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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보조' 업무를 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내 일'이 없다는 뜻이다. 사진은 드라마 <동안미녀>의 한 장면.
 누군가의 '보조' 업무를 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내 일'이 없다는 뜻이다. 사진은 드라마 <동안미녀>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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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서른이 넘은 이 나이까지 누군가의 보조업무를 하며 최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모두 설명하자면 A4용지 10매를 할애해도 부족할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대학학자금대출' 덕이다.

닥치는 이자와 원금 상환일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당장 무슨 일이든 해야 했고, 그렇게 시작한 일이 '보조업무'였다. 보조업무의 급여는 최저임금이었다. 그 금액으로 빚 갚고 생활하기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회사와 아르바이트 한두 개씩을 병행하며 6년 동안 1600여 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았다. 올해 4월까지. 하지만 그 감격스러운 순간도 잠시였다. 빚잔치를 끝내고 내 눈 앞에 남은 것은 '최저임금노동자'라는 굴레뿐이었다.

학자금대출 겨우 갚았더니, 이제 최저임금노동자

난 지금 공기업에서 사무 보조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보조' 업무를 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내 일'이 없다는 뜻이다. 부장님이든 차장님이든 날 불러서 어떤 잡일을 시키더라도 할 수밖에. 난 보조니까. 커피를 타고, 복사를 하고, 사람들이 받아온 명함을 엑셀에 입력하고, 팀장의 방 한 켠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팀장의 온갖 눈치를 받아내고 견딘다.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받는 월급의 액수 덕에 어느덧 나는 그만큼의 가격으로 취급받는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받는 돈은 식대를 포함하여 100만 원 남짓이다. 회사식당에서 카드 찍고 점심이라도 몇 번 먹은 달이면 그 달엔 여지없이 90만 원 초반 대의 금액이 통장에 '급여'라는 이름으로 찍힌다.

지출내역을 쭉 적어놓고 줄일 수 있는 항목을 살핀다. 교통비, 휴대폰요금, 보험료, 식대, 병원비, 생활비를 쭉 보니 역시나 줄일 수 있는 것은 '식대' 뿐이었다. 도시락을 싸갖고 다녔다. 차가워진 밥을 뜯어먹으며 따뜻한 국물 한 숟가락 먹고 싶은 욕구를 참고 '집 밥이 제일 맛있지'라며 스스로 위로하는 내 모습에 처량한 마음이 스치고 지났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삼포', 부러우면 지는 거다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가한 여성연맹 조합원들이 최저임금 현실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가한 여성연맹 조합원들이 최저임금 현실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언론노보 이기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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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점심 값을 아끼면 한 달에 10만 원 정도의 저축할 여윳돈이 생긴다. 서른이 넘은 나이,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달에 10만 원씩 저축하여 몇 천 만 원씩 하는 결혼자금을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빚을 갚을 때처럼 회사 끝나고 아르바이트 한 개쯤 더 해 볼 생각도 해봤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하였나. 학자금 대출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빚을 거의 다 갚았을 때 아프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병원에선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꾸준한 치료에 반드시 수반되는 것은 '돈'이었다. 이젠 회사에서만 앉아있기에도 불편해진 정도의 상태가 되어 회사가 끝난 후 다른 일을 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어느덧 아파서 병원 가는 일 조차 나에겐 사치가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 난 어쩔 수 없이 삼포 세대에 합류되었다. '연애, 결혼, 출산' 포기. 모두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친구들이 물어온다. "너 결혼은 안 해?" 난 자신 있게 대답한다. "응! 난 결혼 안 하고 자유롭게 살 거야!" 나, 실은 그리 자유로운 영혼은 못 되는 사람이다. 나라고 왜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알콩달콩 가정 꾸리고 싶지 않겠는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을 뿐이라고 씁쓸한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시급 4320원으로는 먹고 살지 못하겠다

경영계에서 최저임금동결을 주장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가진 사람들이 더 하다. 어떻게 당신들만 생각하느냐와 같은 이야기는 어차피 역지사지로 경영계에서 노동자들에게도 할 수 있는 말이라 입 아프게 말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다 제쳐두자. 그런데 다들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말 있지 않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맞다. 우린 모두 '먹고 살기 위해서' 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급 4320원으론 먹고 살지 못하겠다. 그 돈으론 이젠 한 끼 식사 값도 해결하지 못 한다. 아프면 병원에도 가야 하고, 따뜻한 점심 한 끼 마음 놓고 먹고 싶고, 알뜰살뜰 돈 모아 결혼도 하고 싶다. 미래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품고 싶다.

이제 이 회사 계약도 거의 끝나간다. 나이가 한 살씩 더 먹을수록 일자리 구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이 많은 보조를 누가 선뜻 쓰려고 하겠는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대학 졸업장과 유효기간 지나버린 어학 점수, 각종 자격증들 밑에 '사무보조업무'로 점철 되어 있는 이력서를 여기저기 뿌리며 일자리를 구하러 다닐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최저임금이라도 받아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덧붙이는 글 | 송화선님은 청년유니온의 조합원으로 현재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최저임금, #청년유니온,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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