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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내의 그릇 된 문화를 비판한 영화 <어퓨굿맨>
 군 내의 그릇 된 문화를 비판한 영화 <어퓨굿맨>
ⓒ 어퓨굿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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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졌다. 참극이다. '작지만 강한 군대'를 표방하던 대한민국 최정예군대 해병대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했다. 아프고 또 슬픈 일이다. 무엇보다 젊디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용사들과 유가족에게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한다.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피의자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았다. 잘된 일이다. 원인을 밝히고 응분의 처벌을 받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런데 피의자 김 상병의 진술은 충격이다. '기수 열외', 일반국민에게는 아니 해병대가 아닌 여타 군을 다녀온 이들에게도 생소한 단어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의 궁색한 변명일 수도 있다. 백번 양보해 기수 열외가 사실일지라도, 인명을 살상한 죄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건은 이미 벌어진 것. 중요한 건 재발 방지다.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영화 <어 퓨 굿 맨>을 떠올리게 하는 참사

영화는 군사 법정 드라마다.
 영화는 군사 법정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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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많은 이들의 뇌리에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 1992년 작품으로 관타나모 주재 미 해병대 내의 살인사건을 다룬 군사법정 드라마다. 몰입도 있는 구성으로 많은 영화팬의 갈채를 받았다. 밝혀둘 게 있다면, 각색과 허구를 더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이다.

관타나모에서의 해병대 생활에 좀체 적응을 못하는 산티아고 일병. 그는 감찰부, 상원의원 등 군 내외 사람들에게 전출을 요구하는 등 이른바 '관심 사병'이다. 일평생 지나친 강직함을 바탕으로 살아온 사령관 제셉 대령에게는 목에 걸린 가시다.

결국 해병대 내의 암묵적인 전통 '코드 레드(구타와 얼차려)'를 당하다 죽음을 맞게 된 산티아고 일병. 가해자는 같은 소대원 두 명. 책임은 과연 그들에게만 있을까. 문제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냐는 점. 물론 제셉 대령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이후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지지만, 결국 제셉 대령은 스스로 친 분노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법정 구속이 된다. 그리고 위계질서와 명령을 성전처럼 떠받들던 가해 사병들은 불명예 제대를 당하게 된다.

그릇된 군 문화, 과연 불문율로 인식해야 하나

그릇된 문화에서는 강군이 길러지지 않는다.
 그릇된 문화에서는 강군이 길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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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레드'는 미 해병대의 불문율이다. 불법이지만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문화로 전해졌다. 우리나라의 얼차려고 왕따다. 집단의 규범을 어긴(옳건 그르건) 이에게 자행되는 불법 행위다. 집단의 일원이 되기 위해선 그릇된 걸 알면서도 따라야만 한다.

가해자 김 상병이 당했다고 주장하는 '기수 열외'는 사실 그보다 더하다. 당하는 사람은 부대 내에 없는 사람이고 유령이다. 명예를 위해 자원입대한 해병대. 그런데 아무도 그를 부르지 않는다. 선임이나 동기는 물론 후임병사까지 반말을 던지고 비웃어 대는 현실. 이건 차라리 막막한 벽이다.

흔히 자살을 택하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가 무의미해졌을 때 극단의 길을 떠올린다. 김 상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타인의 생명을 해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마지막으로 수류탄을 터뜨렸다. 퇴로가 막혀 있었던 것이다.

섬뜩한 점은 보통 총기사건이 일어난 경우 분을 참지 못해 사방에 난사를 하기 십상인데, 김 상병은 한발 한발 조준사격을 했다고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 분노와 열패감의 깊이가 어떠했는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동료들이 죄를 물을 수 없어

분노를 터뜨리는 제셉 대령.(잭 니콜슨 분)
 분노를 터뜨리는 제셉 대령.(잭 니콜슨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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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진실을 감당할 수 없어!(You can't handle the truth!)"

영화 속 조셉 대령의 분노다. 오지에서 적을 감당해야 하는 일선 군인으로서, 한가로이 후방에서 지내는 법무장교에게 터뜨리는 일갈은 어쩌면 진심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부대를 유지하기 위한 그의 고뇌가 한편 이해된다.

군대는 특수사회다. 잘못된 행동 하나 하나가 곧 부대원의 목숨과 연결되기에 임무는 서릿발같이 완수하고, 정신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군대도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 개개인의 능력차, 성격차가 존재하고 그래서 때때로 뒤처지는 이가 나타난다.

군에 다녀온 이들이면 기억할 것이다. '저런 사람이 왜 우리 부대에 있어 모두를 괴롭히나'하는 그런 '고문관'은 분명 존재한다. 말귀가 어둡거나 행동이 재빠르지 못하고 때로는 너무도 여리기만 해 주변 소대원·중대원들이 힘들었던 기억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 병사들의 격려로 군은 돌아간다. '할 수 있다'고 등을 두드려 주고, 짐을 거들고 업무를 분담해주고 말벗이 되어주는. 그렇게 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이를 적절히 해결치 못한 간부들의 무능력을 질타해야 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사병들이 나서 그를 단죄할 수는 없다. 흔히 억울한 판결을 두고 '사법살인'이라고 한다. 기수 열외가 그보다 못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칼로 찔러 심장이 멈추고, 의식이 끊겨야만 살인일까. 사법살인은 아쉬운 대로 변호인이라도 있다. 사람을 사면초가의 벽으로 내모는 기수 열외는?

해병대다운 명예는 악습에서 벗어나는 것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병사들을 매도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이순간도 죽지 못해 버티어 내고 있는 제2, 제3의 김 상병이다. 이 잘못된 문화가 지속되는 한 충격적 사건이 되풀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영화 <어 퓨 굿 맨>의 제목은 '소수정예'라는 뜻으로 미 해병대를 지칭하는 슬로건이기도하다. 마치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비슷하다.

누구나 갈 수 없는 군대, 충성심과 명예, 사나이다움으로 똘똘 뭉친 군대. 그건 동료를 따돌리고 숨 막히게 만드는 문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나이다움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떠안을 수 있는 따뜻한 품성에 있다.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기수 열외', 그건 문화도 불문율도 아니다. 구태고 악습이고, 미친 짓이다.


태그:#해병대, #총기참사, #코드레드, #어퓨굿맨, #기수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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