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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경원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는 '성전'"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성전'에 비유하며 당의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했습니다. 주민투표가 복지 포퓰리즘을 막기 위한 '거룩한 사명을 띤 전쟁'이라는 겁니다.
ⓒ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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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성전(聖戰)'

 

지난 18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중인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두고 당에서 적극 지지·지원해야 된다는 취지에서 나경원 최고위원이 한 말이다. 그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포퓰리즘 대 반포퓰리즘의 문제이며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은 오세훈 시장 혼자 싸우도록 놔두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펴면서 '성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소식을 듣고 초등학교 학부모로서 어이없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성스러운 전쟁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원론적인 담론은 그만두고서라도 아이들 점심 한 그릇을 두고 전쟁 운운하는 처사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이나 오세훈 서울 시장, 나경원 최고위원 같은 분들이 성스러운 전쟁을 수행하는 전사라면 그 반대편,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마녀라도 된다는 말인가?

 

중세 암흑기 이교도나 종교적 신념을 의심받는 사람들을 마녀로 낙인찍어 불태워 죽였다는 십자군 전쟁. 성전의 어원이 이토록 추악한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나경원 최고위원은 모르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상급식 반대투표'가 성전이면, 찬성자들은 마녀?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 투표를 두고 논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가 제출한 서명자 80만1263명 중 62.8%인 51만2250건이 유효한 서명으로 주민투표를 발의할 수 있는 숫적 요건을 충족하였다고 하지만 민주당 관계자들이 일주일간 서명부를 열람한 결과 드러난 13만4000여 건의 대리서명·명의도용에 대해서는 어떤 해명도 없다.

 

또 서울시 내부검증 결과 32.3%에 해당하는 26만7000여 건의 서명부를 무효처리하고도 주민투표 청구요건 41만 8005명을 넘겼다며 주민투표 시행에 문제없다는 태도를 이해하기 힘들다. 대리서명·명의도용은 누가 뭐래도 범죄행위이다. 그것도 한두 명의 실수가 아닌 뭉텅이 대리서명, 명의도용이 드러났고 26만7000여 건이 무효처리되었다면 서명받은 단체의 서명받는 행위 전체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또 지난 2월 주민투표 청구대상을 '전면 무상급식 반대를 위한 주민투표'로 제출했다가 이후 '단계적 무상급식과 전면적 무상급식 정책 중 하나를 택하는 주민투표'로 바뀐 것에 대해서도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주민투표 청구서명에 수임인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주민투표법 조례 위반으로 하남시 판례도 무효로 규정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서울시 공무원과 서울시장이 위촉한 인사들로 구성된 '주민투표청구심의회'는 이 모든 의혹과 문제 제기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무상급식반대 주민투표 청구가 청구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심의·의결하였다.

 

이제 법적인 공방은 남아 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청구요지를 공표하고 7일 이내 서울시 선관위와 투표 날짜를 협의 공고하는 일만 남았다. 8월 22~26일 중 하루가 투표일이 된다는 이종현 서울시 대변인의 말에 따른다면 불과 한달 남짓 후에는 초등학생 전면적인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의 투표가 이뤄지는 것이 기정사실이 된 듯하다.

 

초등학생 둘을 둔 학부모로서, 서울시 유권자로서, 한달 후면 투표용지를 받게 될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서울시 유권자 836만 명은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점심을 줘도 되느냐, 안되느냐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성스러운 전쟁(?)에 나서야 한다.

 

'구국의 반포풀리즘 행보'는 노이즈 마케팅

 

 

오세훈 서울시장은 내내 무상급식 논란 그 중심에 있었다. 서울시 교육청과 끝없는 공방을 주고 받을 때도, 서울시 의회 출석 거부라는 초강수를 둘 때도, "전면 무상급식 때문에…"라는 자극적인 광고문구 아래 아이를 발가벗겨 식판을 든 모습을 신문 1면 하단 광고로 내보낼 때도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며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과의 싸움에서는 절대 물러설 수도, 타협할 수도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망국적 유령인 복지포퓰리즘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말은 민선 5기 1주년 기자회견이 있었던 7월 13일에 나왔다.

