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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과거에 어두운 지하실에서나 돌리던 "빨간책"의 느낌이지만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 더 절실하게 와 닿는 제목과 내용을 지니고 있다.
 책표지. 과거에 어두운 지하실에서나 돌리던 "빨간책"의 느낌이지만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 더 절실하게 와 닿는 제목과 내용을 지니고 있다.
ⓒ 돌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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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에 분노하는가. 반값등록금을 외쳐 다수의 젊은 표를 얻었던 정권이 "그런 말 한 적 없다"라고 하는데 열이 받고, 노동자의 인권은 쥐뿔도 생각하지 않고, 이를 옹호하는 세력의 견제와 압박에만 열을 올리는 데에 분노한다.

평화적 교류를 하고 있던 한반도의 구도를 완전히 되돌려 대결과 경계의 땅으로 바꾸어 놓은 데에 분노한다. 대다수 국민의 혜택을 거부한 채 사대강 사업에만 열중하는 '녹색성장'의 구호에 넌더리가 난다. 정의를 강조하면서 사회적 규범을 깨고 개인의 이익만 추구한 이들을 지도자로 발탁하는 정부의 태도에 분노한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소수자의 인권과 서민의 이익을 위한 단체나 사회개혁을 적극적으로 외치는 정당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고, 혈혈단신 피켓을 들고 뙤약볕 아래 다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지도 못하다.

반년이 넘게 여섯 평 고공 위에서 동지의 생계를호소하는 누나(?)에게 기운을 주는 버스에도 오르고 있지 못하고 있다. 기껏 트위터에 오른 호소력 짙은 문장을 얼마 안 되는 팔로워들에게 리트윗하는 짓이나 하며 자위하고 있을 뿐이다.

왜 분노해야 하나. 독일 출생의 93세 레지스탕스 스테판에셀은 "나는 여러분 모두가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고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여 이어질 것이며 이 강물은 더 큰 정의와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라고 외친다.

노인의 일갈에 나 같은 이들의 '분노 콤플렉스'의 수치는 최고에 이른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10월 초판 8000부가 출간되어 석 달 새 무려 60만 권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YES24에서 <문재인의 운명>과 <정의란 무엇인가>에 뒤를 이은 판매실적을 보이고 있다.(22일 기준) 도대체 제목부터 "빨간" 이 책의 매력은 무엇일까.

<분노하라>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책은 아주 가볍다. 책값도 마찬가지다. 서가에서 쉽게 꺼내어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도 적당한 크기를 지닌다. 이런 가벼움만이 판매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좀 아쉽다. 그의 과거와 오늘까지의 왕성한 활동에서 나오는 존경심과 호소력 짙은 경륜의 목소리 탓이 큰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이 외쳤던 "나서서 싸우기 어려우면 벽을 보고 욕이라도 해라"라는 말이 떠올랐다. 삶도 닮은 점이 있다. 스테판 에셀. 1917년 독일에서 태어나 1924년 파리로 부모를 따라 이주한다. 예술가들과 어울리는 부모 밑에서 자란 파리의 소년은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한다.

1941년 드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하여 투사가 된다.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극적으로 살아남고 이감된다. 그곳에서 탈출에 성공하고 이후의 삶을 "빚진 삶을 걸고 (싸움에) 참여해야 한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역사의 중심에 서는 것은 '세계인권선언' 위원회에 참여한 일이다. 인권을 가치로 세상의 자유와 평화를 선언하는 일에 몸담았던 일. 그리고 평생을 인권소외국의 평화와 자국 내의 진보를 위해 바쳐왔다.

책의 내용 중에 가장 와 닿는 말은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라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하지 못하는 역사엔 민중의 정치적 무관심이 있었다. 지은이는 "내가 이런다고 뭘 바뀌겠어?"라는 태도는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기본 요소를 잃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판단할 수 있는 도전과제를 내놓는다.

이는 올바르게 교육을 받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동의할만한 명제다. 첫째는 극심한 빈부격차의 해소. 둘째는 지구의 인권 문제이다. 지은이는 세계인권선언의 권리를 떠올리라고말한다. "내 나라안이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독재자의 횡포에 맞서는 것은 그 나라 국민뿐 아니라 세계인이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선언이 그저 선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그 인성의 자유로운 개발에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충족"을 지니기 위한 지원을 손을 잡고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팔레스타인의 갈등 상황에 분노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은 평화적이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저자는 단호하게 "폭력적인 희망이란 없다"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외친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오늘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 책의 메시지가 묵직하기만 하다.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돌베개(2011)


태그:#분노하라, #스테판에셀, #레지스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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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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