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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80년의 홍옥나무 * 사진은 <우리 곁의 노거수>에 수록된 것을 스캔하여 임의로 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이지용 저자의 실제 사진과는 이미지 등이 다릅니다. 이하, 다른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80년의 홍옥나무 * 사진은 <우리 곁의 노거수>에 수록된 것을 스캔하여 임의로 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이지용 저자의 실제 사진과는 이미지 등이 다릅니다. 이하, 다른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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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령 홍옥 사과나무

아직도 사람들은 "대구" 하면 사과를 떠올린다. 그러나 사실 대구에는 예전만큼 사과가 그렇게 많지 않다. 기후가 변하면서 사과나무들이 대구보다 생존 여건이 더 좋은 곳을 찾아 북상했기 때문이다.

대구가 어째서 사과의 명산지로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를 증언해 주는 사과나무가 대구시 동구 평광동 저 깊은 산비탈에 남아 있다. 수령 80년. 우리나라에 생존해 있는 홍옥 사과나무 중 최고령의 '어르신'이다. 1935년에 이곳에 심어졌다.

나무의 주인은 우채정씨(83). 나무를 심은 사람은 그의 선친이시다. 이 홍옥나무는 주인과 서로 '형, 아우'를 다툴 만큼 긴 세월을 살아왔지만, 현재도 해마다 가을이면 15kg짜리 10상자 이상을 주인에게 선사한다.

이 최고령 홍옥나무로 가려면 나무의 주인인 우채정씨 가문이 효행과 충성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첨백당 건물(대구시문화재 자료 13호) 앞을 지나야 한다.  그리고 근처 시량리의 한 사과밭에서는 신숭겸 장군 유허비도 볼 수 있다. 물론 왕건과 견훤이 명운을 걸고 대회전을 벌였던 한바탕 싸움 '동수대전'의 격전지가 사과나무의 인근에 있는 것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1910년 경술국치 때 사흘 동안 운 성주 측백나무
 1910년 경술국치 때 사흘 동안 운 성주 측백나무
ⓒ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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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때 사흘 내내 운 측백나무

1668년, 여효증(呂孝曾)은 충청도 임천군수를 그만두고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로 귀향한다. 이 때 임천 주민들이 선정에 대한 답례적 선물로 측백나무 한 그루를 들고 따라온다. 조선 효종 9년인 그때에 심은 수령 약 340년의 이 나무, 1910년 경술국치 때 사흘 밤낮을 내리 운다. 그 이후, 유명한 나무가 되었다.

옛날에는, 이 측백나무의 잎을 삶아 먹으면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된다는 소문이 퍼져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현대의학으로야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지만, 신앙이란 게 본디 과학을 뛰어넘어 그 위에 존재하는 것이니 누가 말린다고 멈춰질 일도 아니다. 그래서 심지어 한때는 측백나무의 잎을 주워서 주면 엿장수가 엿을 공짜로 주기도 했다. 나무가 있는 수촌리에서 어릴적부터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여기철씨(65)의 증언이다.

지금 수촌리의 측백나무는 거의 벌거벗은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세차게 불어오는 한풍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의연하게 맞서고 있다. 김창숙 선생 등을 낳아 스스로 '선비의 고을'이라고 자부하는 성주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듯한 기세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논어의 가르침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범인들도 이 나무 아래에 서면 저절로 그 뜻이 깨쳐진다.

성주에는 '성밖숲'이라는 천연기념물 403호 왕버들 군락지가 있다. 조선 중엽 성주 읍성 밖에 사는 어린 아이들이 이유없이 자꾸 죽자 풍수지리사상에 입각해 천변에 나무들을 심었다. 특히 보슬비가 내리는 날, 물안개 자욱한 성주 성밖숲을 거니는 정취는 정말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이 아름다운 경치의 주인공은 누구?
 이 아름다운 경치의 주인공은 누구?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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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을 피해 투신하는 부녀자들을 지켜본 연못가의 소나무

경북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에 가면 낙화담이라는 연못이 있다. 꽃이 떨어지는 연못이라는 뜻이니, 저절로 부여의 낙화암이 연상된다. 아니니 다를까. 이 연못이 생겨난 배경에는 그와 대동소이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1392년,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왕이 되자 당시 황간현감이던 김구정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선비정신을 지켜 골짜기가 깊고 은거하기 좋은 곳을 찾는다. 그 곳이 바로 판곡리. 그런데 김씨 성(姓)이 화기(火氣)를 띤 마을 안산 백화산과 상극이라는 풍수설에 따라 마을 앞에 연못을 조성하고 나무를 심었다. 그 소나무가 지금 수령 600년을 넘긴 '백화담 소나무'이다.

다시 300년 뒤인 1592년, 김구정의 후손 김준신은 임란을 맞아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나 결국 상주 북천 전투에서 순직하고 만다. 왜적들은 자신들에게 큰 피해를 끼친 김준신에 보복하고자 판곡리로 찾아와 김씨 일문과 부녀자들을 학살했다. 이 때 부녀자들이 연못에 스스로 투신하여 자진했다. 그 이후 연못에는 백화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못 가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113호인 김준신의사 제단비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상주시 화서면 신봉리 국도변에서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26호인 석조보살입상을 볼 수 있다. 높이 2.3m의 이 보살상은 넓은 화강암에 새겨져 있으며,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다.



