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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방향:서울시청앞 분수에서, 영도구 야경, 의경들의 대열, 영도동 교통통제 왼쪽위-서울시청 앞에서 부산으로 가는 희망버스를 기다리면서 평화로운 아이의 모습을 찍었다. 오른쪽 위-영도대교를 건너면서 바라다본 영도구의 야경, 왼쪽 아래-시위대 진압하러 나온 영도동 앞 의경들의 대열, 오른쪽 아래-경찰들이 영도동 시위대 진압을 막기위해 교통통제를 하고 있다.
▲ 시계방향:서울시청앞 분수에서, 영도구 야경, 의경들의 대열, 영도동 교통통제 왼쪽위-서울시청 앞에서 부산으로 가는 희망버스를 기다리면서 평화로운 아이의 모습을 찍었다. 오른쪽 위-영도대교를 건너면서 바라다본 영도구의 야경, 왼쪽 아래-시위대 진압하러 나온 영도동 앞 의경들의 대열, 오른쪽 아래-경찰들이 영도동 시위대 진압을 막기위해 교통통제를 하고 있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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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에 앞서 긴장이 되었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최소한의 짐을 꾸려 나섰다. 희망버스 3차에 타기로 한 것이다. 후배가 신청했다는 소릴 듣고 주저없이 신청했다. 나름 어떻게 사회에 참여를 해볼까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마침 토요일이라니 시간도 괜찮고, 후배랑 가벼운 마음으로 동행을 하기로 했다.

희망을 나누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외로이 투쟁하는 김진숙 위원을 보고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주고 힘을 보태주고 싶었다. 더운 여름에 휴가대신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후배의 일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12시쯤 시청앞에 도착했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떠났고 신청도 미리 안한 상태에서 갑자기 늘어난 사람들 때문에 버스를 급하게 구하느라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2시쯤 출발을 했다. 가는 도중 폭우가 쏟아지는 곳이 있어 걱정했으나 다행히 부산은 안 온다고 했다.

2시에 출발한 버스는 10시 가까이 되어 도착했고, 트윗을 하는 분들이 알려준 따끈따끈한 정보에 의하면 영도동 조선소는 경찰이 막아서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이런저런 정보 뒤에 남포동에 내렸다. 롯데백화점앞에 모여 시위를 진행했다. 저녁에 시작되었던 문화제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못본 것이 애석하기는 했지만 차가 막혀 늦은 걸 어쩌랴 싶었다. 시위도 하고 각지역에서 온 각계층 사람들의 발언이 이어졌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슬며시 빠져나와 영도다리를 건넜다. 지도를 보고 가늠을 했다. 롯데백화점에서 한진중공업까진 그리 멀지 않았다. 영도다리 야경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빠져 나오는데 시위대 주변에 전투경찰이 시커멓게 깔려 있었다. 갑자기 주눅이 드는 듯 했다. 여행객인듯 가장하며 전경이 앉아 있는 옆을 지나치는데 땀냄새가 진동을 한다. 전투복에 보호용 장구까지 착용했으니 그 고통이 오죽하랴 싶었다. 입영날자 받아놓은 아들의 모습이 이들의 얼굴 위에 겹쳐지면서 마음이 짠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해야 할 젊은이들이 시위대 진압에 동원된 이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영도다리를 건너서는 큰길이 아닌 골목길로 접어들어 걸어갔다. 뒷길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단어가 무색할만큼 어려워보였다. 길도 오래된 듯 보이고 그닥 깔끔해보이지도 않고 건물들도 나지막하고 오래돼 보였다. 어둡기까지 했다. 마치 유령의 도시인듯 했다.

영도동에는 의무경찰과 전투경찰들이 촘촘이 막아서 있었다. 이골목 저골목으로 가보아도 온통 경찰뿐이었다. 왜 저리 막아섰을까? 길 건너려 올라간 육교에는 지역주민, 취재진과 관광객 등이 몰려 복닥거렸다. 옆에서서 시민들의 반응도 살폈다. 뚜렷한 획기적인 반응은 없는 듯 했다.

학교 다닐 때 시위해본 경험도 없어서 채증이니 최루탄이니 하는 단어만으로도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시위대하고 떨어져 나온 상태라 각별히 행동에 조심하면서 구경하고 있는 시민들한테 말을 걸어봤다.

"희망버스에 대해 부산 시민들 반은은 어떤가요? 부정적인가요?"
"일부 시민들은 부정적인 사람도 있고 긍정적인 사람도 있고 그렇지요. 우리 윗집 아줌마는 희망버스 사람들이 돈받고 사주받고 낼려온 걸로 알고 있어요."

일부에선 시위를 인정하고 동조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 많은 시위대에게 돈 줄 사람은 누구고 돈이 어디서 나와서 그렇게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지 아무리 봐도 납득이 안 되었다. 시민들의 반응이 모두 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언론에서처럼 부산사람들이 다 희망버스를 못오게 막아서고 적대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과거에 한진중공업 직원이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몇 년 전에 관두고 다른 직장으로 옮겼고, 영도동에는 조선소가 굉장히 많다고 했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큰 조선소들 말고도 영세한 업체들이 많고 조선소 직원들은 단돈 시간당 100원 200원을  더 받기 위해 이직을 많이 하고 요즘엔 거의 비정규직이라고  했다.

