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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더 좋아해요. 특별한 장난감 없이도 하루 종일 잘 놀죠. 개구리와 고양이가 친구에요. 더우면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겨울엔 눈밭을 뛰어다니며 놀고."

 

3년 전 귀농해 정착한 이혁재(36) 씨의 얘기다. 그는 "티 없이 뛰놀며 자라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귀농하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흐뭇해했다.

 

이 씨는 '필암서원'에서 가까운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서 상추와 꽃(알스트로메리아)을 재배하고 있다. 시설원예 면적은 5000㎡, 단동 하우스 6동과 작업장으로 이뤄져 있다.

 

고등학교 진학을 이유로 고향을 떠난 이 씨는 줄곧 대처에서 살았다. 군 제대 이후 야채·과일 도매상 일을 시작으로 과일가게 경영, 공산품 유통, 주방가구와 인테리어 관련 일까지 여러 가지를 해봤다. 목공기술도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익혔다.

 

그러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건설경기마저 바닥을 헤매면서 생계마저 버거웠다. 고향이 새록새록 그리웠다. 그에게 고향은 아버지의 농사일을 거들었던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1980년대 중반부터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며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농사기술을 배우고 그의 젊음과 패기를 더하면 농사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부인 이은선(38)씨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지난 2008년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 씨는 아버지의 하우스 가까운 곳에 새 하우스를 지었다. 인테리어 관련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직접 하우스와 작업장을 설계했다. 단동 하우스 6동을 지으면서 작업장과 연결시키고 2단 개폐시설을 도입한 것도 그의 생각이었다.

 

재배지와 작업장이 바로 연결되자 일하기 편했다. 작업공간이 넉넉하고 농기계를 보관할 수 있는 터도 생겼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도 눈·비 맞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단동 하우스에 2단 개폐시설을 한 것도 획기적인 시도였다. 시설비와 인건비가 더 들어갔지만 지난해 폭설 때 진가를 발휘했다.

 

"인테리어 일을 할 때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때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 길이 100m의 하우스를 날마다 수십 번 왔다 갔다 하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루에 5㎞에서 10㎞는 족히 걷는 것 같아요."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농사일이 힘들다는 이씨. 그러나 아이들이 좋아하고,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동생도 가까이 있어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귀농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와 동생의 도움이 컸다. 아버지와 동생도 옆 하우스에서 토착미생물을 이용해 양질의 상추와 꽃을 생산,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판로도 걱정 없다. 무농약 인증을 받은 상추는 학교급식 전문업체에 모두 납품한다. 알스트로메리아 꽃도 서울 양재동 화훼공판장과 판매자조합을 통해 다 나가고 있다.

 

"내 아이들이 맘 놓고 뛰놀며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소비자에게도 안전한 먹을거리를 싼 값에, 지속적으로 공급하구요."

 

그가 앞으로 직거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유다. 몸집을 불리려 하는 것도 안전한 먹을거리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다.

 

장기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품어왔던 꿈을 키워갈 생각이다. 필암서원, 홍길동테마파크 등과 연계한 관광농원, 나아가 친환경 농업단지를 만들고 싶은 꿈을. 소득의 사회환원도 지금부터, 조금씩 시작할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귀농, #이혁재, #이은선,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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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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