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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강정마을 주민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25일 오전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에서 해상크레인이 인공구조물을 이용해 바다를 메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강정마을 주민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25일 오전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에서 해상크레인이 인공구조물을 이용해 바다를 메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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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일자 CBS 라디오의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제주해군기지에 관해 입장을 밝힌 연세대 문정인 교수의 주장(☞방송 내용 보기)을 반박해보고자 한다. 문 교수의 주장 가운데에는 필자가 제기해왔던 문제에 대한 반론이 담겨 있고,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국익 논란'이 좀더 건설적이고 건강한 방향으로 흐르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다.

또한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중도 성향의 노무현 정부에서 결정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 교수의 인터뷰 내용은 보수주의자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자의 안보관도 상당 부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반론에 앞서 오해의 소지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밝혀두고자 한다. 우선 필자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줄곧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왔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의견을 달리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의미다.

또한 나는 안보의 중요성을 한 번도 부인한 적이 없다. 군대의 필요성도 인정한다. 다만 군비증강 일변도의 안보정책은 막대한 예산 낭비를 초래하고 '안보 딜레마'를 심화시켜 민생경제와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적절하면서도 자제력 있는 국방정책과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외교정책이 결합된 안보정책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서구식 표현을 빌리자면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지혜로운 조합을 찾는 '스마트파워'가 대한민국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는가

문정인 교수가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제주 '평화의 섬' 구상은 문 교수가 동북아시대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주도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 교수는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한다는 것은 바로 제주를 비무장지대로 선포하는 그런 평화의 섬의 개념이 아니고, 그건 우리가 꿈꾸는 궁극적인 목표이고", "동북아의 모든 국가들끼리 신뢰가 구축이 되고, 군비 통제가 이루어"지면 제주도에도 군사기지가 없어도 된다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제주도를 진정한 의미의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꿈꾸는 큰 이상"이고 군비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북아의 현실을 고려할 때,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주해군기지가 꼭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반문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다른 영토와 마찬가지로 아니, 추가적으로 제주도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면서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할 만큼 이 섬이 지닌 차별적인 정체성은 무엇인가? 군사력에 의한 평화를 신봉한다면 그건 '안보의 섬' 혹은 '군사의 섬'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면서 제주도를 동북아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의 거점으로 만들어가자는 비전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발상이기는 한 것인가?

문 교수는 또 "우리가 가졌을 때 군축이 가능하지, 우리가 아무 것도 안 가진 상태에서 미국하고 일본, 중국이 많은 해군력을 가졌다고 하면 우리의 발언권이 사실 없어진다"며, 앞으로 동북아 군축 협상을 위해서라도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실 이러한 주장은 북한이 "핵 억제력"의 정당성을 강변하면서 자신들의 핵보유가 "조선반도의 비핵화", 더 나아가 "세계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는 힘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대단히 흡사하다.

문 교수의 주장을 반박할 사례들도 많다. 유럽에서 동서 냉전이 첨예했던 1970년대와 80년대 헬싱키 프로세스와 유럽 재래식 군축 협상을 주도했던 나라들은 핀란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의 소국들이었다. 또한 문 교수도 필요성을 역설한 비핵지대도 군사적으로 그리 강하지 않은 나라들이 주도했다. 핵무기를 포기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소련 최초의 핵실험이 실시된 카자흐스탄, 중남미 지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비핵화 외교에 선봉에 선 멕시코, 미국과의 마찰도 불사하면서 비핵법을 제정한 뉴질랜드, 동남아시아 비핵지대를 주도한 태국 등이 바로 이들 국가들이다.

중국과 가까워서 미군 함정이 안 들어온다고?