이리저리 한진중공업쪽으로 들어가보려는데 골목이란 골목은 물샐틈 없이 얼마나 철저하게 막아놓았는지 뚫고 지나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교차로에서도 음주단속하듯이 막아놓고 일일이 확인하듯이 버스는 통제하고 택시나 승합차 정도만 보내주고 있었다. 동네 주민은 버스 타고 휑하니 10분이면 갈 거리를 걸어서 1시간을 돌아가야 된다고 불평을 했다.

시계방향:어버이연합, 시위대와 시민들간의 시비 위 사진 2장과 왼쪽 아래 사진은 어버이 연합이 타고 온 차로 거의 노인이 많았고 시위 현장에서 욕하고 방해도 하다가 버스 안에서 잠시 휴식한 후 다시 시위대한테로 간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시위대와 시민들간의 시비가 벌어지고 있다.
▲ 시계방향:어버이연합, 시위대와 시민들간의 시비 위 사진 2장과 왼쪽 아래 사진은 어버이 연합이 타고 온 차로 거의 노인이 많았고 시위 현장에서 욕하고 방해도 하다가 버스 안에서 잠시 휴식한 후 다시 시위대한테로 간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시위대와 시민들간의 시비가 벌어지고 있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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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왔는데 김진숙 위원 얼굴 보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얼굴 한 번 보겠다는데, 수천명의 전경을 동원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어버이연합인지 정체불명의 노인들을 일당주고 불러다 훼방까지 놓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새벽 4시까지 돌아다녀도 85호 크레인의 김진숙 위원 근처는 얼씬할 수도 없다. 얼굴 한 번 보고 손 한 번 흔들어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줄 몰랐다. 마음만으로 응원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소금꽃님의 투쟁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소금꽃님은 지금 혼자가 아닙니다. 힘내십시오."

다시 타고 왔던 버스에 합류해 서울로 돌아오는 것으로 3차 희망버스는 끝났다.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선 '깔깔깔'이라는 도우미 한 사람을 정해서 인솔자로 삼았다. 버스 타고 부산 갈 때부터 서울로 돌아오기까지의 일정이 유동적인 상태에서 그때그때  연락을 받아서 차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인솔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신기한 것은 유동적이고 정해진 것이 없는 것 같은 일정인데도 별탈없이 끝났다.

시민의 힘이라고나 할까? 좀 밍밍하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충돌과 폭력없이 평화롭게 마친 점, 주변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을 생각하는 면에선 나름 성과다. 또한 이건 한진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도조선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곳곳에서 자행되는 비인간적인 정리해고와 비윤리적인 기업들의 횡포에 대한 우리의 저항이기도 하다.

시민은  제 3자라 개입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 정부도 제 3자라 개입안하고 기업과 노동자 당사자끼리 해결하라고?

노동자가 무슨 힘이 있어서 기업과 맞설 수가 있을까?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정리해고를 했다던 영도조선소는 필리핀 수빅으로 옮겨 이익을 내고 있고, 필리핀내에서 수빅조선소의 별명은 '무덤'으로 불리기도 하고 '킬링필드'라고 불릴 정도로 산재피해로 악명이 높아 2009년 국회청문회까지 출석했을 정도였다.

작년 12월의 영도조선소의 정리해고는 사실상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한다. 필리핀에서도 지난 3년간 41명이 사망했으나 사측은 직접 고용이 아니므로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발뺌을 하고 보상을 회피하기 위해 의문사 혹은 자살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해외에 나가서도 비인간적인 회사경영으로 국가에도 누를 끼치는 일이다.

200여 일 이상 투쟁을 하고 있는데도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은 미동도 않고 해외에서 안들어오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나 몰라라 하고 오히려 희방버스를 진압하는데만 애를 쓴다. 희망버스의 의미는 나 혼자만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의 소망을 보인 것이다.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고 그냥 잠잠해지고 잊혀지기만을 바라는 모양이다.

그러나 소금꽃은 김진숙 하나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내일이 아니라고 강 건너 불보듯 할 일이 아니라는 걸 시민들은 알고 있다. 연대해야만, 함께 해야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내옆사람이 굶으면 당연히 밥 한 숟갈이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내것을 나눌 수 있을 때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이다.

이젠 나눔이 경쟁력이다. 나누고 소통하는 것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 믿는다. 생각이 같은 사람이 많아지고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진정 사회는 변화할 것이라고 믿기에 아무리 공권력으로 막아도 오히려 막을수록 희망버스는 4차 5차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제2 제3의 소금꽃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기 전에 정치권이나 기업들이 깨닫고, 문제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길 바란다. 희망버스가 3차에서 끝나길 바라며 아울러 김진숙 위원이 지상으로 내려올 날을 간절히 빌어본다.

변화되는 세상을 위해 나 하나의 실천부터 해나가려 한다.  보수 언론에 맞서서 한진중공업 파업의 실상을 내 주변사람들에게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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