앞에 든 세 이야기는 대구 평광동의 사과나무, 성주 벽진의 측백나무, 상주 판곡리의 소나무에 깃든 역사의 애환을 소개한 것이다. 물론 요약본이다. 상세하게 기록하다가는 한 나무만 소개하는 데에도 원고지가 수십 장씩은 간단히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야 언제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 노거수들을 다 소개할 것인가.

상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이지용 기자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영남일보에 연재한 '노거수 이야기'를 찾아서 읽어보면 된다. 앞에 든 세 나무에 대한 글은 이지용 기자가 쓴 원문을 소략하게 줄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원고들을 찾아 하나하나 새삼스럽게 읽는 수고로움도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따라서, 4년에 걸쳐 대구경북 지역의 보호수와 기념물 나무들을 두루 답사하여 '노거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집필했던 연재 기사를 본래의 필자인 이지용 기자가 보완을 거쳐 단행본 <우리 곁의 노거수- 대구 경북 노거수를 찾아서>로 재탄생시킨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초판본이 나온 날은 6월 20일. 대단한 나무들을 둘러싼 내력과 전설을 중심축으로 서술하고, 시각적 묘미를 보태기 위해 계절과 심미안에 맞춰 촬영한 사진들을 덧붙였다.

카메라를 맨 저자의 모습(왼쪽)과 <우리 곁의 노거수> 표지
 카메라를 맨 저자의 모습(왼쪽)과 <우리 곁의 노거수> 표지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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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글에 사진이 빠진다면 그것은 곧 '앙꼬 빠진 찐빵' 꼴이 된다. <우리 곁의 노거수>에는 기본적으로 노거수 자체를 담은 대형 사진이 맨앞에 실리고, 이어 본문 속에 부속 사진 두 장이 게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인근의 '가볼 만한 곳'에 대한 간략한 소개문과 관련 사진까지 덧붙어 있다.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글 반 사진 반'인 셈이다.

게다가, 기사 앞머리에 예시한 세 장의 사진과 슬라이드를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이 되지만, <우리 곁의 노거수>에 실린 사진들은 그것만으로 독자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히 아름답다. 글 없이 사진집으로만 만들어도 결코 손색이 없을 경지이라는 말이다.

<우리 곁의 노거수>는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지역을 대표하다'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홍옥사과나무, 하늘 아래 첫 감나무, 충효를 상징하는 임고서원 은행나무, 나라를 빼앗겼을 때 사흘 밤낮을 운 성주 측백나무, 상주 양잠 역사를 대표하는 뽕나무, 정신문화의 수도에 핀 토종 무궁화, 300년 동안 명당터를 지킨 의성 곤지봉 소나무, 잡귀를 쫓아내는 예천 음나무, 봄에도 함박눈을 보여주는 청도 돌배나무, 근육직 껍질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고령 모과나무 들을 소개한다.

대구 시목(市木)인 나의 이름은?
 대구 시목(市木)인 나의 이름은?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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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부는 '기이한 모습으로 살아가다'로. 가지가 180도 젖혀진 고령 느티나무, 우산처럼 생긴 예천 시부리 소나무, 새의 머리를 한 문경 느티나무,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 등 14그루의 놀라운 괴목(怪木)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제 3부는 '전설을 가지다'로, 안동의 김삿갓 소나무, 말 채찍이 뿌리를 내린 청송 말채나무, 애틋한 사랑을 간직한 고령 양버들, 막거리를 마시는 영양 회화나무, 회초리를 심어 자란 의성 왕버들 등 이야기를 가진 노거수 10 그루를 소개한다.

제 4부는 '서민과 함께 하다'로, 일제 경찰도 베지 못한 대구 수성동 느티나무, 광부 아내들의 기도를 들어주던 울진 물푸레나무, 승천하는 흑룡 청송 비술나무, S라인 몸매를 자랑하는 청도 평양리 소나무, 다부동 전투 때도 살아남은 학산리 느티나무  등 12 그루의 노거수를 소개한다. 마지막 제 5부는 '이런 나무도 있구나'로, 후손목이 있는 경주 괘릉 소나무, 분신만 살아 남은 포항 송시열 은행나무, 사람의 목숨을 살린 성주 회화나무, 주왕산이 고향인 영천 화계서당 향나무 등 12그루의 노거수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겨울 한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나목(裸木)들을 볼 때마다 작은 어려움에도 절망에 빠지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면서 "많은 노거수들이 산업화, 도시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사라져 갔지만, 십시일반 돈을 모아 당산목을 지키고, 나무를 위해 시를 읊는 사람도 많았기에 오늘날까지 노거수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 책을 쓴 저자로서 이 졸저가 노거수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높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곁의 노거수- 대구 경북 노거수를 찾아서> (이지용 지음, 아이컴 발행, 2011년, 1만원)



태그:#노거수,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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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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