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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진숙 언니.

진숙 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에 지원할 때 즈음이었어요. 그 시기에 언니에게 닥친 상황은 심각했어요. 크레인 전기가 차단되고, 올라가는 물품이 모두 검열되었죠. 끊겨버린 언니 트윗을 보며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요. 그때 언니를 꼭 만나러 가야겠다, 혼자 다짐했어요.

처음 2차 희망버스 185대 이야기를 들었을 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1만 명 가까운 인원이 부산에 모일 수 있을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희망버스에 신청하면서도 185대의 버스를 상상할 수 없었어요.

그러던 중 인턴기자가 되었어요. 평범한 집회 참가자에서 취재를 해야 하는 인턴기자가 된 거죠. 교육받은 사흘 동안 써본 3개의 연습 기사가 제 경력의 전부였어요. 부산에 내려가기 전날 설렘과 떨림으로 늦은 새벽까지 잠 못 이루었어요.

그리고 언니를 만나는 그날이 왔어요. 제 인생 첫 번째 '현장 취재'도 시작되었답니다.

그 희망들이 모여 '희망버스 195대'를 만들었구나!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86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0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정청래 전 의원 등과 전화통화를 하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86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0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정청래 전 의원 등과 전화통화를 하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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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위해 모인 곳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어두웠지만, 언니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어떻게 부산까지 가게 되었는지 묻자 사람들 수만큼 답변도 다양했어요.

대학생 김수민(23)씨는 "희망버스가 궁금해서 체험하러 왔다"며 이렇게 말했어요.

"우연히 라디오에서 하늘에 매달려 생활한다는 김진숙씨 이야기를 들었어요.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많이 놀랐어요. 희망버스가 궁금하기도 하더라구요. 그래서 오게 되었어요."   

고3 수험생이지만 진숙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서 왔다는 엄지(19)씨와 진맑음(19)씨도 있었어요. "수험생인데 1박 2일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면서 수줍게 웃었어요.

"1박 2일은 괜찮아요. 다른 것보다 15000원의 참가비가 부담스러워요. 고등학생에게 15000원은 적은 돈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참가해야 언젠가 노동현장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바뀌겠죠."

연인이 함께 진숙 언니를 만나러 온 봉인권(26)씨와 연시영(23)씨는 언니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전기 끊겼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가면 전기도 다시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루만 혼자 있어도 힘든데 오랜 기간 혼자 있으면 얼마나 힘들지 걱정이에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거 알아주시고 건강하게 걸어 내려오셨으면 좋겠어요."

희망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희망을 만났어요. 언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 한진중공업 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노동현장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까지, 각자의 희망이 있었어요. 그 희망들이 모여 '희망버스 195대'라는 기적을 만들었구나, 감동했답니다.

버스가 부산에 가까워질수록 빗방울이 굵어졌어요. 기상청에서는 부산 날씨를 오후부터 갬이라고 예측했지만 비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요. 버스는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부산역에 도착했어요.

도착하니 빗방울이 더욱 거세졌어요. 무대에서는 '희망과 연대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어요. 인디밴드인 3호선 버터플라이는 "우리만 비를 안 맞아서 죄송하다"라고 말했지만, 광장에 모인 사람 중에 비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어요. "옆 사람을 위해서 우산은 접으세요"라는 외침이 드문드문 들렸답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콘서트는 끝났어요. 이어 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한 행진이 시작되었어요. 드디어 만나러 가는구나!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들떠 있었어요. 특별한 지시 없이도 사람들은 평화롭게 행진을 시작했답니다.

영도 조선소로 가는 길에 사람들은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어요. 부산 시민에게 집회의 내용을 알리는 방송도 이어졌어요. "힘내라! 힘내라!" 동래구에 사는 김동균(57)씨는 행진하는 참가자들을 응원하고 있었어요. 대교동에 사는 최윤점(50)씨도 이렇게 응원했어요.

"먹고 살기 바쁜데 타지에 와서 늦은 시간까지 행진하는 거 보고 정말 놀랐어. 국민들이 진짜 대단한 거 같아."

전경들 "여기에 왜 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시켜서 왔다"

9일 저녁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85일째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9일 저녁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85일째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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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하며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대열의 말미로 뒤처졌어요. 대열 바로 뒤 시내버스들이 느린 걸음으로 따라오는 게 보였어요. 버스기사님께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어요. 뒤따라오는 버스에 타서 시민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역시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이번 집회에 부산지역 참가자가 적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승객들 반응을 이해했답니다. 누군가는 시간과 돈을 들여 부산에 오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을 뺏는 교통체증에 염증을 내고, 모두 같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인데 이토록 '다름'이 신기했어요.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요. 신발과 발이 하나가 되려는 찰나에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들렸어요. 85호 크레인이 가까워졌겠구나 생각하고 앞을 보니 벽이 보였어요. 철판으로 만들어진 '폴리스 라인'은 생각보다 거대했어요.

