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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서 69년까지 임진강과 미군기지 주변에 고엽제를 무단 방류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필 스튜어트(오른쪽)가 26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 캠프 피터슨 옛 미군기지 터를 찾아 당시 기억을 되살려 고엽제 처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1968년에서 69년까지 임진강과 미군기지 주변에 고엽제를 무단 방류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필 스튜어트(오른쪽)가 26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 캠프 피터슨 옛 미군기지 터를 찾아 당시 기억을 되살려 고엽제 처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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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작은 산 아래 언덕이 있었고 그 아래는 평평한 땅이었죠. 지금은 풀이 나있지만 당시엔 물탱크가 2개 있었어요. 그 근처 모터풀(군용자동차 주차장)에 고엽제를 보관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변했네요."

40년 만에 근무지를 다시 찾은 노병사에게 그곳은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고엽제 살포한 곳을 정확히 말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기억을 더듬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1968년부터 69년까지 주한미군 공병대대 장교로 근무했던 필 스튜어트(63)씨가 26일 오전 파주를 방문했다. 예전에 자신이 근무했던 부대(캠프 피터슨)는 마트로 변해 흔적이 없어졌고, 풀 하나 없던 민둥산은 숲이 울창하게 우거졌다. 할 수 없이 그는 지난 2008년 구글 어스에서 찾아냈다는 부대 사진을 노트북 컴퓨터에 띄워 보여주며 설명했다.

"알았으면 살포 지시 내리지 않았을 텐데..."

필 스튜어트가 26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마산리 캠프 이던알렌 옛 미군기지 터를 찾아가고 있다.
 필 스튜어트가 26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마산리 캠프 이던알렌 옛 미군기지 터를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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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날(25일)  국회에서 열린 증언대회에 이어 이날도 고엽제를 뿌린 일을 후회한다고 거듭 말했다.

"부대 인근 하천과 도로 등을 가리지 않고 고엽제를 뿌렸습니다. 한 달에 최소 1번 이상, 적을 땐 1-2갤런에서 많을 땐 10-15갤런을 뿌렸습니다. 모자라면 인근 부대에서 공급을 받아오기도 했죠. 만약에 그게 그렇게 독한 화학물질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부하 장병들에게 살포지시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번째 근무지였던 캠프 이선 알렌에 온 스트어트씨는 훨씬 많은 것을 기억해냈다. 당시 보았던 산의 모양이 비슷하다고 말한 그는 '밤고지'라는 마을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고 당시 밤고지교라는 다리를 만들었던 사실을 기억해내 이곳 주민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캠프 이선 알렌 역시 현재는 없어지고 농경지로 변했다. 하지만 당시 이곳에서 고엽제를 뿌린 기억 만큼은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부대 담장 주변 여기저기에 다 뿌렸어요. 풀이 많이 나있었거든요. 펌프가 달린 트레일러같은 기계로 뿌리고 직접 손으로 뿌리기도 했어요. 고엽제를 뿌릴 때 신은 장화 밑창이 껌처럼 늘어붙어버렸죠. 무언가 강력한 성분이 든 화학물질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그런데도, 미군 당국은 그게 목욕, 양치는 물론 마실 수도 있다고 했죠. 절대 안전하다고 했습니다. 우리와 한국민들에게 40년 넘게 거짓말을 한 겁니다."

마을 주민 "내 아들은 소아마비를 앓다 죽었다"

필 스튜어트를 안내하던 지역 주민 김남영씨가 주민들중에 몸이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며, 자신의 아들도 소아마비로 18세때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필 스튜어트를 안내하던 지역 주민 김남영씨가 주민들중에 몸이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며, 자신의 아들도 소아마비로 18세때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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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평생 이 마을에 살아온 김남영(77)씨는 "소아마비를 앓던 내 큰아들이 18세에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김씨는 "당시에는 고엽제가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며 "이 동네 다른 집에도 그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고 증언했다.

스튜어트씨는 "그의 아들이 이곳에서 살았고 부친이 기지 안에서 일한 적도 있다는 것으로 봐 고엽제 다이옥신 성분 때문에 병을 앓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스튜어트씨는 이어 "미군 당국은 DMZ 안에서만 고엽제를 살포했다고 주장하지만, 여기는 DMZ가 아니지 않느냐"며 "당국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거짓말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 고엽제 피해를 입은 한국 근무 예비역 미군병사들의 진술서 300장을 갖고 있다며, 본인들의 동의를 얻으면 미국과 한국의 언론에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필 스튜어트(가운데)와 스티브 하우스가 26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변을 찾아 고엽제를 뿌린 지역을 가리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필 스튜어트(가운데)와 스티브 하우스가 26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변을 찾아 고엽제를 뿌린 지역을 가리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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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캠프 캐럴, 하우스씨만 들어올 수 있다"

한편 27일 오전으로 예정된 스티브 하우스씨의 캠프 캐럴 방문에 대해, 미군 측이 "하우스씨만 부대 내에 들어올 수 있다"고 밝혀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주한미군 고엽제 등 환경범죄 진상규명과 원상회복 촉구 국민대책회의'(고엽제대책회의)는 "(고엽제를 불법 매립했다는) 증언자가 왔는데 정확히 확인하는 절차를 국민들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것은 진상을 은폐하겠다는 얘기"라며 "전문가, 국회의원, 시민단체 등이 함께 현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엽제대책회의는 27일 오전 10시 경북 왜관 캠프 캐럴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부대 안으로 들어가 고엽제 드럼통 파묻은 곳을 하우스씨가 직접 지목하게 할 계획이다.


태그:#고엽제, #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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