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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며 동맹휴업에 들어간 숙명여대 학생들이 6월 10일 학내집회를 마친후 촛불집회가 열리는 청계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며 동맹휴업에 들어간 숙명여대 학생들이 6월 10일 학내집회를 마친후 촛불집회가 열리는 청계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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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이 연일 화제다. 며칠 전 내가 나가는 학교에서도 몇몇 학생들이 뙤약볕 아래에서 부스를 만들어놓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투표하라고 권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가 보니 6월 10일에 동맹휴업을 하고 청계천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결정하는 투표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생 평균 등록금이 OECD 국가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라니 대학 등록금이 비싸긴 비싼 모양이다.

학생들과 학부형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니 30여 년 전 캐나다 몬트리올에 유학했던 당시 생각이 난다. 첫 학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되자 학부 학생들이 교정에 모여 무슨 행사를 벌였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가까이 가 보니 소위 '데모' 중이었다.

당시 매우 소란하고 과격한 데모에 익숙했던 나에게 무척 신기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제법 큰 운동장 둘레를 열을 지어 피켓을 들고 조용히 돌고 있었다. 피켓에는 등록금(Tution)이 어쩌고저쩌고 제멋대로 쓰여 있었지만 나는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돌다 휴식시간인지 모두 모여 떠들고 있기에 한 학생에 가까이 가 물어보았다. 시위의 목적을 물으니 등록금이 너무 비싸 등록금 철폐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등록금 철폐 주장 캐나다 학생들, 뻔뻔스럽다 생각

당시 그 대학 등록금은 별로 비싸지 않았다. 몬트리올은 퀘백 주에 속해 캐나다의 다른 주와 매우 다른 방식으로 등록금이 책정된다. 다른 주는 보통 '1년에 얼마' 하는 식으로 정하지만 이곳 학교들은 '학점당 무조건 10달러'였다. 대학원과 대학 모두 수강 과목 숫자가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한 학생이 보통 1년에 8과목 정도 수강한다. 과목당 대개 3학점이니 24학점, 따라서 1년에 240달러(현 환율로 25만 원 정도)이다.

물론 30여 년 전 당시 한국의 등록금과 비교해 보면 약간 비쌌겠지만 국민소득에 견주어보면 그렇게 부담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 캐나다의 국민소득은 한국의 약 두 배이고 온타리오 주 평균 등록금은 연간 약 5000달러(550만 원) 정도로 우리보다 저렴하다.

그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 재차 물어보았다. 등록금을 좀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 무료로 해야 한다고? 그는 '자신이 대학 다니는 것이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졸업하고 사회활동하며 국가를 위하여 봉사하는 셈인데 왜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야 하느냐?' 하는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등록금은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당연히 학생이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결국 '너는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 일본은 (당시) 등록금이 한국, 캐나다보다 훨씬 비싸고 미국 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도 모두 등록금을 걷는다'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이 녀석들 우물 안의 개구리다, 그리고 너무 뻔뻔스럽다'라고 생각했다.

'반값등록금' 화두로 기대감을 키운 책임이 있다며 당내외 역풍을 맞고 있는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6월 16일 정책의총에 참석해 이주영 정책위의장, 안홍준 의원의 얘기를 들으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반값등록금' 화두로 기대감을 키운 책임이 있다며 당내외 역풍을 맞고 있는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6월 16일 정책의총에 참석해 이주영 정책위의장, 안홍준 의원의 얘기를 들으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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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우물 안 개구리'는 바로 나였으니  

그러나 세월이 가며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결국 대학 등록금은 국가 정책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이나 캐나다 모두 등록금을 학생이 부담하지만 장학금도 많고, 장학금을 못 받더라도 원하면 정부 대여금을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조건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대여금은 무이자로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나가서부터 원리 합계를 갚아나간다. 그것도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6개월 후부터 10년 이상 장기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다. 그나마 몇 년 전 정부 통계를 보니 거의 절반이 걷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도 학자금 상환은 심하게 독촉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편 미국 대학의 등록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그렇지만 대학 당국과 주 정부 그리고 연방 정부가 적극 나서서 각종 장학금과 무상 학비 보조금 등의 정책을 통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무상으로 제공해주고 있어 우리나라처럼 등록금 때문에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받지는 않는다.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대학 등록금이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우리나라 돈으로 수십 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원래 대학 등록금을 전혀 받지 않다가 2007년부터 대학생들에게 학기당 500유로를 받아오던 독일 대학들은 최근 다시 대학 등록금을 폐지하는 추세다.

백 년 전에 사립대 공립화한 캐나다가 돋보인다

한국에서 학생들이 알바하느라 학교 공부 따라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사유인가 알아보니 너무 당연하다. 최저임금 시급이 4500원 정도인데, 한국 물가를 고려할 때 학비는 고사하고 어떻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현재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10달러 50센트로, 우리 돈으로 11000원이 조금 넘는다. 그곳의 학생들 점심식사는 그 반 값, 즉 우리의 점심값과 거의 비슷하다. 한국은 작년 여름 잠시 방문했을 때보다 금년의 점심 가격이 상당히 오른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서민생활도 어렵지만 학생들의 등록금에 비할 바가 아니다. 퍽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는 예전부터 학비는 자비로 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30여 년 전 내가 생각했던 대로… 과연 그럴까? 우리 모두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것은 고등 교육에 대한 투자를 국가 정책 순위에서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의 문제일 뿐이다. 이런 문제를 미리 예견해 이미 100여 년 전 대부분의 사립대학을 공립화한 캐나다 정책이 다시금 돋보인다.

대학의 고(高) 등록금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학에는 정말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많은 사립대의 족벌체제, 투명하지 않은 경영, 결과적으로 필요 이상으로 누적된 적립금 등. 이런 점에서 학생들의 '비명'을 듣고서야 성급하게 반값등록금을 운운하는 정치권에 다시 한번 실망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최덕희 기자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30여 년간 생활했고, 올해부터 서강대학교 교양학부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태그:#반값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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