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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때문이다. 공항 벤치에 앉아 비행기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꼬박 하루를 말이다. 하지만 결국 비행기는 뜨지 못했고 기대하던 제주도 여행은 무산되고 말았다. 절망에 휩싸여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기다리던 엄마와 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온 여름. 엄마는 조용히 여행용 여름 점퍼를 장만하셨다. 제주의 푸른빛 바다는 아직 엄마의 가슴 속에서 출렁이고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떠나 주리라~~ 제주도로!

서울 사람들의 로망. 제주도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서울 사람들의 로망. 제주도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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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할증으로 안 그래도 비싼 비행기 티켓 값이 올랐다. 서민용은 아닌 제주도 여행. 그럼에도 또다시 제주도행을 계획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작년에 떠나려던 여행은 고희를 맞은 엄마와의 기념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떠나려는 고희기념여행이 엄마에게 행복한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나의 소박한 바람이다.

계획하는 자에게 여유가 있는 법. 하지만 2박 3일로 드넓은 제주도를 둘러보기란 턱없이 부족하다. 여행사의 빠듯한 일정은 연로하신 엄마의 체력이 허락하지 않는다. 한 대의 택시로 움직이며 기사의 안내를 받는 '택시관광' 역시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어디든 마음 편히 다니고 싶었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는다면 항공권부터 숙소나 일정 모두를 내가 알아보고 준비해야 한다. 마음이 복잡하지만 박차를 가해 보리라.

우선 비행기 티켓이다. 예매는 적어도 3개월 전에는 해야 한다.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비행기를 타려면 말이다. 인터넷으로 항공사를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그곳엔 떠나기 위해 준비를 마친 사람들로 가득했다. 때문에 3개월 전이었음에도 원하는 시간으로 예약할 수 없었다. 비행기로 여행을 준비한다면 티켓은 무조건 빨리 알아보는 것이 상책!

비행기 예약은 적어도 3개월 전에, 호텔예약은 여행사를 통해서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용두머리가 불리는 해안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용두머리가 불리는 해안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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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숙소다. 제주도는 관광의 천국이며 숙소는 널렸다. 하지만 그곳에 내가 묶을 방이 있냐는 것이다. 난 안구의 피로를 풀어주는 럭셔리한 객실에 미소를 보이다 가격에 놀라고, 예약이 끝났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티켓 예매 후 여유를 부려서다. 한 달 전쯤에도 방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착오였다. 그렇다고 모텔이나 여관을 갈 수는 없는 노릇. 명색이 고희기념여행이 아닌가. 허나 적당한 방은 없었고 끝도 없이 전화만 할 수 없겠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어쩔 수 없었다. 인터넷에 평이 좋은 제주여행사를 골라 전화를 했다. 곧바로 원하는 날짜에 적당한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그것도 조금 더 싼 가격으로 말이다. 의외로 간단히 해결될 것을. 미련을 떤 거다. 이번에 알았다. 숙소는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는 것이 더 저렴하고 편하다는 것을.

그리고 알아두어야 할 것. 차를 렌트하지 않을 거라면 시내에서 떨어진 외진 바닷가마을은 피하는 것이 좋다. 움직일 때마다 콜택시를 불러야 하며 주변에 편의시설이 없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택시로 여행을 계획한다면 공항이 가까운 시내에 숙소를 잡아 이동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행사에 완불을 한 후 호텔에 전화해 예약을 확인 해 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칫 여행사에는 예약을 했는데 호텔에 명단이 없는 곤란한 경우를 들었기 때문이다.

섭지코지? 협재 해수욕장? 환상적인 여행 코스란~~

옥빛의 용연다리.
 옥빛의 용연다리.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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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여행을 계획하기란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이제 떠나주면 되는거야' 라며 안도하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다. 환상적인 여행 코스를 짜줘야 하는 것이다.  코스는 절제하되  최고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무면허로 렌트를 못하니 이동수단은 택시나 버스 뿐. 시내를 중심으로 동,서,남쪽으로 뻗어있는 관광코스를 같은 방향으로 두 군데씩 다니려 한다. 눈이 벌게져라 관광지 포스팅을 클릭 질하며 심사숙고했다. 너무 걸어야 하거나 유명한 곳보다는 알려지지 않았던 곳을 우선으로 말이다.

