성신관 강의실은 덥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강의동은 이만큼 덥지 않은 것 같은데, 나만 유난스러운건가···.'

그제야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묻기 시작했다. 의외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실제로 이곳에서 수업을 받은 김아무개(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씨는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강의실 안이 유리 온실처럼 덥다. 게다가 창문도 윗부분은 아예 열 수 없고, 그나마 열 수 있는 것들은 들창 형태라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내부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고 전했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교수님들 역시 "슬라이드를 이용해 강의하는 일이 잦은데 이 경우 강의실에 따라 빛 차단이 잘 되지 않아 수업내용이 보이지 않아 곤란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한쪽 벽면이 유리다 보니 바깥 온도가 높을 경우, 실내 온도가 자연스레 높아지면서 강의실도 저절로 더워지기 때문에 학생들의 집중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서울 시내 대학들, 유리외관 캠퍼스 '곳곳에'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만의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서울 시내 10개 사립대학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대부분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라도 글라스 커튼 월의 모습을 띈 건물이 하나 이상 캠퍼스를 지키고 있었다. 강의용 건물은 물론 교내 편의시설, 학생회관, 기숙사 역시 유리로 꾸며져 있었다.

숙명여대에 다니는 대학생 A씨는 "유리로 된 건물이 보기는 좋지만 그만큼 햇볕도 많이 들고, 따라서 냉방비가 더 많이 들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건물을 직접 이용하는 학생들부터 에너지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그 전에 학교 측에서도 함께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또, 학습 환경이 좋지 않다면 그것도 개선해야 한다"하고 말했다. 중앙대에 다니고 있는 한 학생 역시 "학교 건물을 비롯하여 냉방이 원활한 것은 좋지만 전기세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대안이 없을까"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직접 찾아가 본 서울 시내 10개 대학들. 건물 전체 혹은 일부가 유리로 꾸며진 사례가 한 두동씩은 꼭 있었다.
 직접 찾아가 본 서울 시내 10개 대학들. 건물 전체 혹은 일부가 유리로 꾸며진 사례가 한 두동씩은 꼭 있었다.
ⓒ 박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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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자재인 유리는 개방이 잘 되어 있고, 환기가 잘 되어 있는 느낌을 주며 또 세련된 외관을 보여줄 수 있지만 에너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열기와 냉기의 차단성이 좋지 않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 같은 계절에는 더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앞서 말한 강의동은 서향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늦은 오후에는 너무 덥고, 햇빛이 지나치게 강하며 그 빛이 공간 깊숙이까지 도달하게 된다.

또 유리는 에너지 손실이 콘크리트의 7배이기 때문에 냉·난방비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최근 공공기관이나 기업체, 고층 건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식인 '글라스 커튼 월'(glass curtain wall)은 채광효과가 좋고 외관이 보기 좋지만 대부분 햇볕이 그대로 건물 내부로 들어오기 때문에 내부 온도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환경관련 시민단체 '에너지전환'의 송대원 간사는 "유리는 단열이 잘 되지 않는 소재이기 때문에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열을 빼앗기기 쉽다. 또 유리의 특성상 햇빛을 받으면 반사가 심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유리 건물이 모양은 좋지만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건물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건강을 깊이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경비문제와 같은 효율도 중요하지만, 학교는 (자외선·실내공기오염 등) 학생들의 건강까지도 신경 써야 한다는 점에서 유리 사용을 자제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미디어관
 고려대학교 미디어관
ⓒ 박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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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참고할만한 좋은 사례도 있었다. 고려대학교는 최근 완공된 '미디어관'을 건물 전체를 유리로 감싼 '글라스 커튼 월' 형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일반 통유리가 아닌 로이(Low-E) 유리와 루버를 설치하여 햇빛을 막고 일사량을 조절하는 등 열 차단에 신경을 쓴 모습이었다.

고려대 건설팀의 한 관계자는 "유리가 상대적으로 다른 소재에 비해 위압적이지 않고 가벼운 이미지가 있어 채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 유리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로이유리 등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채광효과를 높이고 일사량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중앙대학교 역시 최근 건설한 약학대학 R&D 센터 유리 건물에 로이유리를 사용한 바가 있다.

이 외에도 대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에너지 효율을 위해서는 복사열 차단용 유리창 필름을 부착할 수도 있고, 강한 햇빛을 막고 보다 원활한 시청각 자료 활용을 위해 기존 블라인드 보다 조금 더 두꺼운 소재의 블라인드를 설치할 수도 있다. 겉모양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가가 아닐까. 유행에 맞춰 멋진 건물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학교 건물이 1순위로 고려해야 할 것은 쾌적한 학습 환경 조성이라고 생각한다. 개강을 몇 주 앞둔 지금, 좀 더 '효율적인' 공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한국 건축 어디로 가고 있나, 원정수 저
-(실내건축 디자인과 실무를 위한) 실내건축조명, 최산호·김홍배·김남효·남시복 공저
-유럽의 환경친화주택, 이규인 저
-(그림으로 해석한) 건축환경공학, 今井與藏 저·윤혜림/여명석 공역
-주택과 실내디자인, 이연숙 저



태그:#에너지, #글라스 커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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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1기로 활동했습니다. 사람과 영화가 좋습니다. 이상은 영화, 현실은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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