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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맛쇼>는 거대 미디어의 조작과 기만에 대한 의심이었을 뿐"
 <트루맛쇼>는 거대 미디어의 조작과 기만에 대한 의심이었을 뿐"
ⓒ 김재환 / 영화사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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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는 이번이 첫 경험입니다. 일반 시민의 눈으로 바라본 미디어를 '역지사지' 퍼포먼스로 말한 것뿐이에요."

최근 지상파를 제외한 다른 언론매체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전직 MBC PD의 말이다. '마이클 무어도 울고 가겠다'라는 평가를 받는 이 남자. 바로 맛집 프로그램이 만들어 놓은 '뭔가 잘못된 것'들을 까발린 <트루맛쇼>의 김재환 감독이다. 작정하고 만든 것 같은데 MBC에 있을 때부터 <트루맛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까?

"MBC에 있을 때 교양국에서 일했어요. '와! e 멋진세상' 같은 가볍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했죠. 솔직히 MBC 있었을 때는 일하느라 바빠서 그럴 겨를이 없었죠. 죽어라고 일만 하다가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서 퇴사했죠. 퇴사 후에 'MBC 스페셜'을 한 세 편 정도 했을 거예요.

저는 일반 시민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방송에서 나온 이야기가 다 진실일까?'라는 의심을 한 것뿐이에요. (미디어 권력 같은) 어려운 이야기를 묻고자 한다면 취재원을 잘못 고르신 것 같은데요? 하하."

이 감독. 지나치게 겸손하다. 영화에서 그렇게 미디어를 까발려 놓고선 저리도 방어막을 치다니.

"방송사 지금까지 무시험 전형... 당황했을 거다"

<트루맛쇼>
 <트루맛쇼>
ⓒ B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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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맛쇼>는 지상파의 음식 프로그램에 출현하는 맛집의 허와 실을 속시원하게 까발린 다큐멘터리다. 영화에서 김재환 감독은 '가짜 맛집'을 차려 맛집 섭외 전문 브로커에게 1000만 원을 건넨 후 음식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개가(?)를 올리기도 한다. 덕분에 MBC가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강경대응을 하기도 했다.  

이 영화가 폭로한 내용은 관객들에겐 충격인 동시에 거대 방송사에겐 직격탄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SBS는 코너를 폐지시키고, MBC는 법정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등의 호들갑을 떨지 않았던가. 근데 참 신기하다. 호들갑만 있었고 사과는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방송사는 판단만 해왔어요. 역으로 누군가에게 판단을 받은 적은 없었죠. 오답정리를 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매번 무시험 전형으로 성과를 내 왔으니 비판에 당황할 수밖에 없는 거죠. '증오가 가득 찼다'고 보여지지도 않는 개인이 처음으로 툭 찔렀으니 더욱이 당황할 수밖에."

어찌됐건 그는 영화 <트루맛쇼>를 통해 '지금 시대 미디어의 본질이 돈과 권력에 있다'는 진실을 참 재미나고 아프게 폭로했다. 그런데, 그런 조작과 기만이 대중한테 먹히는 것은 대중들이 '멍청이'여서 그런 것일까.

"시청자가 보잘 것 없어서 이런 것인지, 방송사가 수준이 그렇다 보니까 시청자가 이렇게 된 것인지 정확한 답을 낼 수는 없다고 봐요. 하지만 거대 미디어에 '알고 보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교양'이나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대중이 더욱 잘 살게끔 하는 프로그램'이 없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엄청난 양의 미디어를 공급하는 방송사들, 그리고 합리적 감상을 하지 못하게 되는 대중이 '아 이거 100% 진실이 아닐 수도 있겠는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었다는 것이죠. 되레 방송사가 '이렇다'하면 대중은 그걸 블로그를 통해 무비판적으로 '확대 재생산'해내잖아요."

그러고 보니 기자도 <트루맛쇼>에 나온 돈가스집에서 꽤 자주 칼질을 했었다. 일 년에 9억 원을 버는 대박집으로 방송을 탄 돈가스 집이지만 주방에서는 조리사가 담배를 태우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 돈가스 집 말고 영화에 나오는 그 설렁탕집 있잖아요. 최고라는 찬사도 모자라 이명박 대통령까지 드시고 가셨다는 그 집말예요. 부풀리고 부풀려지니까 사람들은 '아! 육수를 저렇게 내는구나! 멋지구나!'라는 반응을 보이게 되잖아요. '대통령도 갈 만하구만!'이라면서요. 근데 한 쪽에서는 더럽다고 고발 당하잖아요. 참 충격적인 거죠."

곳간에서 인심... 김재철 MBC 사장의 천박한 멘트

영화 <트루맛쇼>
 영화 <트루맛쇼>
ⓒ B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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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루맛쇼>의 '맛집 프로그램에 나와 대박이 났다니 한 번 가봐야 겠다. 그것은 미식이 아닌 탐식'이라는 그 멘트가 뇌리를 스쳤다. 영화는 그 탐식을 '천박성'이라고 했다.

