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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집들이가 있었다. 경남 의령으로 귀농한 몇몇 분을 집으로 모셨다. 나처럼 부산귀농학교를 거쳐서 귀농한 사람도 있고 이곳 의령으로 귀농한 후 알게 된 분도 몇 분 계신다. 농촌으로 귀농한 지 7년 정도 되는 분부터 이제 겨우 두 달 정도 되는 사람까지 다양한 이력을 가진 분들이다. 우리 가족이 귀농한 지 4년 넘었으니 어제 모인 사람들 중에는 제법 오래된 축에 드는 것 같다.

집들이는 우리 가족이 귀농한 후 4년 정도 동안 남의 집을 빌려 살다가 몇 달 전에야 겨우 집을 마련해서 이사오게 된 데 따른 덕담의 자리라고도 하겠다. 저녁식사를 겸한 술자리가 파하고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후 아내와 나는 빈그릇을 치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오늘 집들이는 참 조용하게 끝났지?"
"그러게. 지난번 집들이 때는 아주 요란했는데 말이야."
"그때는 집안이 들썩들썩했었지?"
"어디 집안만 들썩했나. 온 마을이 시끄러웠지. 그것도 따블로 말이야. 하하하."

우리 부부는 설거지 거리를 치우다 말고 지난번 첫 집들이 때 풍경을 이야기하며 한참 동안 웃었다. 어제의 집들이와 지난번의 집들이가 많이 비교 되는 데다가 지난번에는 동네를 두 번이나 요란하게 했던 일이 있어 더 기억에 많이 남기 때문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살며시 웃음이 묻어 나온다. 두 달 전 첫 번째 집들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한 번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볼까 한다.

풍물패가 집앞에서 지신밟기 시작하는 장면
▲ 지신밟기 풍물패가 집앞에서 지신밟기 시작하는 장면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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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회 집들이 하는날

"아빠, 아빠도 청년회예요?"

우리집 첫번째 집들이날, 아침에 중학생인 첫째딸이 진지하게 묻는다.

"그럼, 당근 청년회 회원이지."
"에이~ 아빠가 무슨 청년이에요? 중년이지. 사십대 후반이면 중년 중에서도 왕중년이지."

그 말에 내가 발끈했다.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무-었-이라꼬-. 이놈아, 아빠는 그래도 아직 사십대 중반에 가깝지 후반까지는 아니지."

첫째딸은 염장을 질러놓고는 학교로 가버리고 나는 속으로만 나머지 대답을 해야 했다.

"짜샤-. 그래도 마음은 한창 청년이야."

딸이 등교한 후 다시금 생각하니 역시 청년회라는 명칭이 좀 심하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연설명을 좀 하자면, 이날 집들이 오기로 한 사람들은 우리 지역 청년회 회원들이다. 우리 가족이 사는 경남 의령군 C면엔 13개의 마을이 있고 이 마을 청년들의 모임이 C청년회다.

청년,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단어인가. 도시 기준으로 하면야 20~30대 젊고 팔팔한 나이 대의 모임이 청년회이겠지만, 농촌에서는 구경도 하기 힘든 연령대다. 지금 우리지역의 청년회 회원들은 대부분 40대와 50대의 나이들인데도 단체 이름은 여전히 '청년회'라 한다. 30대의 사람들이 이제 40대가 되고 50대가 되었지만, 새로운 청년들이 들어오질 않으니 흰머리의 중년들은 '청년 아닌 청년'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재작년 연말 총회였나 보다. 그때 청년회 주요 안건으로 회원자격조건 변경안이 제출됐다. 기존 회칙에는 청년회 회원의 자격이 49세까지로 되어 있었다. 문제는 새해가 되면 50세가 되는 회원이 다섯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들 다섯 명은 자동으로 회원자격을 잃게 되는 것이다.

청년회에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전체 청년회 회원이 20명 정도뿐인데 전력의 4분의 1 이 줄어들게 된 거다. 회장단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총회에 수정안을 기습 상정하였다. 쿠-쿵.

'청년회 회원의 자격을 55세까지로 한다.'

참석한 '중년의 청년'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동의의 한 표를 행사했다. 조직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 이 거대한 대의 명제 앞에 이의를 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자못 비장한 기운이 흘렀다. 땅.땅.땅. 통과-

그후로 우리 지역은 공식적으로 55세까지가 청년이다. 여기에 토 달지 말지어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알리 없는 무지한 큰딸이 내 가슴에 염장을 지르고 휘리릭 가버린 거다.

풍물패가 집에 들어오는 장면
▲ 지신밟기 풍물패가 집에 들어오는 장면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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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애애 하게 집들이는 시작되고

그 청년회의 '중년'들이 집들이를 왔다. 이사하기 전부터 회장과 총무형은 내게 몇 번 다짐을 받고자 했다.

"저번에 니가 살던 집은 니 집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 치고. 이번에는 니도 집을 사서 들어가는 거니까. 집들이를 꼭해야 된데이."

고마운 일이다. 지역의 비슷한 또래들이 집들이 와주고 지신밟기해 준다는 건 '인정'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박힌 돌'들의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일인지 모른다. 새로 '들어온 돌'이 딴 데로 굴러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자리잡았음을 확인해 주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집들이 당일날. 20여 명의 청년회 회원들이 들이닥쳤다. 손에 손에 두루마리 화장지 세트나 세제를 들고 인사를 한다. 나름대로 정성들여 차린 밥상에 앉아 한 잔 술을 걸치고 덕담들을 건넨다.