동쪽으로는 성산 일출봉이나 섭지코지가 유명하고 서쪽으로는 협제해수욕장, 남쪽으로는 중문 관광단지가 펼쳐진다. 갈 곳은 끝도 없고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다. 식당 또한 택시 기사가 추천하는 곳보다 직접 선택하고 싶었다. 원주민들이 추천하는 맛집으로 조사했고 전화번호도 적어두었다. 이제 진짜 떠나는 거다.

공항패션의 폼 나는 사람들 속을 걷는 것은 설레는 일. 비행기를 탄다면 '기내식용 거리를 떠나 주리라'던 바람은 한 잔의 주스로 달래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은 신문을 뒤적이다 멍한 표정을 몇 번 지으니 드디어 제주도 하늘이다.

호텔 체크인이 2시 반이라고요?!

바다속에 홀로 우뚝 선 외돌개
 바다속에 홀로 우뚝 선 외돌개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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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각 12시. 흐린 하늘이지만 비가 안 오는 것이 어딘가. 공항 택시에 오른 후 당당히 외친 호텔 앞에 10분도 안 돼 도착했다. 짐을 푼 후 식사를 하고 본격적인 출발이다. 아니, 그러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호텔 체크인은 2시 반이란다. 보통 12시가 넘으면 체크인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언제 바뀌었단 말인가.

환상적인 계획이 출발부터 삐걱 거린다. 보통 12시까지 체크아웃을 하고 2시간 반 정도 객실 청소를 하기 때문이란다. '이곳은 2박3일에 32만원하는 비즈니스호텔이라 그럴 거야' 라고 추측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짐을 맡겨 놓고 다시 택시를 잡아 식당으로 향했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인생이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걸로 치자면 일도 아니다. 제주 한정식 집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공항에서 가까워 마지막 날 코스였던 관광지, 용연과 용두머리에 가기로 하자. 다시 택시에 올랐다.

바다에 홀로 선 근엄한 외돌개, 봐야 느끼는 감동

위치에 따라서 다른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외돌개
 위치에 따라서 다른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외돌개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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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용머리 해안이라 불리는 해안을 끼고 돌면 용연다리로 연결 된다. 용연다리에서 내려다보이는 옥빛 계곡물. 사실 난 이 신비로운 빛깔을 보기 위해 이곳에 꼭 오고 싶었다.

용머리 해안의 검은 돌길 사이에 앉아 산 낙지를 파는 나이 드신 상인들의 모습도 정겹다. 처음보이는 기념품점에 들러 기념품을 사고, 실 듯 보이지만 반전의 단맛을 자랑하는 귤을 사서 엄마와 함께 먹었다. 제주도의 시간은 가속 페달을 밟은 듯하다. 이제 우리의 베이스캠프. 호텔로 향하는 택시에 올랐다.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외돌개로 향했다. 서귀포시 서홍동 삼매경 남쪽 기슭에 위치한 외돌개는 높이 20m로 바다 한복판에 홀로 우뚝 솟아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절로 입이 벌어지는 장관이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예술 작품을 자연의 장엄함과 비교할 수 있을까.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자태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모습이다. 앞으로 떠올리는 제주도는 바다를 지키듯 근엄하게 홀로 선 외돌개가 될 것이다. 곁에는 대장금 촬영지로 알려진 드넓은 초원도 있다. 차를 타고 걷기를 반복하는 일정에 엄마는 힘들어 보이실 법도한테 흙을 밟으며 웃으신다. 역시 이곳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거다.

대장금 촬영지로도 알려진 외돌개
 대장금 촬영지로도 알려진 외돌개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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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고 예약해둔 식당으로 향했다. 외돌개와 가까운 곳의 횟집이었던 식당은 엄마와 나에게 최고의 만찬을 선사했다. 역시 회의 매력은 각종 '스끼다시'. 우리는 끝도 없이 나오는 스끼다시를 먹다 지쳐 쓰러질 만큼 먹었고 싱싱한 회를 맛봤다.

택시를 타고 돌아와 객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 캔 맥주가 든 검은 색 비닐봉지를 가볍게 흔들어 댄다. 샤워 후 엄마와 마주 앉아 캔 맥주를 마시는 제주의 첫날밤. 그런데 벌써 아쉽다.


태그:#제주도, #외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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