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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옥을 배우고 익히면서 또 현장에서 그 한옥을 직접 지어보는 가운데 난생 처음으로 '금원(禁苑)'이라 일컫던 창덕궁의 후원을 둘러볼 수 있는 행운이 찾아 왔다. 워낙 유명한 건물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바로 우리의 궁궐인데 그동안 생각만 무성하다가 뜻밖에 현지에 가서 직접 보고 만지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지난날 한옥에 대하여 무지몽매했던 시절의 주마간산 식 궁궐탐방에서 벗어나 이제는 제대로 공부 좀 해보자는 생각에서 기대가 컸으나 주어진 시간이 너무 빠듯해 아쉬움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 일원을 관람하면서, 또 일반인에게는 1910년 이후 일제 강점기 때부터 처음으로 공개되었다는 금원 일대를 둘러보면서 얼마나 많은 우리 문화재들이 유린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 속에서 많은 볼거리. 말거리가 많이 있었지만 이 기회를 통해 이곳 금원 주변의 정자와 더불어 현재 우리나라 농촌의 많은 지역에서 경쟁적으로 지어지고 있는 마을정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용어의 문제 

 

우리가 넓은 의미에서 '정자(亭子)'라고 했을 때 비슷한 뜻으로 연상되는 몇 가지 단어들은(좁은 의미의) 원두막, 모정, 누각, 등일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나름대로 그 뜻을 헤아려 본다면 '주거생활을 하면서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건물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의 쉼터가 되면서 유희 등을 즐길 수 있고 조망이 잘 되는 장소에 사방이 탁 트이게 지은 집'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을 나열하다보면 자연스레 각각의 위상이 머릿속에 다른 그림으로 그려진다. 한여름 시골에서 수박과 참외 등을 심어놓은 과수원 한가운데 지어진 '원두막', 이러한 서민용 정자와 기품 있는 양반용(?) 정자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는 모정(茅亭 : 한자말 그대로 지붕에 풀의 일종인 띠를 얹은 정자란 뜻이다.), 그리고 약간은 행정적이면서 군사적인 의미로도 사용될 법한 누각 등 유사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의미를 가진 정자들이 지금도 우리들 실생활에 많이 사용되고 또 새로 지어진다.

 

분명한 용도로 개인이나 다중을 위해 지어지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과거에도 그랬듯이 주된 건물을 위해 조연역할을 하거나 주변의 경관을 북돋아주기 위해, 말하자면 조경의 보조자 노릇으로 지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 전국적으로 마을 입구에 우후죽순처럼 지어지고 있는 '마을 모정'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그 모정이라는 낱말이 지금의 마을 정자에 맞는 말일까? 창덕궁의 금원에 있는 청의정(淸漪亭)은 우리나라 궁궐에서 유일하게 짚으로 지붕을 이은 건물이다. 인조 때 짓고 임금님이 직접 심은 벼로 이엉을 짜서 지붕을 얹었다는 청의정은 인조께서 매우 즐겨 찾던 곳이라 한다. 초익공으로 치장을 한 고급 건물이지만 지붕을 이엉으로 이었기에 모정이라 불러도 아무런 시비소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마을 정자들은 어떠한가? 아마 단 한 채도 짚으로 지붕을 한 '마을모정'은 없을 것이다.

 

2. 다양성의 문제 

 

예전에는 궁궐에 있는 정자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지역이고 똑같은 모양을 한 정자는 없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에서 26번 국도를 타고 육십령을 오르다보면 화양동계곡이 나타나고 이 계곡을 따라 연이어 나타나는 옛 시대의 정자들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다. 그 많은 정자들 중에서 어느 것도 같은 모양은 없다. 비슷한 것도 없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마을 입구의 정자들은 모두가 한결같다. 마치 공장에서 한 판으로 찍어낸 것처럼 크기도 모양도 똑같다. 장정 한 아름이 넘는 큼지막한 둥근 기둥에 정면 두 칸, 덧서까래를 댄 팔작지붕에 소로와 주두를 댄 모습들이 어쩌면 방방곡곡의 마을정자들이 약속을 한 것처럼 그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마을의 규모가 큰 곳도 있고 작은 곳도 있다. 또 마을이 부촌도 빈촌도 있게 마련이다. 지역에 따라 산촌도 있고 농촌도 있다. 옛날의 정자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마을의 앞이나 뒤에서 아니면 계곡에 숨어서 제 나름대로의 독특한 멋을 뿜어내곤 했다. 지금의 우리들 것처럼 똑같은 판박이가 아니고 한결같은 장소가 아닌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개성 있는 모양과 정감 넘치는 모습으로 있어야 할 자리에 꿋꿋이 서서...