회장은 자기 하우스에서 키운 토마토를, 총무는 상차림값이라고 봉투를 내민다. 하루 종일 음식하느라 주방 앞에 서 있었을 아내의 피로가 풀리는 순간이다. 촌지(?)를 한 번 사양하던 아내는 못이기는 척 재빠른 손놀림으로 봉투를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이때까지는 좋았다. 딱 이때까지는 말이다.

헛간 창고 앞에서
▲ 지신밟기 헛간 창고 앞에서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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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작된 지신밟기

술들을 한잔씩 거나하게 먹은 회원들이 준비한 풍물을 둘러매기 시작했다. 회장을 필두로 꽹과리와 징이 앞서고 장구와 북이 뒤를 따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회장을 비롯해서 모인 20여 명의 회원들 중 아무도 지신밟기 가삿말을 제대로 읊을 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오호라. 이것이 오늘날 농촌의 현주소다. 농촌으로 새로 들어와 정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생긴 문제다. 최근 십여 년 동안 집들이 지신밟기를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젊은 사람들 중에 지신밟기 구절들을 기억해 내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판은 벌렸는데 이 일을 우짤꼬~

우리집 입구에서 잠시 소란이 발생했다. '누군가는 할 줄 아는 사람이 있겠지'하고 별 생각없이 시작한 지신밟기에 난관이 생긴 거다.

당황한 회장은 총무에게 미루고, 총무는 그 중 나이 많은 회원에게 부탁하고, 또 그 회원은 난감해서 쩔쩔맨다. 지역의 노인회 어른들이야 지신밟기에 능숙하지만 청년회 자존심에 노인회 분을 초청할 수는 없다.

우리집 앞에서 자중지란을 일으키던 청년회 회원들은 머리를 맞댄 후 대안을 제시했다. 일단 시작해 보면 어찌어찌 끼워 맞춰지지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기대였다. 어느 한 명이 가사구절을 다 못 외워도 20명이 한 마디씩 보태면 몇 소절은 이어지지 않겠냐는 거다. '집단지성'의 청년회 형 진화를 보는 순간이다.

안방 지신밟기 장면
▲ 집들이 안방 지신밟기 장면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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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쟁이 동네형님이 나섰지만...

회원들중 그래도 풍수께나 읊조리는 장형이 나섰다.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호기롭게 앞서보았지만 불행히도 가사가 기억나지 않으니 떠듬떠듬 운율을 넣어가던 장형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꽹과리와 북소리는 요란하게 울려퍼져 온마을 사람들을 다 깨우지만 선소리를 매기는 장형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없다. 장중한 코미디가 진지하게 펼쳐졌다.

             ~ 캥지캥지 캥지게갱~.    ... 어 어어 .  재호네 잘 살고 ~
               ...어 어어 .  부자 되면 좋고 ~
                어어어 . 그라고 또 뭐 빠진거 없나. 

              ~ 캥지캥지 캥지게갱~  아 . 맞다 맞다.  딸내미들 좋은 대학가고 ~
                아이다 아이다. 대학이 문제가 아이다. 자기 가고싶은 학과로 가고 ~

              ~ 캥지캥지 캥지게갱~
                 부부끼리 싸우지 말고 , 행복하고 ...
                  그라고 ....    아이고 힘들다.
                 그냥 ~ 잘 살거래이 ~~
              ~ 캥지캥지 캥지게갱~

"한 번 더 했뿌자!"

우여곡절 끝에 무난히(?) 지신밟기를 마친 회원들은 다시 술상 앞에 앉아 조금전의 어정쩡한 축원행사를 안주삼아 술잔들을 돌렸다. 그러다가 한 회원이 말했다.

"야. 이거는 영 아인기라. 우리가 요새 아무리 지신밟기를 안 해봤다 해도 이거는 아이다. 누가 지금 00한테 연락 해봐라. 00라면 지신밟기 제대로 기억할끼다. 택시비 준다 하고 빨리 오라해라. 정식으로 다시하자."

이 회원의 울분에 찬 제안에 술에 조금 취한 누군가가 동의를 했고 왕창 취한 또 누군가는 제청한 것 같다. 그렇게 일은 다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조금 덜 취한 누군가가 전화했고 전화 받은 그 00가 택시타고 달려오고 해서 세상에 유래가 없는 '어게인 지신밟기'가 시작되었다.

덕분에 우리집은 두번이나 땅을 꼭꼭 다지게 되었고 복채상에 복채값이 이중으로 지출되었으며 동네 주민들은 아닌 밤중에 두 번의 쇼를 구경하게 되었다.

       " ~ 캥지캥지 캥지게갱~
              지신지신 지신아 주산지신을 울리자
              천지현황 생긴후에 일월성진이 밝았다

              산천이 개탁하고 만물이 번성할제
              풍년을 기원하며 주산지신께 발원이요

               부귀영화 안과태평 점지하여 주옵시고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
            ~ 캥지캥지 캥지게갱~ "

세상사람들한테 묻고 싶다.

"하룻밤에 집들이 지신밟기, 따블로 받아본 적 있수?"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귀농, #집들이, #지신밟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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