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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오늘 호텔은 괜찮을 거예요."

가이드가 사과를 했다. 전날 묵은 숙소가 너무나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방에선 알 수 없는 냄새가 나고, 시트와 수건은 공업용수로 빨았나 싶게 뻣뻣했다. 옆 방 화장실에는 바퀴벌레가 죽어있기도 했다.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호화판 여행을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니까. 중국 서북부 지역은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대도시에 비해 낮기 때문에, 여러 가지 편의 시설 역시 낙후된 것을 감안해야 했다. 하지만, 전기가 3분마다 끊어지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서녕에서 묵은 호텔은 값에 비해 너무나 형편없었다. 사진은 서녕의 밤풍경.
 서녕에서 묵은 호텔은 값에 비해 너무나 형편없었다. 사진은 서녕의 밤풍경.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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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도 안 통하는 관리인에게 전등을 가리키고 양 팔로 엑스 자를 그려 대며 두꺼비집을 올려달라고 신호했다. 하지만 겨우 방으로 돌아가 칫솔에 치약 좀 짜나 싶으면 다시 불이 나갔다. 3분마다 똑같은 짓을 열댓번 반복하며 겨우 세수를 할 수 있었다. 황당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어차피 화를 내도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저 너무나 중국다운 상황이라는 생각을 하며 샤워도 포기한 채 애써 잠을 청했다.

가이드의 해명은 다음과 같았다. 원래는 한 달 전에 좋은 호텔을 예약해 놓았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에 그 호텔에서 취소 통보가 왔단다. 왜? 중국의 정부 관료들이 써야 하기 때문이란다. 7월 중순은 중국도 여행을 많이 하는 성수기다. 정부 관료들이 우리가 있는 서북부 지방을 여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한 달 전에 한 예약이 취소되는 게 말이 돼? 그럼 예약 제도가 존재하는 의미가 있어?!

비슷한 일이 사흘 후에도 반복되었다. 만리장성의 서쪽 관문인 자위관에서였다. 자위관은 본래 아침 9시면 문을 여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10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역시 정부 관료들 때문이었다. 정부 관료들이 시설을 관람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나갈 때까지 일반 관람객들은 한 시간이나 뙤약볕 아래 기다려야 했던 것. 대한민국은 돈이면 다 되는 나라인데, 철저한 관치 국가인 중국에서는 돈 갖고도 안 되는 일 천지였다. 퍽 우스웠다.

티베트인은 평생 세 번 목욕한다?

티베트의 대찰 타얼사 입구에서
 티베트의 대찰 타얼사 입구에서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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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 못해 찜찜한 머리에 중국풍의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썼다(관광지에서 마주친 많은 중국인들이 비슷하게 생긴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하긴, 오늘 우리가 갈 곳이 티베트의 대찰 타얼사(塔爾寺, Taersi)임을 감안하면 하루 이틀 씻지 못한 걸로 투정할 일은 아니다. 티베트인들은 워낙에 목욕을 안(혹은 못) 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수도인 라싸도 그렇지만 티베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이곳 서녕 지역 역시 고산지대다. 기후는 건조하고 강수량이 적어 물이 많이 부족하다. 게다가 하늘과 가까워 자외선이 강한데다가 찬바람이 많이 분다. 우리네가 그러는 것처럼 매일같이 샤워를 해 댔다가는 피부가 견뎌내지 못한다.

그래서 중국에는 티베트인들이 평생 세 번만 목욕한다는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있다. 태어날 때, 결혼할 때, 죽었을 때 목욕을 한다는 것이다.

승복을 입고 있는 승려(라마)의 모습. 티베트 불교의 승려들은 일반인과 특별히 거리를 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간다.
 승복을 입고 있는 승려(라마)의 모습. 티베트 불교의 승려들은 일반인과 특별히 거리를 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간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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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티베트인들을 두고 지구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삶을 사는 민족이라고 한다. 티베트 불교(라마교)의 승려들은 뽐내거나 잰체하지 않는다. 승려라고 해서 유난을 떨거나 엄숙하게 굴지 않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속세와 종교의 격차가 크다. 하지만 삶과 신앙이 따로 있지 않는 그들에게는, 승복을 입고 입지 않음에 큰 의미가 없다.

타얼사의 입구에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통이 있어서 다들 이것을 손바닥으로 한 번씩 쓸어보고 지나간다. 티베트의 절에서는 대부분 찾아볼 수 있는 기구다. '마니통(혹은 마니차, 전경통)'이라고 부른다. 원통 표면에는 불경이 새겨져 있어서, 이를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불경을 읽는 것과 같다. 문맹이라 경전을 직접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마음으로 그것을 읽으며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마니통을 한 번 돌릴 때마다 불경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
 마니통을 한 번 돌릴 때마다 불경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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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들이 절 입구의 마니통을 쓸어 돌리며 지나간다.
 관람객들이 절 입구의 마니통을 쓸어 돌리며 지나간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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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큰 절인데다 성수기라 사람들이 어지간히 많다. 어디나 관광지가 되면 마찬가지지만, 사찰 특유의 단정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고 꽤 상업화됐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승복을 입은 라마승이 입구에 앉아 관람권을 확인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젊은 승려가 신도와 시시덕거린다. 태국이나 캄보디아를 여행할 때는 아무리 관광지라고 해도 짧은 옷을 입고는 입장할 수 없다든지 하는 최소한의 제한이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그런 것도 없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그다지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번잡하고 규칙 없는 것은 사람이 많은 중국 특유의 분위기이기도 하니까. 종교인이라고 해서 그림자도 못 밟을 만큼 무게를 잡아야 한다는 것도 속세를 사는 비종교인의 편견에 불과한 게 아닐까. 오르막을 오를 때면 숨이 차는 고원의 절에서, 멋모르는 외국인은 한없이 관대하다.