 

3. 부재의 문제 

 

청의정의 서까래는 부연도 없고 둥근 서까래도 없다. 오로지 각서까래가 길게 부챗살처럼 지붕에 꽂혀있다. 자를 챙겨가지 못해 정확히 재어 보지는 못했지만 굵기도 가로×세로가 6cm×9c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의 정자에서는 아니 현대 한옥을 통틀어 봐도 각서까래는 없다. 각서까래로 집을 지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안다. 이렇듯 둥근 서까래가 대종을 이루고 그 굵기는 최소가 직경 15cm(5치) 이상이다. 이것을 금액으로 환산해 보자.

 

청의정은 정사각형의 창방 위에 8각형의 도리를 얹은 독특한 구조이다. 말하자면 정사각형의 네모틀 위에 팔각형 지붕을 얹어놓은 형상이다. 한 변에 서까래가 8개 씩이니까 총 64개의 서까래가 얹혀 있다. 위의 청의정 서까래 재적은(材積 : 목재의 양을 재는 단위) 개당 4.5재, 요즘의 마을모정은 18.75재이다. 이것을 재당 가격이 1,500원이라고 가정하고 계산해 보면 청의정 서까래가 6,750원으로 64개를 곱하면 총 432,000원이고 요즘의 둥근 서까래는 개당 28,125원으로 총180만원이 든다. 네 배가 더 되는 금액이다.

 

다음은 기둥의 문제로 가보자. 앞의 서까래 부분에서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은 아마도 필자가 계산을 잘못했나? 하는 의아심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실제로 목재를 계산하는 방식에는 잘못된 계산방식이 있다. 체적을 구하는 수학 공식은 면적×높이이다. 즉 가로×세로×높이인 것이다. 그런데 '재적(材積)'을 구하는 공식은 각으로 된 부재는 수학공식과 동일하지만 둥근 부재는 그렇지 않다. 원의 면적을 구할 때 반지름×반지름×3.14로 계산하는 게 아니고 지름×지름으로 계산을 한다. 얼마만큼의 차이가 나는지 실제로 계산을 해보자.

 

위 그림에서 A와 C는 정사각형 B에 외접하는 원과 내접하는 원이다. 정사각형으로 된 B목재의 재적은 7치×7치×높이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원부재를 계산하는데 그것은 바로 지름이 7치인 내접 원 C가 정사각형 B와 똑 같은 넓이가 된다는 의미이다. 3.5×3.5×3.14를 해야 하는데 왜 이런 엉터리 계산을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값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수요자의 입장이 아니라 공급자인 제재소 사장의 입장이 되면 간단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외접하는 원 A, 즉 원목상태의 A에서 각주 B를 만들기 위해서는 띠톱(제재톱)으로 네 변만 켜면 된다. 그런데 어떤 수요자가 지름이 7치(21cm)인 원기둥을 주문했다고 가정하면 여기서 또 네 번을 더 켜서 8각을 만들고 또 16각을 만들어 원에 가깝게 만들어 가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말하자면 인건비, 시간, 전기소모, 기계 소모 등의 손실을 감내해야만 이런 원부재를 생산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학공식에는 맞지 않지만 공급자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계산법을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원주와 각주를 똑같은 공식으로 계산해 내는 방식인 것이다.

