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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앞 소공원에 얼마 전에 구청에서 운동기구 몇 개 만들어줬던데, 너무 어두운 곳이라서 해 지고 나면 보이질 않으니…. 주변에 벤치도 있고 한데 저녁 나절에도 사람들이 운동도 하고 쉴 수 있도록 보안등 좀 달아줄 수 없을까?"

"아, 거기요? 보안등 설치는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일단 대답은 시원하게 하긴 했는데, 가만… 거기에 운동기구는 언제 생겼지? 간간이 다니는 길이긴 하지만 주의 깊게 보질 않으면 알 수가 없는 노릇이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얼핏 운동기구를 본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만, 그 운동기구들을 구청에서 설치해줬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동네 일인데 설치될 때까지도 모르고 있었으니 내가 너무 무심했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설을 설치할 때까지 아무런 '귀띔'도 해주지 않았던 집행부가 괘씸하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연초나 연말 같으면 지역구 동네별로 '주민편익 사업현황'에 대해서 요청도 하고 살펴보기도 합니다만, 다른 때에는 민원이 있지 않은 이상 동네별로 살펴보진 않습니다. 아무튼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면 덧나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소식이 제 귀에 안 들어온 이유가 다 있겠다 싶더군요. 민원을 받은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아파트 현관마다 입주자 대표회의 명의로 "이번에 ○○○ 의원님과 동구청의 지원으로 운동시설이 설치되었으니…"라는 홍보물이 붙은 것입니다. 정황상, 그 의원님 입장에서는 자신의 치적(?)을 굳이 다른 의원들한테는 알리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만 해볼 뿐이죠. 

저는 이 정도 수준이었습니다만 좀 더 '난감한 상황'을 겪으신 의원님도 있습니다. 추가경정 예산안 심의를 하는데 '경로당 신설' 예산이 올라왔답니다. 그런데 그 예산을 다뤄야 할 상임위의 해당 지역구 의원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 같은 지역구 의원 중에서 누군가가 '비밀리에' 예산 항목으로 잡게 만든 것이겠죠. 상임위 의원이 몰랐던 일이라고 '없던 일'로 만들어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승인을 해주면 그 성과는 '뻔할 뻔'자로 그 예산 항목을 만든 의원에게만 돌아가니, 얼마나 난감하셨겠습니까?
 

 

주민숙원사업 예산, 먼저 입 떼는 사람이 임자

 

일반적인 민원, 즉 보안등 설치·수리라든가 운동기구 설치·보수와 같은 곳에 쓰는 예산은, 1년 예산에서 총액만 정해두고 세부적인 집행은 집행부에서 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디에 어떤 시설을 놓을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누구든 먼저 입을 떼기 나름인 셈입니다.
 
하나하나를 따로 봤을 때 큰 예산이 들어가는 일은 아닙니다만, 전체 20개 동의 요구사항들을 모아놓고 보면 적잖은 규모가 될 수밖에요. 분야도 보안등 신설·수리, 도로훼손 복구, 하수도 정비, 운동기구 설치·보수, 공원 조성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이런 사업들은 '티'가 나는 사업입니다. 없던 보안등이 생기고, 없던 운동기구가 생기면 눈에 띌 수밖에 없죠. 당장 동네에서 '입소문'이 잘 나려면 이런 민원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친환경의무급식, 영유아예방접종 지원 등 자치단체 차원의 좀 색다른 복지시책을 펼쳐낼 예산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지기도 합니다(근본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의 가용재원이 부족한 게 문제입니다만). 동별 주민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대략 각 2천만 원씩, 총 4억 원의 예산을 잡아뒀습니다. 의원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다른 예산을 늘리는 것보다, 좀 자유롭게 쓸 수도 있고 생색 내기도 좋은 예산을 늘리는 데 더 신경을 쓰지 않겠습니까?
 

구청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해서도 많은 민원이 제기되고, 또 많이 해결됩니다. 때론 동사무소를 통해서, 구의원을 통해서 접수되고 해결되기도 합니다. 저도 지난 1년 여간 많은 민원을 받아봤고 집행부와 함께 해결도 해봤습니다만, 소소한 민원을 해결하고는 생색 내기란 스스로가 좀 궁색한 것 같더군요. 그런데도 누가 알아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알아서 소문을 내고 다녀야 할 형편의 기초의원이기에,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더군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 거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면에 "한 가지 일이라도 대표적인 것에 집중하라"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집단민원이 아니고서는 '접수-해결'의 경과를 거쳐 맺게 되는 관계의 폭이 그리 넓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민원이 해결되면 일단 먼저 듣고 답해준 사람이 성과를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품을 팔며 '듣고', 가/부를 떠나 '빠른 답변'을 하고, '실질적 해결'을 고민하는 것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활동이 하나씩 쌓여서 결국 "그 사람 동네 자주 다니면서 열심히 하더라"는 한마디 평가가 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공약으로 내세웠던 사업들을 풀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발품 파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민원해결 '찜하기', 하자니 궁색하고 안 하자니 몰라주고
 

오늘도 처음에는 '보안등 신설' 때문에 길을 나섰지만, 받아온 민원은 그 이상이 되었습니다. 구청 담당자와 함께 현장에 나가서 해당 주민들과 보안등 설치 위치, 각도 등을 살펴보기 시작하니 다른 부분들도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더군요.

 

소공원에 있는 쉼터에 벤치밖에 없는데 마루 같은 걸 설치할 수는 없는지, 비를 막으려 천장에 아크릴 같은 걸 덮어뒀는데 아예 팔각정 같은 걸 설치해줄 수는 없는지, 주변의 나무들을 정비해줄 수는 없는지, 그렇지 않아도 외진 곳에 있는 소공원을 더 외지게 만드는 불법주차를 막기 위해서 인도에 펜스를 설치할 수는 없는지, 아파트 경로당에서는 그 아파트 주민이 아니면 잘 안 받아주는데 인근에 사는 어르신들을 위해서 경로당을 새로 만들어줄 수는 없는지….

 

무더운 날씨 탓에 땀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것에 일일이 답을 해 드리느라 진땀까지 나더군요.

 
"아이고, 구청에 가볼라 캐도 그렇고, 이렇게 의원님이나마 만났으니 어떻게 좀 꼭 해주소. 여기 팔각정 같은 거도 만들어주고, 경로당도 그렇고…"라며 얘기해주시는 할머니께 "경로당 신설은 구청 방침으로 하지 않겠다고 해서 어렵고, 팔각정은 예산이 얼마 들어가는지를 봐야…"라고 시시콜콜 설명해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연신 그저 "노력해보겠습니다"라고 할 수밖에요.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일단 제가 그 이야기를 '들었고', 다행스럽게(?) 예산이 허락되어서 그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 성과는 상당 부분 저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겠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항상 마음도 발걸음도 바쁠 수밖에 없네요.

덧붙이는 글 | 황순규 기자는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의원입니다.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지방자치, #지방의회, #기초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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