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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오바마 콘돔'을 팔고 있는 호세 안듀하씨.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오바마 콘돔'을 팔고 있는 호세 안듀하씨.
ⓒ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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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20개국(G20) 행사 포스터에 쥐를 그려 넣었다고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럼, 시청광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콘돔을 판매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수천 명의 관광객들 면상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콘돔 박스를 들이밀며 "오바마 콘돔!"을 외치는 호세 안듀하(43)씨를 보고, 이른바 '쥐벽서' 사건을 떠올렸다.

그 역시 '오바마 콘돔'을 팔았다는 이유로 지난 1년여 간 뉴욕 경찰에 3차례에 걸쳐 체포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욕주 법원은 "안듀하의 콘돔은 수정헌법 제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에 따라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며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래서일까? 이방인들에게 자국 대통령의 사진이 새겨진 콘돔을 파는 그의 표정은 의기양양해 보였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했더니 "마음대로 사진을 찍으라"며 포즈까지 취해준다. 그는 한국을 잘 안다고 했다. 그에게 "한국에서 대통령의 사진이 새겨진 콘돔을 판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더니, 휙휙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해대며 "삥삥삥, 이렇게 두드려 맞을 걸?"하고 웃는다.

'오바마 콘돔'에 새겨진 "희망은 보호의 수단이 아니다"

"오바마, 매케인 콘돔이요! 페일린 콘돔도 있어요!"

지난 17일 오후(현지 시간), 하루 150만 명, 한 해 47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로 365일 24시간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타임스스퀘어. 마치 시골장터 엿장수의 구성진 가락처럼 노래를 부르듯 리듬을 타는 그의 목소리가 이곳저곳 관광객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멀리서 보면 그의 머리 위로 불쑥 솟아있는 'OBAMA CONDOMS'라고 적힌 선전판이 관광객들 머리 위로 떠다니는 듯 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손바닥만한 대형 콘돔 모형과 작은 콘돔 박스를 신나게 흔들어댔다.

'오바마 기념' 곤색 모자에 '오바마 기념' 흰색 티셔츠를 입고, 승리의 미소를 띤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이 선명하게 새겨진 콘돔 박스를 들고 있는 안듀화씨. 그를 보고 처음엔 오바마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가 들고 있는 큰 박스 안을 들여다보니, '오바마 콘돔'만 있는 게 아니다. '오바마 콘돔' 옆으로 '매케인 콘돔', '페일린 콘돔'이 사이좋게 나란히 줄을 맞춰 정렬해 있다.

호세 안듀하씨는 1년 6개월 전부터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오바마 콘돔', '매케인 콘돔', '페일린 콘돔' 등을 팔고 있다.
 호세 안듀하씨는 1년 6개월 전부터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오바마 콘돔', '매케인 콘돔', '페일린 콘돔' 등을 팔고 있다.
ⓒ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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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콘돔' 포장지에는 "올바른 판단 아래 사용하세요", "희망은 보호의 수단이 아니다"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지난 2008년 대선 당시 그의 캐치프레이즈를 빗댄 것이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의 사진이 인쇄된 '매케인 콘돔' 포장지에서는 "늙었지만 꺼지지 않습니다"라는 기발한(?) 문구를 볼 수 있다. 지난 대선 후보 당시 그는 71살이었다. 낙태에 반대해 온 세라 페일린 전 공화당 부통령 후보를 모델로 한 콘돔은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낙태가 옵션이 아닐 때"라고 쓰여 있다.

역시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이 인쇄된 "궁극적인 경기 부양책"이라는 제목의 콘돔도 있다. 포장지를 벗겨보니, 안쪽에 "미국 경제 상태의 심각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오바마 콘돔'은 모두 검은 색이다. "부시의 대통령직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바마 콘돔'은 덜 효과적이고 실패하는 경향이 생길 것"이라며 "유효기간이 지난 것은 사용하지 말라"는 '사용 팁'도 재미있다.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한 개에 5달러, 2개에 7달러, 3개에 10달러란다. 비싸다고 했더니, "타임스스퀘어에서는 모든 게 비싸다"며 웃는다. 사람들이 많이 살까? "잘 팔리는 날도 있고, 안 팔리는 날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4시간에 80달러어치는 판다"고 한다.

3주 전, 경찰에게 체포됐을 때 상황을 물었다. 경찰은 판매허가 없이 콘돔을 팔았다는 이유로 안듀하씨를 체포했다. 이번이 세 번째 체포였다. 그는 "그들이 내 선전판, 콘돔 등 100달러어치 이상 되는 제품을 모두 가져갔다"며 "나에게는 많은 비용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타임스스퀘어로 돌아왔다. 왜일까?

"경찰은 내 콘돔이 미국 대통령의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하더라. 또한 내가 콘돔을 팔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잡아간다고 했다. 이것은 정치적인 이유다. 하지만 판사는 내가 콘돔을 팔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죄가 없고 합법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콘돔을 팔기 위해 다시 (타임스스퀘어로) 돌아온 것이다."

