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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이 논에 빠졌구나"


지난 16일 새벽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 현상이 일어났다. 환하던 보름달이 점점 빛을 잃고 어두워지는 개기월식은 전국의 남서쪽 하늘에서 2시간 가까이 이어졌는데, 지난 2000년 7월 이후 11년 만에 가장 길었다고 한다.

그 월식 전에 둥근 보름달이 저녁해가 진 뒤에 남몰래 떠올라 붉게 빛나는 것을 엄마랑 논두렁에서 지켜봤다. 새빨갛게 타오르던 따가운 태양이 오색빛깔 하늘 아래로 사라질 때까지 논두렁에서 낫으로 풀을 베다가 말이다.

남들처럼 풀약을 논둑에 뿌렸다면 괜히 퇴약볕 아래서 고생스럽게 낫질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이미 모내기를 끝낸 뒤에는 약을 칠 수도 없다.



집에 예초기(풀 깍는 기계)가 있지만, 농사꾼 아들이라고 해도 사용할 줄 모르고 그것을 짊어지고 아랫논으로 내려오는 것이 일이라서, 엄마 먼저 논에 나와 풀을 베어 두었다. 그것을 보고 엄마도 뒤따라 풀베기를 했는데, 어렸을 적 집에서 키우던 소에게 주려고 꼴을 베던 일이 생각났다.
 
예나 지금이나 둥근 보름달처럼 농부의 저녁은 겉보기에 평온했는데, 땀 흘려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리 평탄치 못하다. 점점 농사 지어 먹고 살기도 힘들고, 몸도 편치 않은 나이든 부모가 고된 일을 하는 것은 더욱 안쓰럽다.

힘내라고 논개구리들이 개골개골 응원가를 불러주지만, 저 밝은 달도 느긋하게 올려다 볼새가 없다. 해와 달, 그리고 하늘을 이고 사는, 평생 땅만 일구는 흙사람이라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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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보름달, #달구경, #논,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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