종교인도 비종교인도, 티베트인들의 종교심은 한결같다. 검은 얼굴에 사랑스럽게 붉은 볼을 하고서는 오체투지로 절을 한다. 붉은 장삼을 입고 '옴마니밧메훔'을 외어야만 신앙이 깊은 게 아니다. 경전을 못 읽어 마니통만 연신 돌려댈지라도 그 마음이 명징한 자만이 부처가 되리라.

일곱 살에 출가하는 티베트의 아이들

승려도 불이 나면 소화기를 들어야죠
 승려도 불이 나면 소화기를 들어야죠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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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에서는 아이들이 7세가 되면 절에 보내 승려가 되게 하는 풍습이 있다. 일곱 살에 라마가 된 아이들은 평생을 절에서 보낸다. 이렇게 이른 나이에 출가를 시키게 된 데는 꽤 슬픈 사연이 있다.

1950년대 이전 티베트의 라싸에서 95% 이상의 티베트인들은 한족(중국의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의 노예로 고된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승려가 되면 노역을 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티베트인들은 아주아주 어린 자식들을 절에 보내기 시작했다. 여섯 살, 다섯 살, 심지어는 두세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절에 보내졌다. 그러다보니 일곱 살이라는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해진 것이다. 고려 시대, 원나라가 처녀들을 마구잡이로 뽑아 데려가는 바람에 조혼 풍습이 생긴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렇게 티베트를 말하다보면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들로 구성된다. 흔히 조선족이라고 하는 한국인 동포도 이 소수민족 중에 해당된다.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에는 큰 별 하나와 작은 별 네 개가 그려져 있다. 여기서 큰 별이 한족이고 작은 별 넷이 이 55개의 소수민족들을 상징한다고 한다(큰 별이 공산당이고 네 개의 작은 별이 각각 노동자, 농민, 소자본가, 민족 자본가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중국인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런 말도 있고 이런 말도 있다는 지극히 중국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분리독립이 왜 필요해, '평화 해방' 시켜줬는데"

관광지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소수민족 아가씨
 관광지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소수민족 아가씨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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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민족들이 어우러져 살다보니 필연적으로 갈등이 발생하는데, 그 중 티베트 장족과 중국 정부 간의 마찰이 특히 첨예하다. 티베트인들은 한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치 국가를 수립하고 싶어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 티베트를 독립시킬 경우 다른 소수민족들 역시 독립을 요구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티베트 자치구 지역에 지하자원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거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지역을 자치구로 지정하고, 소수민족의 사회 통합을 위해서 대학 입학시 가산점을 주는 등 여러 가지 회유 정책을 쓰고 있다. 해당 지역에 철도를 놓는 등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한족 중심의 중국 사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핍박은 여전하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소수민족 문제로 인한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중국에 있었던 7월 18일 티베트의 라싸에서는 티베트 해방 60주년을 기념하는 경축 행사가 정부 차원에서 크게 열렸다. 중국 입장에서는 해방이라고 하지만 티베트 입장에서는 강점이었다. 직접 라싸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많은 중국 언론들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 중국 정부가 티베트 지역의 개발을 위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을 계획이라는 내용도 매우 강조되었다.

전반적으로 논조가 보수적으로 느껴지던 한 신문은 '평화 해방(Peaceful Liberation)'이라는 단어를 거듭 사용했다. 화보를 통해 즐겁고 성대한 행사의 분위기를 강조했다. 티베트는 독립된 것이나 다름 없으며, 해방 이후 그들의 생활이 더 윤택해졌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친정부 성격의 젊은이들이 달라이 라마의 분리독립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기는 하지만 일제로부터 독립한 역사적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라 그런지, 티배트인들의 독립에 대한 염원이 그렇게 남 얘기 같지만은 않았다.

다음날 장액(張掖, Zhangye)에서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공연에서 또다른 소수민족인 위구족과 몽골족을 만났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관광 식당에서는 위구족의 전통 방식대로 환영을 받고 그들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목에 환영을 의미하는 흰 천 '하다'를 걸어주고 노래를 부르며 독한 술을 권했다. 핍박과 분쟁으로 얼룩진 소수민족의 풍토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대개 휴가철을 맞아 즐거운 얼굴을 한 한족이었다. 어쩐지, 아이러니한 기분이 되었다.

관광지의 식당에 들어서며 위구족 전통 방식대로 환영을 받았다.
 관광지의 식당에 들어서며 위구족 전통 방식대로 환영을 받았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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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박솔희 기자는 2011년 7월 11일부터 21일까지 재학 중인 숙명여대와 중국 난주대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중국 서북부의 실크로드를 여행했습니다.



태그:#타얼사, #중국여행, #실크로드, #티벳, #중국소수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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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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