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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유적과 함께하는 '2011 겨울 만주기행' 마지막 날(1월 16일)은 국경도시 도문(투먼)에서 심양(선양)으로 가는 장거리 침대열차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으로 남았으나 난방시설이 엉망인 기차에서 추위와 싸우느라 날이 바뀌는지도 몰랐다.

조선족 동포가 운영하는 민박집 앞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9시. 민박집이 있는 '서탑가' 아파트 단지는 60년대 한국의 산동네를 떠오르게 했다. 처음 하는 민박이어서 기대가 컸는데 실망이었다. 주변 공터는 쓰레기투기장을 방불케 했다.

그래도 건물 내부는 청결했다. 조명이 없어서 조금 음침했지만, 우리와 문화가 다른 나라이니 이해가 되었다. 아파트 두 채를 개조했다는 민박집은 호텔보다 따뜻하고 깔끔했다. 냉장고에서 정수기까지 필요한 가재도구는 거의 갖춰놓았는데, 우선 사람 냄새가 나서 좋았다.    

고향집 마루에서 보던 광경, '빨래 손질'

아파트 거실에서 빨래를 손보고 있는 민박집 모녀
 아파트 거실에서 빨래를 손보고 있는 민박집 모녀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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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 들어서니 두 여성이 마주서서 보송보송하게 마른 빨래를 양손에 쥐고 잡아 다니며 물을 뿌리고 있었다. 기억에서 사라졌던 옛 동무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어머니와 누님들이 말린 빨래를 손볼 때 옆에서 도와주던 일들이 시나브로 떠올랐다.

빨래를 툴툴 터니까 뽀얀 비누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면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코흘리개시절 어머니 치맛자락에서 풍기던 그 냄새였다. 최근에 지은 중국의 아파트 거실에서 40-50년 전 어머니 냄새와 고향집 마루에서 보던 광경을 대하니까 정겹게 느껴졌다.

모녀 사이로 보였는데 어디에 사용하는 옷감이냐고 물으니까 민박 손님이 사용한 이불 호청을 손보고 있다고 했다. 손님이 떠나면 빨아서 갈아놓는 게 일이란다. 처음엔 차갑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촉감이 고슬고슬하고 따뜻해지는 옥양목 솜이불이 생각났다. 

결혼(1982년)할 때 두터운 솜이불 몇 채를 혼수로 해온 아내도 떠올랐다. 15년 전 카시미론 이불로 대체하기까지 아내는 봄가을로 호청을 뜯어 깨끗이 빨아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서 아이들 옷 입히듯 정성들여 갈아 끼웠었다.  

벽에 걸린 1만 원짜리 지폐도 눈길을 끌었다. 고액권이어서 걸어놓은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 설명은 그게 아니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존경하기 때문이라는 것. 아주머니는 만주에는 세종대왕을 존경하는 조선족 동포가 많다고 귀띔했다.

모녀의 답변에서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들은 돈을 걸어놓은 게 아니라 유명한 화백의 명작을 복사해서 걸어놓고 있었다. 온화한 인품의 세종대왕과 '한국은행' 글씨, 다양한 무늬 등을 보면서 고향과 고국의 향수를 달래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

만주의 조선족 동포 중 70대 이상은 중국어를 배우지도 배울 필요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는 박영희 시인의 설명이 떠올랐다. 어릴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자기들끼리 대화할 때는 대만어를 사용하는 군산의 화교들과 비교되기도 했다.

김 한 톳 선물 받고 기뻐하는 조선족 아주머니

아침 밥상은 정갈했고 정성이 담겨있었다. 따뜻한 밥을 구수한 된장국에 말아 맛있게 먹었다. 맛도 맛이지만, 집에서처럼 편안하게 앉아 천천히 즐기면서 먹으니까 좋았다. 식사를 마친 일행들도 오랜만에 개운한 된장국물 맛을 봤다고 입을 모았다.

문득 한국에서 가져간 김이 생각났다. 작년 여름(8월) 기행 때 시장을 둘러보며 만주는 바다, 특히 서해바다와 멀리 떨어진 지역이어서 김이 귀한 것을 알고, 겨울 기행을 준비하면서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준비해간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알아주는 전라도 김이라며 한 톳 건네주었더니 아주머니는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는 파래 향이 참 좋다면서 자꾸 냄새를 맡았다. 생각대로였다. 만주에서는 파래향이 짙게 풍기는 김은 시장에서도 볼 수 없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생각지 않은 선물을 받으니까 기쁘면서도 미안한 모양이었다. "저는 무엇으로 답례를 해야지요?"라고 묻기에 "맛이나 보시라고 가져왔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맛있게 잡수세요"라고 했더니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고마워했다. 아주머니가 기뻐하니까 가져온 보람을 느끼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만주에서 듣는 우리말 방송, 고향 소식처럼 반가워

민박집이 있는 서탑거리 아파트촌 뒷골목
 민박집이 있는 서탑거리 아파트촌 뒷골목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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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과 거실 소파에 앉아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TV에서 우리말을 사용하는 아나운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울, 심양 등 국내외 소식을 전하는 뉴스였다. 투박한 북한 말투이지만, 고향 소식처럼 반가웠다.

16일 심양의 아침 기온이 영하 29도였다는 아나운서 멘트에 합창하듯 "그렇게 추웠었느냐!"며 모두 놀랐다. 이어 한국도 강추위가 며칠 째 이어지고 있다며 서울의 아침 기온은 영하 17.5도까지 내려갔다고 하자 놀라움과 웃음이 반반으로 섞여 나왔다. 서울도 춥겠지만, 만주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거였다.

이불속에서 옛날이야기 듣듯 TV를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는데 박 시인이 오더니 하루 일정을 안내했다. 그는 마지막 날이어서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며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귀국해야 하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오늘은 만주에서 마지막 날이니까 각자 자유롭게 하루를 보내게 되겠습니다. 30위안(5400원)씩 내드릴 테니까 점심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사 드세요. 먼저 '오애시장'을 둘러보고 오후 3시에 심양 천주교당 앞에서 모여 '청나라 고궁 거리'를 쇼핑할 겁니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가야하니까 무리하지 마시고요. 지갑은 집에 두시고 꼭 필요한 돈만 가져가면 좋겠습니다."  

박시인의 설명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심양은 횟수로 네 번째 방문이다. 하지만, 8백 만에 가까운 대도시여서 열 번, 백 번을 와도 새로운 모습일 것 같았다. 엿새 전 심양에서 만주기행을 시작했는데 마무리 하게 되다니, 아쉬움과 함께 알찬 추억도 남기고 싶었다. (끝)

덧붙이는 글 | 항일 유적과 함께하는 '2011 겨울 만주기행'(1월10~17일)은 35회로 마칩니다. 심양에서 돌아보았던 '오애시장', '청나라 거리' 등은 훗날 기회가 있으면 추억담으로 올리겠습니다. 만주기행을 읽어주신 독자와 편집부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태그:#만주기행, #심양, #민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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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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