 

또 있다. 똑같은 치수의 원기둥과 각기둥을(재적계산법 상으로) 방향에 따라서 눈으로 볼 때는 그 두께가 엄청난 차이가 난다. 원기둥이야 어떤 방향에서 봐도 똑같은 굵기로 보이지만 각기둥은 그렇지가 않다. 즉, 방향 '가'에서 보면 원기둥이나 각기둥은 똑같이 7치(21cm)의 폭이지만 방향 '나'에서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2등변삼각형의 길이를 잴 때 1×1×√2 즉, √2에 해당하는 수치 29.7cm가(거의 한 자) 방향 '나'에서 보는 각기둥 B의 폭이다. 말하자면 이때의 각기둥은 같은 치수의 원기둥에 비해 1.414배의 굵기로 보인다는 것이다. 즉 원기둥 C가 아니라 정확히 A만한 크기의 부재라야 한다는 말이다. 시각적으로는 각기둥B나 원기둥A가 같다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둥근 부재를 선호하는 현대인의 왜곡된 취향과 맞물려 자꾸만 한옥의 부재가 커지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인 것이다.

 

과거에는 12cm~15cm 이던 것이 왜정 이후에는 18cm로 80~90년 이후에는 21cm로 또 요즘은 그것도 모자라 24cm, 27cm, 심지어는 30cm까지도 기둥의 폭이 굵어지고 있다. '고급 건물은 다 둥근 부재를 써야 한다'. '마을 모정은 반드시 원기둥이라야 한다'라는 믿음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이것이 현대한옥의 현주소다.

 

그리고 보통 '한옥은 춥다'는 인식이 강하고 그래서 '큰 부재를 써야 한다'고 하는데 단지 부재만 키운다고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기둥과 벽체 사이, 기둥과 도리 간에 상호 밀접도가 저하되면 외기가 침입하기 쉬운데 이때 기둥이 두꺼우면 벽체와의 접합면이 넓어져 다소 유리하겠지만 둥근 기둥을 쓰게 되면 문제는 크게 달라진다. 또, 둥근 부재를 벽체와 제대로 접합하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시간과 공은 각기둥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둥근 부재와 각부재를 가공하는데 있어서도 그 난이도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둥근 서까래 하나를 가공하는데 드는 시간과 각서까래 10개를 가공하는데 드는 시간은 아마도 엇비슷할 것이다. 또한 이것들을 다른 부재와 결합할 때도 시간적인 차이가 많이 난다. 이렇듯 둥근 부재를 쓰면서도 '한옥이 비싸네', '인건비가 많이 드네'하는 말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바보요!!"라는 말과 똑 같기 때문이다. 
 
4. 모양새의 문제
 
한옥은 그 모양이 복잡하다. 지붕의 모양새, 부재의 종류에 따른 모양새, 치장재가 많고 적고에 따른 모양새 등 다양한 것이 한옥이다. 여기서는 지붕의 모양새만 가지고 이야기하기로 한다. 지붕은 크게 팔작지붕, 우진각지붕, 맞배지붕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는 팔작지붕을 최고급으로 여기고 있다. 우진각은 3량 구조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지붕형식이고 팔작은 5량 이상에서 나타나는 형식이니 당연히 구조가 더 크고 웅장한 형식에 걸맞는 팔작지붕이 더 고급스런 건축물의 구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3량 가구(架構)에 걸맞는 우진각지붕을 마다하고 억지로 팔작지붕을 만드는 풍조가 최근에 유행한다는 것이다. 두 칸 정도의 작은 집에 지붕을 팔작으로 만들려고 하니 시간도 많이 가고 용마루가 짧아져 전체 모습은 이상하게 변하기 쉽상이다. 국보 1호 숭례문을 보라. 그것이 어디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가? 또 광화문을 봐도 마찬가지다. 숭례문이나 광화문 지붕의 곡선미는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과거 서민들이 살던 집의 우진각지붕이 아니라 우리 한옥만이 그려낼 수 있는 아름다운 곡선미의 우진각지붕인 것이다.  

 

둥근 부재와 팔작지붕 기타 치장재에 낭비되는 목재의 양과 시간과 공을 벽체나 창호 또는 난방 쪽으로 돌려 마무리 공사에 만전을 기한다면 외관만 멋이 있는 한옥이 아니고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한옥, 건강에 이로운 한옥, 친환경적인 한옥, 우리 정서에 딱 맞는 한옥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요즘 전 세계적으로 한참 뜨고 있다는 'K-Pop'과 같이 우리 전통 한옥도 세계의 건출물이 되어 한류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덧붙이는 글 | 한옥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만큼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알고 제대로 쓰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태그:#창덕궁,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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