강정마을 중덕해안 가는 길에 있는 고길천 작가의 또다른 그래피티 작품.
 강정마을 중덕해안 가는 길에 있는 고길천 작가의 또다른 그래피티 작품.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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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교수의 주장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제주해군기지가 중국의 타격권 안에 있기 때문에 미국 항공모함이 제주도에 올 이유가 없다고 밝힌 대목이다. 그는 요코스카와 사세보 등 일본의 기지들을 미군이 활용하고 있으니, 제주도까지 전진배치해서 중국의 대항공모함 탄도미사일의 대상이 되게끔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코스카와 사세보 기지 역시 중국의 탄도미사일 사정권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재편이 본격화된 2000년대 중후반 들어 산둥반도에 대규모 전력증강에 나섰는데, 여기에는 일본 전체를 사정거리에 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문 교수가 언급한 '대항공모함 탄도미사일'은 '항모 킬러(aircraft killer)'로 불리는 중국의 신형 탄도미사일인데, 이 미사일 역시 사정거리가 1500km에 달하고 사정거리를 더 늘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울러 미국이 중국과 가까운 지역에 항모 전단 투입을 꺼려한다면 부산은 물론이고 서해, 그리고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베트남까지 미국 항모가 들락날락거리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필자 역시 미국이 '평시에' 항공모함과 호위·구축함, 그리고 핵잠수함 등으로 구성된 항모 전단의 기항지로 이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약 15만평으로 설계된 제주해군기지가 이 정도의 함정을 수용하기에는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유사시' 6개의 항모 전단을 30일 이내에 동원한다는 '함대 대응 계획(Fleet Response Plan)'을 실행에 옮기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 계획의 핵심 대상국은 중국과 북한인데, 이 정도의 해군력이 동아시아로 몰려오면 항모 전단의 일부 함정들이 제주해군기지를 기항지, 혹은 중간기지로 이용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제주해군기지가 해상 MD에 이용될 걱정, 정말 없을까

문정인 교수 역시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하는 것은 한중관계에 마지노선이 될 것이고, 이에 따라 MD 참여는 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무리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불필요하게 우리가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하나도 없다"면서 한국이 MD에 참여하거나 편입될 "가능성은 상당히 적다"는 낙관론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항모 전단이 제주해군기지를 들락날락거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하더라도, MD 기능을 탑재한 미국 이지스함이 제주도를 오고 갈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문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한중관계의 마지노선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이러한 전망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이명박 정부가 공식적으로 MD 참여를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은밀히 미국 MD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2년 전부터 한미간에 MD 공동 연구가 진행되어 왔고, 양국 이지스함이 해상 MD 훈련을 공동으로 실시한 것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둘째는 이와 연관된 것으로, 한미 간에 한국이 오키나와나 괌으로 향하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데 기여하는 방안이 은밀히 논의되어 왔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들 지역을 미사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MD용 이지스함이 필요하고, 제주도는 이를 위한 최상의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된다.

셋째는 미국의 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ABMD) 구상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본토 방어용 MD는 속도조절에 들어간 반면에 ABMD를 앞세운 '지역 MD'에는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현재 21척의 MD용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고, 이 가운데 샌디에이고 기지에 5척, 하와이 기지에 6척, 요코스카 기지에 5척 등 모두 16척을 아시아-태평양에 배치해놓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2016년까지 MD용 이지스함을 41척으로 늘릴 예정이다. 이 가운데 몇 척을 아태 지역에 배치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전략적 중심축을 아태 지역으로 옮기고 해군력의 60%를 이 지역에 집중하기로 한 방침을 떠올려 본다면, 30척 안팎이 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줄곧 동아시아에 해당하는 서태평양에 해군기지와 기항지를 계속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전략에 따른 것이다.

문정인 교수도 잘 알고 있듯이, 중국은 노무현 정부 때 한국의 서남부에 미국의 패트리어트-3 미사일이 배치된 것을 한국의 MD 참여의 전조로 간주하고, 원자바오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강력히 항의한 바 있다. MD 체제에서 저층·지점 방어를 담당하는 패트리어트 시스템 배치에도 중국이 이처럼 촉각을 곤두세웠다면, 상층·지역 방어를 담당하는 ABMD에 제주해군기지가 이용된다면, 중국의 반발 수위와 이에 따른 한중관계 파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정인 교수는 한-중-일 간에 해양 무력 갈등 발생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하다면서도, 이러한 시나리오보다 오히려 더 가능성이 높은 제주해군기지의 미국 MD용 기지화나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그 위험성은 대단히 큰 미-중 무력 갈등에 한국이 휘말릴 가능성은 '기우'로 간주하고 있다. 문 교수는 대안으로 한중 간의 군사협력과 군사적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것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상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하)편에서는 제주해군기지가 한-중-일 해상 무력 갈등의 현명한 대처 방안이 될 수 없다는 점과 대안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태그:#제주해군기지, #문정인, #MD,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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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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