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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일제고사. 지금 전국의 학교가 이 문제집들에 올인해 있다.
 7월 12일 일제고사. 지금 전국의 학교가 이 문제집들에 올인해 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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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성취도평가(일제고사) 성적 안 좋으면 내년도 학교 예산이 안 나와서 그러는 것이니 학부모님들께서 이해해 주세요. 따라서 이번 6학년 여행 캠프는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7월 12일 전국적으로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가 실시된다. 이를 앞두고 충남의 한 작은 시골 초등학교 학부모 간담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도대체 일제고사가 뭐기에 학교에서는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날 교감 선생님은 무슨 말을 듣고 오셨나

얼마 전 이 학교 6학년 아이들은 6월 둘째 주 쉬는 토요일을 즈음하여 부모님과 함께 2박3일 캠프를 출발하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일종의 졸업여행인 것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학부형들이 학교와 협의하여 스스로 마련한 것이었으며, 모처럼 부모님과 함께 초등학교 시절 마지막 추억여행을 하게 된 아이들의 설렘이 하늘을 찔렀음은 당연지사.

그런데 이 학교 교감 선생님이 도교육청 주관으로 열린 학력신장 대책회의를 다녀오신 다음날 문제가 발생하였다. 6학년 캠프가 교장선생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취소된 것이다. 아이들은 급격한 실망감에 빠졌고, 학부모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이러해지자 학부모들이 캠프가 갑작스레 취소된 자초지종을 듣고자 학교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들은 아연실색, 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답을 들었다. 교장선생님 말씀이 너무도 비교육적이고 황당했으며, 충격적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충북 제천의 한 초등학교 사진에 표시된 시각이 오전 8시 02분을 가리키고 있는 가운데 이 학교 6학년 생들이 '0교시 보충'에 참가하기 위해 교실로 들어가고 있다.
 충북 제천의 한 초등학교 사진에 표시된 시각이 오전 8시 02분을 가리키고 있는 가운데 이 학교 6학년 생들이 '0교시 보충'에 참가하기 위해 교실로 들어가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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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장 말씀은 이랬다.

"성취도평가(일제고사)가 코앞인데 아이들을 놀러가게 할 수 는 없습니다. 그러니 주말에 아이들이 집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학부형들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 대목 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다음 말이 학부모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

"이번 성취도평가(일제고사) 성적이 안 좋으면 내년 예산이 깎인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캠프를 취소해야겠습니다. 그리고 6학년 기말고사도 성취도평가 성적으로 대체할 것입니다."

그래도 항변할 수 없었던 학부모들

이 자리에 참석한 학부형들 일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한 학부모는 "아니 교육자라는 분이 저런 말씀을 해도 되나?"라는 실망감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학교 예산이나 확보 하자고 아이들의 창의적 교육과정을 훼손하고, 기말 시험도 1학기 동안 배운 범위가 아닌 3학년 범위부터 출제되는 일제고사로 대체하겠다고 하다니…."

그러나 이날 학부모들은 그 자리에서 강하게 항의를 하지 못하고 나왔다. 왜냐하면 결의에 차서 말씀하시는 교장선생님에게 반론을 제기한다는 것은 자기 자녀의 남은 학교생활을 담보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이날 학교장이 말한 일제고사 성적으로 학교예산이 깎이고 하는 문제는 사실관계를 더 따져봐야 하겠지만, 지금 일선학교의 분위기로 봐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교육청이 지원할 수 있는 각종 추가 예산을 성적에 따라 배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선 학교의 교감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자신들의 인사권을 교육감이 모두 가져간 상황에서 어떠한 형식으로든 일제고사 결과가 자신들의 교장 승진과 연계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일제고사 점수에 따라 연말에 공개될 학교별 서열이 곧 자신의 승진 서열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40년전에도 일제고사가 있었다. 그러다 중단되었다. 갖가지 문제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그게 다시 부활되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40년전에도 일제고사가 있었다. 그러다 중단되었다. 갖가지 문제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그게 다시 부활되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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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일제고사 돈 폭탄이 떨어졌다

오늘도 도교육청 학력증진지원과 사무실 벽엔 '성취도 평가 D-00일' 구호가 선명하고, 학력신장 공문은 계속 내려온다. 학력신장에 쓰라는 돈 폭탄 부록과 함께.

그리고 아침으로, 저녁으로, 밤 10시까지…. 시시 때때로 교실 곳곳에서 그 전쟁 같은 폭탄연기가 피어오른다. 점수 높은 아이는 상품권, 우수반에는 10만 원, 우수교사(?)에게는 스키캠프가 난무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교육은 없었다. 오직 점수와 등수만 있을 뿐. 어쩌면, 그 폭탄 맛에 교육자들 정신도 혼미해진 것일까? 오늘 밤도 그 초등학교 교실엔 교장선생님의 신념 같은 불빛이 환할 것이다.

참 슬픈 일제고사다. 학교가 미쳤다. 이래저래 이 정부의 경쟁교육이 아이들만 골병들게 하고 있다.


태그:#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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