"방송사는 외주 제작사에게 제작비를 적게 주고 제작권은 다 가져가요. 그 속에서 외주 제작사는 협찬이라는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방송사는 돈을 벌죠. 게다가 시청자들의 허영심까지 결합이 되면 천박성이 나타난다고 봐요. 근데 문제는 맛에 관련한 이야기에만 이 등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서 드러나요. 미디어는 맛뿐만 아니라 진심, 마음, 생각 등을 시각과 청각 이미지로 전달해야 하니까요. 가짜가 개입할 여지가 상당히 큰거죠.

정치를 예로 들어볼까요? 한 정치인이 있다고 칩시다. 미디어는 그를 신뢰와 정직을 기반으로 삼고, 경제에 대한 깊은 식견이 있다고 조명해요. 게다가 그는 서민 경제 활성화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다고 포장을 하죠. 그리고 나서 유권자는 그 이미지에 열광적 지지를 보내고 투표소 가서 그를 찍어버립니다. 합리적인 시점에서 본 것이 아니라 이미지에 속은 것이죠. 이렇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을 합리적인 유권자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니에요. 천박한 유권자죠. 하하."

결국 미디어가 만들어낸 가짜 이미지가 천박성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조작과 기만은 우리의 혀끝에만 캡사이신을 뿌려대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모든 영역에 뿌려지고 있다는 말이다. 암울하기 짝이 없다. 방송사는 조작과 기만에, 시청자는 천박성을 가지고 있다는데, 그것도 모자라 거대한 '돈과 권력'을 등에 업은 종편까지 달려오고 있다니….

"광고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팽창되지 않는 이상 종편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을 것으로 봐요. 그래서 아마 <트루맛쇼>가 제기한 문제들이 더 심각해질 것 같습니다. 비정상적인 관습들과 대박의 욕망이 낳은 협찬 문제가 사라지진 않겠죠. 근데 정말 중요한 것은 말이에요…. '늘어난 방송사들이 채널을 어떤 콘텐츠로 채울 것이냐'라는 건데, 글쎄요. 전 좋은 콘텐츠로 채워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에는 MBC 김재철 사장의 신년사가 등장한다. 김 감독은 '과연 MBC가 지금 이 상태로 김재철 사장이 말하는 콘텐츠의 시대를 선도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제기였다고 했다. 그럼 김재철 사장이 말하는 콘텐츠란 무엇이었을까.

"제가 본인이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김재철 사장이 생각하는 '콘텐츠의 시대'의 그 콘텐츠가 무엇인지는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에 'W'랑 <후플러스> 없앨 때 그분이 그랬죠?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공영방송사 사장이 뱉을 수 있는 멘트 중에 가장 천박한 멘트였다고 생각해요.

최근 단행한 인사나 뭐 이런 것들을 종합하면 답이 나와요. '곳간에서 인심이 나야만 만들 수 있고, 제작에 있어서 'PD수첩' 이우환·한학수 PD들은 필요 없는 콘텐츠'. 뭐 이 정도 아니겠어요?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자꾸 공적인 자리에서 친정 욕하면 좀 그렇잖아요. 하하(김재환 감독은 MBC 공채 PD 출신이다)."

캡사이신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별 거 없다

ⓒ 김재환 / 영화사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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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할 말 다 해놓고선 피해간다. 아무렴 좋다. 그럼 그런 콘텐츠가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영화에서 '너무 오랫동안 쓰레기들이 나 뒹굴고 있었다. 이제 청소할 시간이다. 자 이제 치우자'라고 하죠? 시청자는 합리적인 의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안에 대해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누구라도 그것에 대해 정확하게 비판하고, 그 비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무엇인가를 고발하는 것. 그것이 꼭 <뉴스데스크>나 'PD수첩', <추적60분> 같은 데서만 해야 하나요? 그런 의식을 버려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방송사나 기자나 PD같은 언론인들도 '성역을 건드리면 피곤해. 좋은 것이 좋은 거야'라는 의식을 버려야겠죠. 쿨하게 비판하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 견제구가 필요한 것들이 참 많잖아요."

하지만 일개 소시민이 거대한 권력에 견제구를 던지기는 너무 부담이 크지 않을까. 가령 '아무개18놈아'식의 트위터 계정은 꽤나 호된 홍역을 치르지 않았던가.

"솔직히 말하면 <트루맛쇼>는 오랜 기간 동안 시간과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나왔지만 요새 개인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창구가 얼마나 많습니까. 트위터나 페이스북, 개인 블로그 등 참 많잖아요. 조작과 기만을 무비판적으로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그게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드러내야죠. <트루맛쇼>는 제가 속한 영역에서 영화라는 방식으로 견제구를 던진 것이었고요."

<트루맛쇼>는 저명한 맛 평론가의 '당신이 먹는 것을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겠다'는 표현을 빌려, 이를 미디어에 그대로 적용시켰다. 김재환 감독에 말에 따르면 "당신이 보는 신문·방송을 알려주면 당신이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주겠다"라는 이야기란다.

"맛과 미디어, 그리고 미디어의 맛. 각자가 가진 기준으로 고민해 보고 거리낌 없이 합리적 의심과 비판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세상도 좀 더 공정해지지 않겠어요? 하하."

'무엇인가 아닌 것 같아'라는 예민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맛'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자신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분야,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태그:#트루맛쇼, #김재환, #미디어, #방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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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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