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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사업장에서 열린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미국의 안전보건 컨설팅 회사인 인바이론 연구원들과 자문단 교수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인바이론사 수석연구원 제임스 풀, 프레드 볼터 연구총책임자 폴 하퍼, 자문단 교수 존 미커.
 14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사업장에서 열린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미국의 안전보건 컨설팅 회사인 인바이론 연구원들과 자문단 교수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인바이론사 수석연구원 제임스 풀, 프레드 볼터 연구총책임자 폴 하퍼, 자문단 교수 존 미커.
ⓒ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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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새로운 게 없다. 데이터도 없고."

14일 삼성전자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발표를 모두 지켜본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산업보건전문의가 던진 한마디다. 삼성전자가 '제3기관'인 인바이론을 앞세워 "반도체 작업과 백혈병 발병은 무관하다"고 거듭 주장했지만 시민단체 전문가와 언론의 불신을 씻진 못했다.

인바이론 "발병자 2명, 발암물질 노출됐지만 연관성 없어"

삼성전자는 이날 오전 경기도 기흥 나노시티 반도체사업장에 내외신 기자 100여 명을 불러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삼성이 산업보건 관련 국제 컨설팅업체인 '인바이론'에 의뢰해 지난 1년 동안 조사한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환경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때마침 근로복지공단이 지난달 23일 서울행정법원이 이곳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고 이숙영씨의 산업재해를 인정한 것에 불복해 항소를 결정한 뒤라 취재진의 관심은 더 컸다.

하지만 삼성에서 용역비를 제공한 데다 피해자가 일하던 기흥 공장 3라인이 이미 지난 2009년 폐쇄돼 삼성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연 공정한 조사가 이뤄질지 의문시됐다. 이날 조사 결과는 이런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인바이론 연구 책임자인 폴 하퍼 소장은 "기흥, 화성, 온양 등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라인 조사 결과 (유해 물질) 노출 수준이 국제 기준보다 상당히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과거 기흥 3라인에 대한 '노출 재구성' 연구 결과에서도 백혈병이나 림프종 발병 사례 6건과 인과관계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노출 재구성 연구를 담당한 프레드 볼터는 "발병사례 4건은 발암 물질 접촉이 전혀 없었고 급성 골수성 백혈병 등 2건은 잠재적 노출이 있는 환경에서 근무했지만 누적 노출 추정치를 산출해 보니 실제 위험 유발 수준보다 현저히 낮았다"며 업무 연관성을 부인했다. 

이는 지난 2007년과 2008년 2차례에 걸친 역학조사 결과 "백혈병을 유발하는 벤젠이 검출되지 않았다"며 삼성 손을 들어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발표를 재확인한 것이다.

'1급 발암물질' 벤젠 검출 여부 논란... "벤젠 검출 안 돼"

14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사업장에서 열린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 사업총괄 권오현 사장(왼쪽에서 4번째)과 관련 임원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14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사업장에서 열린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 사업총괄 권오현 사장(왼쪽에서 4번째)과 관련 임원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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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엔 삼성전자와 근로복지공단에 맞서 산재를 주장해온 백혈병 피해자 가족들과 '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에서 추천한 공유정옥 산업의학전문의와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백도명 교수는 지난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 단장을 맡아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반도체 3사 공장에서 사용되는 포토레지스터(PR)란 물질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을 검출하기도 했다.

공유정옥 산업보건전문의는 "기존 산업안전보건공단 연구의 문제점을 시민단체에서 계속 제기해 왔고 서울대 산학협력단 보고서 외에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지 않는 벤젠이 공기 중에서 발견됐다는 산업안전보건공단 미공개 보고서도 있는데 확인해 봤느냐"고 따졌다.

인바이론은 지난 2009년 폐쇄된 기흥 3라인과 제조 공정이 비슷한 기흥 5라인에서 '노출 재구성 연구' 조사를 벌였다. 인바이론은 이곳 반도체 라인에서 사용되는 물질 가운데 급성 골수성 백혈병, 급성 림프성 백혈병, 비호치킨 림프종 등 3가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로 포름알데히드와 전리 방사선, 트리클로로에틸렌(TCE) 등 3가지로 규정했지만 정작 문제가 된 벤젠은 제외했다.