실제 2011년 초 뉴욕주 형사 법원은 "표현의 자유가 명시된 수정헌법 제1조에 의거해 안듀하씨의 콘돔을 팔 권리가 보호된다"며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린 코틀러(Lynn R. Kotler) 판사는 "콘돔 포장지는 일반서적과 같이 취급되기 때문에 시 당국의 판매허가가 필요 없다"고 판시했다. 안듀하씨가 앞으로도 계속 '오바마, 페일린 콘돔'을 팔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해 준 셈이다.

코틀러 판사가 당시 재판에서 인용한 것은 지난 2005년 뉴욕시 소비자부서에서 보내온 문서였다. 그 문서에는 '버튼이나 티셔츠, 깃발 등에 정치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경우 일반적인 판매 허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안듀하씨가 처음 체포됐던 사건에 대한 것이다. 게다가 뉴욕 경찰은 판결에 불복, 곧바로 항소했다. 특히 경찰은 안듀하씨가 또다시 '오바마, 페일린 콘돔'을 팔 경우 항소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그를 체포할 것이라고 밝혔고, 실제 3주 전 그를 타임스스퀘어에서 세 번째 체포했다.

"나는 세금도 낸다. 나는 판사로부터 (무죄라는) 허가도 받았다. 경찰이 왜 내 콘돔을 불법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뉴욕 경찰은 악당이 되어 가고 있다."

그에게 "왜 경찰에 체포되는 등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오바마 콘돔'을 팔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돈과 즐거움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일을 한다. 그리고 내 일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때문에 좋다. 뉴욕에서는 일이 없거나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할 권리가 있다. 수정헌법 1조에서 보장하고 있다. 1776년 영국으로부터 미국이 독립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게 바로 이러한 권리다."

"'오바마 콘돔'은 무죄, '우리나라 쥐20'은 유죄... 비교되네"

미국의 한 업체가 온라인 등에서 판매하고 있는 '오바마 콘돔', '매케인 콘돔', '페일린 콘돔' (사진 - Practice Safe Policy 홈페이지 화면 캡쳐)
 미국의 한 업체가 온라인 등에서 판매하고 있는 '오바마 콘돔', '매케인 콘돔', '페일린 콘돔' (사진 - Practice Safe Policy 홈페이지 화면 캡쳐)


한국도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곳곳에서 '쥐벽서' 사건이 생기고 있다. 안듀하씨에게 그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사진이 들어간 콘돔을 팔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더니, 대뜸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우리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그게 미국이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순간 안듀하씨가 나를 북한에서 온 기자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에게 "한국도 민주주의 국가다"라고 다시 한 번 또박또박 얘기해줬다. 그제야 안듀하씨는 웃으면서 "모든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가 있다"고 말을 돌렸다.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란다. 안듀하씨가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한국의 한 시민이 자신의 트위터(mulderx2000)에 남긴 글이 떠올랐다.

"'표현의 자유' 미 법원 오바마 콘돔 판매상 무죄 선고~ 우리나라 쥐20 유죄 선고와 비교되며 아무 국가나 선진국은 아니 것 같군요."

'오바마 콘돔'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8년 미국 대선 때다. 한 20대 젊은이가 처음에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그는 곧바로 벤처회사를 만들어 온라인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오바마 콘돔'을 팔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60여 개 국에 50만 개 이상을 판 것으로 알려졌다. 안듀하씨는 이 회사로부터 물건을 받아 뉴욕 거리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를 본 관광객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높은 관심을 보였다. "재미있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폴란드에서 온 한 관광객은 "우와, 이것은 믿을 수가 없다. 사진을 찍고 싶다"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오 마이 갓"을 연신 외치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는 여성 관광객도 있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콘돔을 사는 것 보다는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데 더 열중했다. 쓴웃음을 짓고 돌아서거나 여느 길거리 세일즈를 보듯 무관심하게 스쳐가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다.

경찰이 언제 다시 안듀하씨를 체포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3주 전 체포된 것을 포함해 앞으로 두 건의 체포 사건에 대한 재판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안듀하씨는 '오바마 콘돔'을 신나게 흔들며 타임스스퀘어 곳곳에 배치돼 있는 경찰들 바로 앞을 아무 거리낌 없이 지나쳐갔다. "오바마 콘돔이요!"라고 콧노래를 부르며.

호세 안듀하씨는 1년 6개월 전부터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오바마 콘돔', '매케인 콘돔', '페일린 콘돔' 등을 팔고 있다. 뉴욕 경찰은 그가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3차례에 걸쳐 체포했다.
 호세 안듀하씨는 1년 6개월 전부터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오바마 콘돔', '매케인 콘돔', '페일린 콘돔' 등을 팔고 있다. 뉴욕 경찰은 그가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3차례에 걸쳐 체포했다.
ⓒ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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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바마 콘돔, #쥐벽서, #매케인 콘돔, #페일린 콘돔,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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