인도의 벽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는 경찰이 뿌리는 최루액으로 번번이 무산됐어요. 최루액으로 눈을 못 뜨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갔답니다. 부산까지 왔는데 언니를 못 만나고 돌아갈 생각을 하니 답답했어요.

서울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진숙 언니를 보고자 하는 마음과 초보의 열정이 합쳐졌어요. 함께 부산에 온 인턴 동기와 한진중공업까지 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어요. 지도를 봤을 때 보이는 가장 가까운 길은 이미 경찰이 쌓은 벽으로 막혀 있었어요.

막힌 길에는 여지없이 시민과 경찰의 승강이 하는 모습이 보였답니다. 다른 길을 찾으려고 지도를 보고 있었는데 옆에 시민분이 위쪽으로 둘러가는 길을 알려주셨어요. 지체 없이 발걸음을 돌렸어요.

그때부터 4시간 동안 동기와 함께 봉래2동 가파른 산동네를 헤맸어요. 산에서 내려다본 한진중공업 담벼락은 담을 따라 주차해 놓은 전경버스로 사람 하나 들어갈 틈조차 없었어요. 한진중공업은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요.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그저 언니 얼굴 한번 보고, 안부를 묻고, 집에 돌아가려 했던 건데 말이죠. 빽빽한 전경버스를 보고 잠시 할 말을 잊었어요.

한참을 헤매다 한진중공업 정문에 도착했어요. 정문에는 족히 몇천 명으로 보이는 경찰들이 있었어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헬멧을 베게 삼아, 서로의 배를 베게 삼아, 잠을 청하고 있었어요. 정문은 정말 평온했어요.

말을 걸어 본 전경들은 대부분 "여기에 뭐하러 왔는지 모른다, 그냥 시켜서 내려왔다, 피곤하다"는 반응이었어요. 그래도 전경들 숫자에 압도되어 숨소리 한 번 크게 못 내고 발길을 돌렸어요. 언니를 보러 회사 안까지 들어갈 시도는 하지 못했어요. 철옹성을 뚫고 들어가는 게 쉬울 정도로 방법이 없었어요.

부산 영도에서 꺾이지 않을 '새로운 희망'을 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결국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지 못한 가운데, 10일 오후 부산 중구 태종로 앞에서 열린 '2차 희망버스 마무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노찾사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함께 부르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결국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지 못한 가운데, 10일 오후 부산 중구 태종로 앞에서 열린 '2차 희망버스 마무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노찾사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함께 부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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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로 돌아왔을 땐 이미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상황이었어요. 연행자가 50명을 넘어서고, 부상자가 발생하고, 대열이 50m 뒤로 밀려 있었어요. 다들 많이 지쳐 보였답니다. 그래도 "김진숙을 보고 싶다"는 열망은 식지 않았어요. 모두 언니를 보고 싶어 했어요.

숨 가빴던 밤이 지나고 해가 뜨니 경찰도 희망버스 참가자들도 한결 긴장이 풀린 듯했어요.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서 준비한 묵밥과 연잎 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는데, 옆에서 부산․경남 아고라 모임에서 준비한 어묵탕 5000인분이 새벽에 불법 시위 물품으로 압수당했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어묵은 어떻게 불법 시위 물품이 되었을까? 헛웃음이 났어요.

이후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됐어요. 사물놀이도 하고, 퍼포먼스도 하고, 대형 걸개 그림도 그렸어요. 언니와 함께했으면 더 즐거웠겠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어요. 희망엽서를 나누는 시간엔 눈시울을 붉히는 분들도 있었어요.

모든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어요. 마지막 해산 집회에서 언니는 모인 사람들에게 "눈물겹도록 사랑스럽고 고맙다"고 말했지만, 여기에 온 사람들은 홀로 35m 크레인 위에서 싸우고 있는 언니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모인 걸요.

한 참가자는 "힘을 주려고 왔지만 오히려 힘을 얻고 간다"며 밝게 웃었어요. 그곳엔 여전히 희망의 불씨가 살아 있었답니다.

언니를 만나기 위해 1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부산에 왔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어요. 송경동 시인은 "우리가 희망버스를 탄 목적은 단순히 김진숙과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김진숙과 또 다른 김진숙을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또 다시 부산을 찾기로 다짐했답니다. 그게 3차 희망버스가 되겠지요.

환송 행렬을 빠져나오며 한진중공업 노조 분들에게 인사를 받았어요.

"고생하셨어요."
"조심히 가세요."
"정말 고마워요."

오가는 인사에 "또 오세요"라는 말은 없었어요. 그분들은 이번에 와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마워하고 계셨어요. 1차와 2차에 걸쳐 212대의 희망버스가 부산을 찾았지만 달라진 건 없어요. 그런데 그분들은 뭐가 그리 고마우셨을까요. 그래도 진숙 언니, 저는 영도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어요. 결코 꺾이지 않는 희망을요.

덧붙이는 글 | 강유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어리바리한 인턴기자의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태그:#김진숙, #2차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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