인바이론은 "벤젠에 대해 평가를 실시했지만 전혀 탐지되지 않았다"면서 "벤젠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유발해 사용이 금지돼 있어 공정 과정에 사용되지도 않았고 발생할 수도 없는 물질"이라고 반박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 사업총괄 사장 역시 "벤젠이 발견됐다는 (산학협력단) 보고서를 보고 우리도 깜짝 놀랐다"면서 "내부 분석이나 국내외 유수 분석기관에 의뢰했지만 벤젠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며 펄쩍 뛰었다. 특히 공기 중에서 벤젠이 발생했다는 '미공개 보고서'가 있다는 공유정옥 산업보건의 주장에 대해서도 "전 세계적으로 금지된 물질이어서 절대 쓰고 있지 않다"고 극구 부인하며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또 백혈병 발병자가 나온 기흥 3라인을 폐쇄한 것이 증거를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권오현 사장은 "3라인은 오래된 라인이어서 2009년 폐쇄하고 다른 공정에 쓰고 있지만 반도체 공정에 쓰는 화학 물질은 1960년대나 지금이나 비슷해 5라인과 동일한 환경"이라면서 "3라인은 벌써 폐쇄해야 했는데 정부 역학조사 때문에 2년간 놔둔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대중 아니라 삼성에 제공하는 보고서"... '기업 편향' 인정?

14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사업장에서 열린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 사업총괄 사장이 재조사 경과와 회사 대책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14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사업장에서 열린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 사업총괄 사장이 재조사 경과와 회사 대책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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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사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이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산업재해를 일부 인정한 것은 임직원 건강을 배려하라는 걸로 알고 완벽히 대처하겠다"면서도 "(재판부는) 가능성만으로 판단한 것이어서 과학적, 의학적 판단은 차후 재판 과정을 통해 밝혀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삼성은 퇴직 후 암에 걸린 임직원에게도 치료비나 사망위로금 지원 방안을 검토하는 등 임직원 건강 증진 제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직원은 모두 26명이며 이 가운데 1차 5명, 2차 4명이 산업재해 인정을 받으려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행정소송에 '보조 참가자' 자격으로 근로복지공단 편에서 변론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더구나 이번 인바이론 조사에서 활용된 발병 사례 6건도 모두 산업재해를 신청한 노동자 사례여서 행정소송에 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이기옥 삼성전자 법무실 상무는 "이번 조사는 반도체 사업장에 위험 요소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한 것이지 (산업재해를 신청한) 6명을 특정해서 업무 연관성을 밝히려 한 건 아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를 맡은 인바이론이 과연 신뢰할 조사기관인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이날 한 기자가 "인바이론은 고엽제나 간접흡연 등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해 해외에서 논란되기도 했다"며 인바이론의 기업 편향성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에 권오현 사장은 "해외 유수 분석 기업들을 조사해 가장 평판이 좋은 회사 선택한 것"이라면서 "화학 분석 계통에서 가장 우수하고 자문단도 그 분야 전문가들"이라고 밝혔다. 인바이론 역시 이날 재조사 결과 발표에 앞서 회사를 홍보하는 5분짜리 동영상을 상영했고 발표 과정에서도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한 객관적 조사임을 유난히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참석한 전문가 자문단은 "연구의 과학적 방법론과 분석 방법의 엄격성만 따졌지 일반적인 업무 수행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며 조사 결과와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이날 백도명 교수는 "결론만 있을 뿐 데이터가 없는 보고서"라며 구체적인 자료 공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인바이론은 "대중이 아니라 삼성에 제공하는 보고서이고 공개 여부는 삼성이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권오현 사장은 "수급 받는 여러 화학물질 가운데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공급자들이 절대 유해하지 않다는 확약서를 쓰고 있고 코카콜라 레시피처럼 공개할 수 없는 사업 비밀도 있다"면서 "재료 공급자들과 당사의 영업 비밀을 제외하고는 보고서 공개를 검토하겠다"면서 제한적 공개를 시사했다.

근로복지공단에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기로 한 가운데 삼성 백혈병 피해자 유족과 반올림은 15일 오후 1시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날 인바이론 조사 결과와 항소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태그:#삼성 백혈병, #삼성전자,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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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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