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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늘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농사도 마찬가지로 성공이라고 기뻐해야할 일이 있는가 하면 실패도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경제에서 농사는 가장 원초적이면서 중요한 생산행위라고 한다. 때문에 성공이라면 문제될 것 없지만 실패에 따라서는 생산의 주체인 농부들에게 그 상처가 적지 않다.

물론 농사의 실패를 어떤 기준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그 원인이 달라지겠지만 수확량만으로 가름할 때 농사에서 실패의 원인은 비교적 단순하다고 본다. 첫째는 때에 맞추어 우량한 씨앗을 심었다고 해도 홍수 가뭄 냉해 등 하늘이 도와주지 않음으로써 당하는 실패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개인의 판단이나 예상을 탓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원인이 불가항력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농부의 무지도 한 원인이 될 것이다. 이는 오랜 경험을 필요로 하는 농업을 단순 생산으로 인식하고 덤볐을 경우에 당하는 실패가 아닌가 한다.

세 번째 원인은 조수로 인한 피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야생 조류는 농부가 심은 콩 종류를 노리고 멧돼지 고라니 등은 고구마와 옥수수 등을 헤치는 바람에 어이 없이 농사를 망치는 경우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농부들에게 가장 큰 실패는 잘 된 농사일지라도 제 가격을 못 받고, 심지어 갈아엎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될 것이라고 본다. 농사가 잘 되면 공급 과잉이라며 제 값을 못 받고, 농사가 안 되는 해는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것을 보면서도 팔 것이 없어 속이 상하니 그 보다 더한 상실감은 없을 것이다.

수해를 입은 수박
▲ 수박 수해를 입은 수박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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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금년에 몇 번의 잔잔한 실패가 있었다. 첫 번째 실패는 하우스에 심은 강낭콩이 늦추위를 당하지 못하고 전멸한 것이다.  늦추위를 예상하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역시 인간의 예지란 한계가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결과였다. 아마 불가항력에 의한 실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일부 꽃과 고구마 밭이 피해를 입은 일도 있었다. 설마 했던 멧돼지에 의한 피해였는데 이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인도 있지만 혹시 있을 피해를 예상했으면서도 울타리를 치는 등 대비하지 못한 실수도 있었다. 

세 번째는 연작으로 인한 피해를 몰랐다가 당항 실패였다. 잘 자라던 가지와 토마토가 열매를 달면서부터 시들해지기에 병인가 싶어 원예과 교사에게 사연을 이야기 했더니, 고추 가지 감자 토마토는 같은 과에 속하는 작물이기 때문에 연작을 피했어야 한다는 답변이었다. 무식이 죄였던 셈이다.

네 번째는 최근에 당한 수박과 참외 농사의 실패이다. 지난해 하우스안에 수박과 참외를 심었는데 수박은 비록 상품성은 없어도 맛이 좋았고, 참외는 여름이 다 가도록 열려 우리를 즐겁게 했다. 무엇보다 몇 번 실패했던 수박과 참외를 기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더 큰 수확이었다. 그래서 금년에는 이른 봄 직접 씨앗의 싹을 틔워 일부는 하우스 안에 심고 일부는 노지에 심었다.

심을 땅에 퇴비를 넉넉히 주고 물빠짐이 좋도록 두둑도 높였다. 풀을 잡기 위해  멀칭도 하고 지난해 보다 간격도 더 두었다. 그리고 숙지원에 갈 때마다 순을 치는 일도 교과서를 따라 열심히 했다. 덕분에 수박과 참외는 예상을 넘어 주렁주렁 열렸다. 토마토와 가지 농사의 실패를 보상받은 것처럼 흐뭇했다. 그러나 막바지 장마가 문제였다. 여러날 이어진 비와 집중호우에 물에 잠겼다 나온 줄기와 잎은 맥을 못추고 잎에 몸을 가렸던 수박과 침외는 벌거숭이 모습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긴 장마끝에 수해를 입은 참외밭
▲ 참외 긴 장마끝에 수해를 입은 참외밭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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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란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일, 교과서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일반적인 매뉴얼만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농사란 사람이 최대한 노력을 해도 하늘의 도움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우리는 인위적인 시장에 의한 실패가 아니었기 때문에 서운하지만 크게 억울할 것은 없다. 어쩌면 실패가 아니라 다시 한 번 하늘이 준 교훈을 되새긴 계기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농업을 천시하는 무지한 정치, 농부들의 생산비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가격이 결정되는 유통구조, 그래서 농산물 가격이 종잡을 수 없는 시장에서의 실패였다면 그 상실감은 몹시 컸을 것이다.

농사를 잘 하려면 천시와 지리를 꿰뚫는 예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늘에 대한 경(敬)과 기후와 토양에 맞는 작물을 선택할지라도 날마다 돌보는 성(誠)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더 나아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한 알의 곡식을 입에 넣을 수 있으며 과일을 맛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지켜야할 법식(法式)이 단단하고 사람이 지켜야할 도(道)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참고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농사가 도박이나 다름없이 된 나라, 농사의 실패가 개인의 책임일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농사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런 나라에서 농부는 하늘에 대한 경(敬)과 땅에 대한 성(誠)을 다하면서 어떤 실패일지라도 쉽게 망각하고 그로 인한 고통에서 빨리 체념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망각과 체념! 대한민국의 현실과 농업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서글픈 덕목! 이 땅의 농부들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갖추어야하는 강요된 덕목! 과연 이 땅의 농부들에게 그런 단어를 잊어도 좋을 날이 올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 등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농사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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