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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새벽, 충혈된 눈으로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난 밤 자동차가 제대로 굴러 갈 수 있을지, 걱정에 걱정을 더하는 바람에 전혀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오전 6시, 전날 밤 늦게까지 신나게 놀고 뒤늦게 잠에 빠져들어 있던 아들 셋을 깨웠다. 여행 출발일인 오늘은 그간 월세를 살던 방을 빼는 날이기도 하다.

 

지난 5개월 동안 나는 11살짜리 여자 조카 아이를 돌보며 한국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주인인 집에 딸린 게스트 하우스에 살았다. 작은 방 하나, 역시 작은 거실 하나인 게스트 하우스로 조카는 지난 6월 말 서울로 돌아갔다. 대신 아들이 7월 초에 와서 나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일 아들 친구 둘이 역시 미국으로 날아와 며칠 합류해 지내다가 마침내 같이 여행 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잠도 못 자 피곤도 하겠다, 늙었다는 핑계로 차가 있는 주차장 쪽으로 짐을 모두 빼라고 아들 셋에게 말했다. 아들 셋은 순식간에 여행용 세간들을 차 꽁무니 쪽 땅바닥에 옮겨다 놨다. 짐을 빼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정도나 됐을까. 맨 마지막으로 내가 집안 구석구석 놓고 가는 물건이 없나를 확인한 뒤 지갑과 랩톱 컴퓨터, 카메라를 들고 주차장으로 갔다.

 

"맙소사."

 

지난 밤 우려가 눈 앞의 현실이 돼 있었다.

 

"아버지 안 되겠는데요."

"어림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죠?"

 

아들 셋이 저마다 한마디씩을 했다. 엊저녁까지 태평했던 녀석들이었는데, 막상 짐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저희들도 암울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까지 망연자실한듯한 태도를 취할 수는 없었다.

 

"비켜라, 내가 실어보마."

 

정말 심혈을 기울여 짐칸에 차곡차곡 짐을 쌓았다. 트렁크 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주먹 하나 들어 갈 틈이 없을 만큼 빼곡히 짐을 밀어 넣었다. 그러고도 땅 바닥에는 딱 절반 분량이 적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셋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침낭 4개를 차 안 발치 쪽 바닥에 쑤셔 넣었다. 차가 너무 작아서 말 그대로 처박듯이 집어 넣을 수밖에 없었다. 조수석 앞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서 엉거주춤 서 있는 아들 셋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올라타라. 그리고 팔 벌려."

 

마지막으로 남은 짐들을 그네들에게 문자 그대로 떠 안겨 주었다. 그러고서도 카메라와 랩톱 컴퓨터는 자리를 찾지 못했다. 별 도리가 없었다. 내가 안고 타는 수밖에. 카메라가 담긴 수박만한 크기의 카메라 가방을 내 무릎에 놓고,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공간에 랩톱 가방을 끼워 넣었다. 핸들도 기어도 조작이 쉽지 않았다. 내가 타지 않았는데도, 전날 적정 공기압보다 조금 더 빵빵하게 바람을 주입해 둔 타이어는 푹 눌려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이모네 집으로 가자."

 

월세를 살던 집에서 20km 남짓 떨어진 아이 엄마의 사촌 언니 집으로 갔다. 거기서 짐을 절반 가량 덜어냈다. 그래도 발치에 침낭 백을 깔아 둔 상태에서 여행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 셋은 무릎을 오그린 채로 장거리 여행을 시작했다. 아마 태어나 이런 자동차 여행은 처음이리라.

 

보기에 따라 궁상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이런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주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큰 차를 빌리면, 임대 비용으로도 많은 돈이 깨진다. 더구나 주행거리가 상당할 수밖에 없는 대륙 횡단 여행 특성상 기름값을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또 하나, 아들 셋으로서는 젊은 날에 이런 여행 안 해보면 평생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젊었을 때 고생은 말 그대로 사서도 한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어차피 달리 대안이 없는 궁상 여행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아무리 절약해서 여행한다 해도 45일 기준으로 3000달러는 들 것 같다. 1인당 기준으로 하면 700~800달러 수준이다. 한국-미국 왕복 비행기표 값은 제외한 액수인데, 어쨌든 본질적으로 궁상을 떨어도 해외 여행은 해외 여행이다.

 

한국의 많은 대학생들이 등록금에 짓눌려 있는 요즈음, 해외 여행을 한다는 게 사치일 수도 있다. 이런 배경에서 대학 3학년인 아들과 그 친구 둘을 여행으로 유도한 사람은 결국 내 자신이기 때문에 도의적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아들 셋을 불러 놓고 얘기했다.

 

"이번 여행은 다른 테마가 있을 수 없다. 초저가 북미 대륙 횡단여행이 우리의 여행 주제다. 자는 것, 먹는 것 어렵고 힘들더라도 참아줘라. 그래도 너희들이 노력하면 뭔가 얻는 게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카페 cafe.daum.net/talkus에도 싣습니다


태그:#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아들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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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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