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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의 옥수수 밭, 끝이 없네. 어휴~"

 

윤의는 두어 시간마다 한번씩 탄식을 토해내곤 했다. 여행을 시작한지 닷새째, 로키 산맥 동쪽 기슭의 원시 야영장을 떠나 아이오와의 드모인을 향해 달릴 때였다. 한두 시간쯤 눈을 붙였다가 깨어나면 길 양쪽으로 거의 예외 없이 옥수수 밭이 펼쳐 있는데, 윤의가 질린 것이었다. 그 것도 끝 간데 없이. 오늘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동쪽으로 또 동쪽으로 질주하는 날이다. 순수 주행 시간만 11시간이 예상되는, 이번 여행에서 어쩌면 하루 코스로는 가장 먼 구간이기도 하다. 거리로는 약 1200km를 뛰어야 한다.

 

마침 작취도 없었던 탓인지 '아들 셋'은 모두 잠에서 비교적 일찍 깨어났다. 서둘러 라면을 끓여 먹고, 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텐트를 접었다. 7시가 조금 못돼 아침을 먹자고 했는데, 출발 때 차 안의 시계를 보니 정확히 8시 30분이었다.

 

'아들 셋'과 나의 평균 체중은 80kg, 신장은 177cm 정도이다. 액센트 크기의 내 차를 타면 뒷좌석에 앉은 둘은 특히 무릎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덩치들이다. 조수석 또한 발 밑에 말아놓은 침낭이 깔려 있어 정강이가 차의 콘솔 밑부분에 짓눌리는 형국이었다. 다행인 점은 지난 이틀간의 경험으로 볼 때, 에어컨을 1단 정도로만 틀고 달리면 엔진이 퍼져버리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콜로라도 로키 산맥 기슭에서 출발, 네브라스카를 완전히 가로 질러, 아이오와의 한복판에 이르는 여정을 여름철, 그것도 에어컨 없이 소화한다면 고문도 그런 고문이 따로 없다. 더구나 차가 터져 버릴 정도로 짐과 사람을 가득 싣고 간다면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러나 미리 경고를 충분히 한 탓인지 아이들은 불만이 없었다. 잘들 참아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나흘 동안 우리 '아들 셋' 모두 그만하면 괜찮은 젊은이들이었다. 좀 더 공세적으로 미국을 파고들지 않는다고 불만스러워했던 것은 어쩌면 내 욕심이 지나친 까닭일 수도 있다.     

 

미국의 심장부, 이른바 '아메리카 하트랜드(heartland)'로 표현되는 대륙의 복판 지역은 보기에 따라서는 고장 난 영사기처럼 같은 풍광만 반복해서 보여준다. 아예 산이 없는 탓이다. 한국 사람들이 흔히 산으로 부르는 걸 미국인들은 힐(hill)로 종종 표현하는데, 아예 이건 힐 조차도 없는 풍광의 연속이다.

 

하지만 나는 끝이 없이 펼쳐진 평지도 좋다. 저 아득한 지평선을 무표정의 풍경으로 읽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듯 한데, 내 눈에 저 지평선에 셀 수 없이 많은 꿈들이 아른거린다. 내가 그 옛날 북미 원주민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그랬을 것이다.

 

"아빠, 저는 꼭 지평선 끝까지 가볼래요."

 

그리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가서 아무 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도, 또 저 너머로 달아난 지평선을 똑같은 마음으로 선망했을 것이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인생의 지평선 또한 본디 그런 것이 아닐까.

 

왜 카드가 안 되지?

 

하루 12시간 가까이 주행하는 날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일은 딱 두 가지, 먹고 배출하는 것이다. 여유만만을 멋으로 아는 충청도의 젊은 남정네인 우리 '아들 셋'과 달리 내겐 스피드가 여행의 생명이다. 사실은 일상도 별로 다르지 않지만.

 

일상 생활에서도 속도 높이기에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몰아치기이다. 차에게 기름을 먹이고, 사람도 먹고, 또 배출할 일이 있으면 몰아서 한꺼번에 하는 걸 당연히 선호한다. 미국 고속도로 주변의 많은 주유소들이 나 같은 원스톱 운전자들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방식으로 영업을 한다. 그래서 화장실이 딸린 소형 잡화상점과 패스트푸드점이 결합된 형태의 주유소가 미국 고속도로 주변에는 흔하다.

 

덴버를 떠나 네댓 시간쯤 달린 뒤 한 고속도로 주변의 패스트푸드점에 들렀다. 샌드위치 체인점을 겸한 상점이었는데, 네 명이 각자 메뉴를 고른 뒤 내가 계산하기 위해 카드를 건넸다. 그러나 점원 말이 인식기에서 카드가 거부된다는 거였다. 여행 중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므로 적절하게 현금과 카드를 준비하고 섞어서 쓰는데, 의외의 사태가 발생한 거였다.

 

카드를 한 번 더 인식기에 그어봤지만, 역시 결제가 거부됐다. 급한 대로 우선 현금으로 음식 값을 치르고, 카드에 적혀있는 대로 미국 은행에 전화를 돌렸다. 은행 측에서는 수상한 결제가 있어 카드 사용을 막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은행 상담원과 좀 더 구체적인 대화를 통해 확인해 보니, 덴버 근교의 주유소 두 곳에서 5분 간격으로 연속해 내 카드에서 결제 대금을 인출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곧바로 짚이는 게 있었다. 덴버에서 출발한지 얼마 안 돼 탱크에 기름을 채우기 위해 한 주유소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헌데 주유기가 가동되는 소리는 나는데, 실제 기름을 들어가지 않아, 거래를 취소하고 바로 옆의 다른 주유소로 옮겨 탱크 가득 기름을 넣었다. 그럼에도 첫 번째 주유소에서 돈을 청구한 것이었다.

