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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호박. 끓여서 누르면 속이 술술 풀어져 나온다. 국수 가닥처럼...
 국수호박. 끓여서 누르면 속이 술술 풀어져 나온다. 국수 가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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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디 바비디 부. 요정이 주문을 외자 호박이 마차로 변했다. 그 마차는 재투성이 아가씨 신데렐라를 파티에 데려다 주었다. 동화 속 이야기다.

그런데 현실에선 호박이 국수 가닥으로 변했다. 요정의 주문도 없었다. 끓는 물에 넣었다가 손으로 눌러줬을 뿐이다. '국수호박'이 그랬다.

참외보다 훨씬 큰 국수호박을 절반으로 쪼개 씨앗을 제거하고 끓는 물에 넣었다. 15분 정도 삶았을까. 호박을 꺼내 찬물에 식히면서 껍질을 손으로 눌러주니 속살이 술술 풀어져 나온다. 흡사 국수 가닥처럼. 밀가루도, 쌀도 아닌 호박에서 말이다. 호박이 마술을 부린 것만 같다.

국수호박콩물국수. 국수호박에서 뽑은 면발에 콩물을 부어 만들었다.
 국수호박콩물국수. 국수호박에서 뽑은 면발에 콩물을 부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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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호박샐러드. 국수호박에서 뽑아낸 국수에 각종 야채를 얹어 만들었다.
 국수호박샐러드. 국수호박에서 뽑아낸 국수에 각종 야채를 얹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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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온 호박 면발에 콩물을 부으면 콩국수가 된다. 비빔면, 모듬면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야채샐러드와 냉채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아삭아삭 달짝지근 맛이 그만이다.

국수호박은 값이 비싼 편이다. 1㎏에 4000원을 웃돈다. 그만큼 좋다. 섬유질이 풍부해 우리 몸의 노폐물 배출을 돕는다. 변비 해소에 좋다. 다이어트에도 으뜸이다. 비타민과 미네랄, 칼륨도 풍부해 고혈압과 당뇨,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

비타민A도 풍부해 시력 감퇴를 막고 면역력 증강에도 보탬이 된다. 카로티노이드 성분은 우리 몸 안의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부기를 가라앉힌다. 숙면도 돕는다. 피부미용에도 아주 좋다.

장성남씨가 자신의 밭에서 수확을 앞둔 국수호박을 살피고 있다.
 장성남씨가 자신의 밭에서 수확을 앞둔 국수호박을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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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호박을 재배하고 있는 이는 전남 영광군 백수읍에 사는 장성남(47)씨. 충남 공주 출신으로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넘게 농협중앙회에서 일을 했다. 30대 초반에 지점장을 지냈지만 과감히 그만 뒀다.

국수로 변하는 호박 요술이 따로 없네

이후 쇼핑몰을 운영하고 수출·수입을 포함한 유통 일도 했다. 살림도 비교적 여유 있었다. 그러나 부인(김보은·41)의 건강이 갈수록 좋지 않았다. 어릴 적 타고 난 질병에 다른 병까지 겹쳐왔다.

"종합병동이었어요. 약봉지가 방안 한쪽을 차지할 만큼 많았어요.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니 모든 게 무의미하더라구요. 귀농을 결심한 이유입니다.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 모두 반대를 했죠."

작물은 호박을 선택했다. 열매는 말할 것도 없고 뿌리와 줄기, 잎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유용한 작물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은 전라남도를 택했다. 농사짓는데 전남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장씨는 그날부터 틈나는 대로 전남도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마땅한 곳을 찾았다. 영광 정착은 우연이었다. 백수해안도로에 들렀다가 지금 둥지를 틀고 있는 뱀음골을 만났다. 바다와 가까워 해풍이 부는데다 산세가 좋고 토질이 호박재배에 맞춤이었다. 바로 짐을 꾸려 내려왔다. 지난 2009년 3월이었다.

밭에서 자라고 있는 국수호박.
 밭에서 자라고 있는 국수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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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남씨가 수확한 국수호박을 들어보이고 있다.
 장성남씨가 수확한 국수호박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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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음골에 터를 잡은 장씨는 6000㎡에 호박을 심었다. 묵혀있던 산비탈을 빌려 밭으로 일궜다. 날마다 포클레인 굉음을 들으며 밭을 넓혔다.

영광으로 내려온 지 이제 2년 지났을 뿐인데 그의 호박재배 면적은 벌써 15배로 늘었다. 현재 호박재배 면적은 9만㎡. 품종도 국수호박과 꿀단호박, 맷돌호박, 화초호박, 애호박 등 평범한 것에서부터 희귀종까지 모두 280여 종이나 된다. 짧은 시간 '호박 별천지'를 만든 셈이다.

면적만 넓은 게 아니다. 작물을 풀과 함께 키우는 자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부엽토를 만들어 땅에 넣어주고 바닷물과 민물을 섞어 뿌려주기도 한다.

이렇게 하니 미생물이 활발히 움직여 병해충이 줄었다. 어쩌다 병든 넝쿨이 보이면 바로 뽑아 땅속에 묻어 버린다.

나와 내 가족이 먹을 것이란 생각으로 농사를 지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무농약농산물 인증을 붙여줬다. 판로 걱정도 없다. 여기서 생산된 호박 거의 전량이 인터넷을 통해 팔린다. 소비자들이 그의 양심을 믿고 사주며 지금은 탄탄한 신용으로 다져졌다.

장성남씨가 밭에서 호박을 살피고 있다. 그의 밭에는 수십 종의 호박이 심어져 있다.
 장성남씨가 밭에서 호박을 살피고 있다. 그의 밭에는 수십 종의 호박이 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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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줄 모르겠어요. 일이 즐거워요. 저는 농사를 직업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취미라고 생각해요. 돈을 벌려고 하지만 결코 좇지도 않고요. 마음을 비우니 모든 게 재밌어요."

영광땅에 처음 들어와 살면서 마음 고생이 있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장씨는 그때마다 더 열심히 일하고 이웃을 도우며 뿌리를 굳건히 내렸다. 그 사이 부인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건강이 최고죠. 건강해야 즐겁고, 또 일하고 놀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 가족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직접 가꾼 무공해 음식을 먹고 남도의 맑은 공기 마시며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는 장씨. 그는 금명간 호박전문점을 열고, 이 호박을 영광특산품으로 키워나가고 싶다고 했다.

영광 뱀음골에 자리하고 있는 장성남씨의 호박밭. 밭 너머로 그가 사는 마을이 보인다.
 영광 뱀음골에 자리하고 있는 장성남씨의 호박밭. 밭 너머로 그가 사는 마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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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수호박, #호박랜드, #장성남, #뱀음골,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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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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