 

복지 포퓰리즘, 이 지긋지긋한 말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차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입에서 걸핏하면 반복되고 있다. 노인들도 지하철 무임 승차를 줄여야 한다고 하면서 국무총리는 복지 포퓰리즘을 이야기했다. 최근 들어 빨갱이보다 더 흔하게 쓰이는 '포퓰리즘'이라는 용어. 그런데 따지고 보면 포퓰리즘 논쟁은 서민들에게는 손 벌리고 징징대지 말라는 노골적인 조롱이었으며, 야당 정치권이나 사회 단체에게는 값싼 공수표 남발해서 표와 인기를 끌어모으는 말라는 비난일 뿐이었다.

 

그런데 '반값 아파트, 반값 등록금 반드시 실현하겠습니다'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뒷배경으로 하여 온갖 사진을 찍어가면서 지방 선거 등을 치른 정당은 한나라당이 아니었던가? 포퓰리즘을 말한다면 이것이 바로 복지 포퓰리즘의 정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이는 무상급식을 지원 받았다. 그러나 6학년인 첫째 아이는 매달 급식비가 통장에서 빠져 나가고 있다. 6학년 아이의 급식비 한달 5만여 원. 적다면 적은 금액이지만 부담이 되는 가정도 있을 수 있다.

 

5, 6학년 전면 무상급식이 시행되면 망국적 포률리즘이 판치게 될거라고 한다면 1~4학년 무상급식이 시행된 올 상반기는 무상급식에 따른 망국의 전조현상이라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 1~4학년 무상급식이 이루어져 좋다는 의견, 5, 6학년도 무상급식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의견이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학부모들 의견이다.  그들에게 망국의 잣대를 들어대는 서울시가 너무 무모해 보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1일 한나라당사 서울시당 운영위원회에 참석해서 무상급식 투표와 관련해 승리하면 총선·대선 국면에서 훨씬 유리한 지형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스로, 제사보다 젯밥에 눈이 멀어 무상급식 문제를 복지 포퓰리즘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무상급식에서 야당과 시민단체, 교육청과 대립각을 세워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고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의도. 그것은 망국적 포퓰리즘에 반하여 나선 구국적 반포퓰리즘의 행보가 아니라 어떻게든 지지 세력을 결집시켜 정치적 입지만 높히려는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일 뿐이다.

 

이 성전에 참전하고 싶지 않다

 

"한나라당 쇄신의 핵심은 등록금 문제"라며 "대학등록금을 최소한 반값으로 했으면 한다"고 하던 황우여 원내대표도 별다른 성과없이 오세훈 주민투표를 적극 지지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했다고 보도를 보면서 새로울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구태여 말한다면 성전을 앞둔 전열정비라고나 할까? 이제 또 한번 복지 포퓰리즘 논쟁이 극심한 갈등을 만들어 낼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투표를 독려하는 숱한 미사여구가 난무할 것이고,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전의 마녀가 되는 수모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민의 혈세 200억이 든다는 주민투표. 성전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가당찮은 투표에 당당히 기권한다. 아이들 밥도 투표를 통해 먹인다는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노이즈 마케팅을 위해 주민투표에 쏟아 부을 200억이 있으면 차라리 무상급식에 보태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사상과 이념을 달리 한다고 화형에 처해지는 마녀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기권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유권자로서 권리를 포기한 건 아니다. 세계 경제 규모 13위라고 자랑하는 나라에서 의무교육기관인 초등학교에서의 무상급식은, 국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당연한 요구라 할 수 있다. 반대보다 더 큰 반대.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내가 기권을 택한 이유다.


태그:#무상급식,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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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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