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부산 한진중공업 소식을 자주 들으실 것입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35미터 높이의 한진중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인 지 200일이 넘었습니다. 그를 만나겠다며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찾고 있고 이미 두 차례 희망버스란 이름으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산에 왔습니다. 오는 30일에도 3만 명 이상의 대규모 인원의 참가가 예상되는 3차 희망버스가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부산시민 중엔 이 희망버스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도구 주민자치협의회와 주민들이 희망버스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고, 허남식 부산시장과 시의회장도 희망버스를 향해 '3자 개입 자제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던 바 있습니다. 일부에선 희망버스가 오면 육탄저지 하겠다는 엄포까지 놓고 있습니다. 지난 2차례의 희망버스도 한진중공업 사측과 시민, 경찰과 시민이 대립하며 긴장된 순간도 있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오는 3차 희망버스는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희망버스가 무사히 다녀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10일 오후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경찰 차벽에 막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중인 '85호 크레인'에 접근하지 못한 채 1박 2일 일정을 마무리하게된 가운데, 환송 나온 한진중공업 노조 조합원과 희망버스 참가단이 포옹을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10일 오후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경찰 차벽에 막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중인 '85호 크레인'에 접근하지 못한 채 1박 2일 일정을 마무리하게된 가운데, 환송 나온 한진중공업 노조 조합원과 희망버스 참가단이 포옹을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부산시민 여러분, 저 김정길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부산시민들에게 희망버스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7월 30일 3차 희망버스가 부산을 무사히 다녀갈 수 있도록 부산시민 여러분들의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부산시민 여러분에게 희망버스에 대한 이해를 구하려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한진중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중인 김진숙 위원을 만나기 위해서 옵니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김진숙씨를 만나러 오는 것은 김진숙씨가 좋다거나 2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인 상황이 안타까워서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절박한 심정으로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지도위원의 주장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사측의 정리해고를 무조건 철회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이 왜 희망버스 시민들의 공감을 얻는 걸까요?

한진중공업은 지난 10년간 4천 억 원이 넘는 이익을 냈습니다. 그런데도 수주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실시했습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지난 10년의 시간 동안 얻었던 4천 억이란 천문학적 이익을 설비투자 등의 경쟁력 확보에 쓰지 않고 엉뚱한 데 사용하고 그 부실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리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은 400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다음날 주주들에게 174억 원을 배당하고 임원들의 연봉을 50% 인상했습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어떻게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고 임원들 연봉을 인상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도의 한진중공업은 지난 2년간 수주실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반면 한진중공업이 운영하는 필리핀의 수빅조선소는 그 사이 세계 4위의 조선소로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 내 다른 조선소들은 호황에 버금가는 수주 실적을 올렸다고 합니다. 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만 수주실적이 없는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례가 여럿 있지만 여기서 일일이 다 설명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를 구합니다.

희망버스도 '소란과 불편' 피하고 싶습니다

한진중공업 건너편 신도브래뉴 인도에는 참 많고 다양한 삶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치를 다시 배우는 기분입니다.
▲ 한진 해고노동자, 시민들과 함께 한진중공업 건너편 신도브래뉴 인도에는 참 많고 다양한 삶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치를 다시 배우는 기분입니다.
ⓒ 김정길

관련사진보기

이렇듯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조조정인데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법대로 하자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한진중공업 사측에 맞설 방법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김진숙씨가 절박한 심정으로 85호 크레인에 올랐고 자본에 맞선 김진숙씨의 저항에 함께 공감한다는 표시로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한진중공업을 찾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일방적 정리해고가 남발된다면 오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당하는 문제가 350만 부산시민 여러분의 가정에도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 보여주는 관심과, 약간의 불편함을 참아내는 인내는 나중에 나와 내 가족들에게 똑같은 일이 생겼을 때, 그들이 내 이웃 내 친구 내 동지가 되어 보내주는 큰 응원과 격려가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부디 조금의 불편함을 이해하여 주십시오.

희망버스가 소란스러웠고 주민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희망버스 시민들이 이동하고 경찰과 대치하면서 주민 여러분을 불편하게 하고 시끄럽게 한 점은 희망버스 주최측도 인정했습니다. 또한 그 점에 대하여 여러 차례 사과도 했습니다. 저 김정길도 희망버스를 지지하고 그날 행사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부산시민 여러분에게 그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소란과 불편을 희망버스 주최측 역시 피하고 싶었다는 점도 말씀드립니다. 희망버스가 원한 것은 85호 크레인 앞으로 가서 김진숙 위원을 만나고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경찰병력이 봉래삼거리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막지 않았다면 참가자들은 조용히 한진중공업 앞으로 이동해서 김진숙 위원을 만났을 것이고 한곳에 모여 집회를 하면서 부산 영도주민들의 불편은 우리가 흔히 보는 집회 정도의 불편으로 끝났을 겁니다. 그러나 경찰은 다음날 오전까지 길을 열어주지 않았고 한 자리에서 10시간 이상 대치하면서 소란과 불편함은 더 커졌습니다.