 

즉시 결제를 중단하라고 은행 측에 요구했다. 6년 전 10개월 동안 홀로 북미대륙 여행을 할 때는 조지아 주의 시골 주유소에서 카드로 결제를 한 것이 빌미가 돼서 4번이나 신분 도용을 당한 적이 있다. 당시 도난 당한 총 금액이 5000달러에 달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국제전화를 해가며 이 돈을 다시 찾는데 한 동안 적잖게 애를 써야 했다.

 

자동차 여행에 주유는 불가피하다. 게다가 전체 여행 경비의 거의 절반을 기름값이 차지하는 터라 주유소에서 카드를 사용할 때는 남달리 주의를 하는 밖에 별도리가 없다. 여행 후 가장 먼 거리를 뛴 이날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약 90달러의 기름을 넣고, 드모인의 야영장에 도착했다. 네 사람 모두 지친 상태에서 밤 11시 가까운 시각에 야영장 정문을 통과했다. 로키 산맥 기슭의 야영장을 아침 일찍 떠난 지 약 15시간 만이었다. 막 퇴근을 하던 노년의 여성 관리인이 "내일 아침에 보자. 너구리를 조심하라"며 야영장을 빠져 나갔다.

 

화장실 앞에서 끓여 먹는 라면, 참 맛있네

 

지정된 야영장에 당도, 차에서 내려서자 습기를 가득 머금은 뜨거운 바람이 전신을 감쌌다. 한국의 열대야를 방불케 하는 끈적이는 더위였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병모가 비명을 질렀다. 나 또한 미국 서부처럼 온도가 섭씨 40도를 넘어도 습기가 적은 기후는 견딜 수 있지만, 30도 이하라도 끈끈한 날씨에도 반미치광이처럼 정신이 돌아는 버리는 타입이라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우리에게 배정된 야영장은 입구를 제외하곤 사방이 숲으로 둘러 쌓인 초등학교 교실 1개 만한 공간이었다. 저지대인데다 낮에 내렸던 소나기 탓에 텐트를 쳐야 할 야영장 풀밭은 마치 늪지대 같았다. 반딧불들이 여기저기서 춤추는 게 청정한 곳인 것 같기는 했지만 얕은 늪처럼 물이 찰랑대는 풀밭에 텐트를 쳐야 하는 일은 끔직했다.   

 

"안 되겠다. 너희들 자다가 쫓겨날 각오를 해라. 그냥 주차장 바닥에 텐트를 펴야겠다. 괜찮겠지."

"저희들도 그게 좋겠어요."

 

'아들 셋'은 이구동성으로 내 제안에 찬성했다. 저희들도 촉촉하다 못해 흥건할 정도로 물기를 많이 머금은 풀밭에 텐트를 치고 자기가 심란했던 것이었다. 풀밭 위에 친 텐트를 아스팔트 주차장으로 옮겨오는 동안 나는 바삐 라면을 삶았다. 집에서는 잘 먹지 않는 라면이지만, 비상 식량으로서 효용은 참 뛰어나다. 술을 살 겨를도 없었으므로, 모두들 식사를 하고 샤워를 한 뒤에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중간에 순찰을 도는 사람은 없었기에 새벽에 텐트를 걷어야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야영장 현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보조 관리인 할아버지가 아침에 다가 와서 "텐트를 치면서 아스팔트에 말뚝을 박지 않았느냐"고 물어왔다. 우리는 "보시다시피"라면서 말뚝을 박지 않은 사실을 확인해줬다. 앞서 나는 한판 12개의 달걀 중 우리가 1인당 2개씩 여덟 개를 먹은 뒤 남은 4알을 그 할아버지에게 건넸었다. 할아버지는 그때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표정이 뭔가 개운치 않았다.

 

잠시 뒤 지난 밤에 야영장 입구에서 봤던 할머니 관리인이 차를 타고 나타난 뒤에야 할아버지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관리인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통보를 받았다며, 주차장에 텐트 말뚝을 박았는지를 일일이 확인했다.

 

"미국이 이런 나라이다. 썩은 구석도 많지만, 아주 사소한 원칙도 아직은 대체로 잘 작동하는 사회라고나 할까."

 

그랜드 캐니언에서 규칙상 금지된 술을 마시다, 공원 레인저와 가벼운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어서인지, 아들 셋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실감하는 것 같았다.

 

만 닷새를 여행하며 관찰한 점들만 기준으로 한다면, 아들 셋은 저희들끼리는 아주 좋은 조화를 보였다. 서로 다른 개성에도 불구하고, 마찰의 소지는 거의 없었다. 선일이는 배려심이, 윤의는 솔직함이, 병모는 판단력이 뛰어났다. 앞으로도 갈등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성 싶었다.

 

하지만 미국의 규범 혹은 미국식 사고와는 셋 다 모두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번 여행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우리들 내부보다는 미국 혹은 미국 사람이라는 외부와 경계면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았다. 내가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피 끓는 젊은 녀석들의 에너지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분출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덧붙이는 글 | cafe.daum.net/talkus에도 올립니다. 


태그:#대평원, #꿈 , #옥수수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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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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