집회와 시위의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것입니다. 야간집회의 제한도 위헌이라고 판결난 바 있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막아 소란을 야기하고 불편을 가중한 데에는 경찰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이해가 그들에겐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사옥에 있는 해고자 가족들은 낮에는 모여 함께 공동 부업을 한다고 합니다. 같이 한 푼이라도 벌겠다는 핑계로 모이는 것인데 사실은 집에 혼자 있다가 불시에 퇴거통보라도 받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그렇게 모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집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있다 이런 통보를 받으면 해고 노동자의 가족들은 그 자리에서 울음바다가 됩니다. 우리에겐 가족이 있습니다. 왜 그들의 이런 심정 이해 못하겠습니까. 집회로 인한 불편이 큰다 한들 이 상처만 하겠습니까. 부산시민 여러분 조금만 이해해주십시오. 우리들의 이해가 그들에겐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부산시민 여러분, 저 김정길은 3차 희망버스에도 함께하려고 합니다. 집회라고 해서 달리 보실 이유는 없습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경찰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협조한다면 아무런 충돌 없이 부산에서 열리는 여느 행사와 다름없이 행사를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지나는 길이 조금 시끄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함께하다보면 쓰레기도 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입니다.

김진숙 위원과의 만남을 보장한다면 희망버스에 참가한 전국에서 몰려든 3만 여명의 참가자들은 '7월30일 부산'을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된다면 주인 된 입장에서 부산시민들은 그들을 부산을 찾아온 3만의 관광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지 않아도 3차 희망버스의 내용은 '부산으로의 휴가'입니다.

언젠가 우리 자신의 주장도 타인에겐 불편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살아감에 있어 타인의 주장을 위한 공간과 시간의 배려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헌법 역시도 그 이유 때문에 정당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존경하는 부산시민 여러분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3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주신다면 7월 30일의 희망버스는 단순한 집회나 시위가 아닌 축제로 기억되게 될 것이고 이날 부산을 찾은 그 사람들은 후일 부산을 다시 찾고 싶은 정겨운, 인정이 넘치는 도시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희망을 만드는 휴가, 우리가 소금꽃이다!
▲ 3차 희망버스 희망을 만드는 휴가, 우리가 소금꽃이다!
ⓒ 희망버스

관련사진보기


이상과 같은 취지에서 저는 부산시민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 다음과 같이 부탁드립니다.

1. 한진중공업과 조남호 회장은 보다 성실하게 노사 간의 대화에 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기존에 노사 간에 이미 "더이상의 정리해고는 하지 않는다"고 합의하였던 노사합의를 성실하게 지켜주시기를 당부합니다. 더 이상의 정리해고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지켜져서 해고자 복직이 이루어져야만 한진중공업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강자인 회사가 약자인 노동자들의 입장을 조금 더 이해하고 양보하여 주십시오.

2. 부산 시민 여러분께서는 희망버스가 부산에 오는 것을 막지 말고 오히려 환영하여 주십시오. 지금 전국 각지에서 부산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3만여 명의 국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이 사회적 대타협의 장이 되고, 우리 부산이 화합과 통합의 새로운 상징이 될 수 있도록 부산 시민 여러분께서도 희망버스를 따뜻한 손길로 맞이하여 주십시오. 부산과 한진중공업이 탄압과 저항의 장이 될지, 화합과 사회적 대통합의 상징이 될지는 부산시민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3. 경찰 여러분께서는 희망버스를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희망버스가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켜주십시오. 시민들을 막고 탄압하는 경찰이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들을 보호하는 경찰이 되어주십시오. 만약 경찰이 무력으로 희망버스를 막아서려고 한다면 한때 경찰 조직의 최고 수장이자, 최루탄과 투석전 없는 '무탄 무석'을 제안하고 실제로 실천했던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이었던 저 김정길이 맨 앞에서 앞장서서 최루액과 경찰 곤봉을 맞을 것입니다.

4. 정치권에서도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기존의 노사합의가 지켜지고, 한진중공업 노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국회와 행정부에서도 지혜를 모으고 정치력을 발휘해주십시오.

5. 희망버스에 오르신 민주 시민 여러분.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한진중공업과 희망버스가 화합과 통합의 장이 되고, 사회적 대타협의 시작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가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문제 제기 자체가 아니라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 투쟁과 시위 자체가 아니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일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모든 말과 행동 하나 하나를 조심하고 솔선수범합시다. 희망버스가 투쟁이 아니라 화합의 상징이 되게 합시다.

한진중공업과 85호 크레인에 보내주신 희망버스 여러분들의 격려와 지지, 그리고 국민 여러분의 관심에 부산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오랫동안 한진중공업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희망버스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 불편함을 인내하며 부산시민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랑과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과 '희망버스'가 화합과 통합, 사회적 대타협의 상징이 되고, 자랑스러운 부산의 얼굴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참아내고 노력하여 주실 것을 다시 한번 당부드립니다.

전 행정자치부 장관 김정길.


태그:#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