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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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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대관령 바우길'을 걸었다. 대관령 바우길, 이라고 하면 '아, 바우길'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던데, 널리 알려진 '그 바우길'과 같은 길은 아니다. 그렇지만 같은 '바우길'에 포함되는 것도 맞다. 너른 의미에서 대관령 바우길은 바우길에 포함된다.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 대관령 바우길은 '바우길'과 다르다.

대관령 바우길은 바우길 탐사대와 대관령 눈꽃마을 주민들이 함께 길을 찾고 이어서 만든 길이다. 현재 대관령 바우길 1구간은 잘 이어져 있어 누구든 찾아가 길을 표시하는 리본을 따라 걸으면 된다. 그러나 2구간과 3구간은 아직 개통되지 않은 상태다.

2구간은 일부 구간이 마을이나 주변 목장이나 주민들과 협의가 완전하게 끝나지 않은 상태이고, 3구간은 아직 길 작업이 완료되지 않았다. 해서 2구간을 걸으려면 대관령눈꽃마을(평창군 대관령면 차항2리)과 미리 협의를 해서 길 안내를 받아야 한다. 길이 있다고 무작정 걸으러 갔다가는 어느 집 목장에 갇힐 수 있다. 대관령 바우길 2, 3구간은 길 정비가 끝나고, 길 표시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도보여행에서 1구간은 길 표시를 따라 걸었고, 2구간은 숲해설가이자 소심원 쥔장인 최종서씨가 길 안내를 해주셨다. 아직 길이 확정되지 않은 3구간은 눈꽃마을(차항2리) 정호일 사무장과 함께 걸었다. 함께 걸으면서 길 안내와 더불어 숲 해설도 더불어 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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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바우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찾아가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그만큼 오지라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가 될 수 있겠다. 대관령 바우길 1구간인 '양떼목장 둘레길'은 구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휴게소에서 시작되는데, 강릉에서 이곳까지 평일에는 노선버스가 운행되지 않는다. 그나마 주말에 1회 운행되는 버스가 있지만, 그 버스를 이용하려면 시간을 아주 잘 맞춰야 하므로 아예 없는 셈 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관령 바우길을 걸으려면 이동수단인 차량이 꼭 필요하다. 운전면허가 없는 나, 이번 여행에 운전면허와 더불어 차량까지 소유하고 있는 동생과 동행했다. 다시 말해 동생이 나의 전용기사가 되어 운전도 하고, 도보여행도 더불어 했다는 얘기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속설이 있던데, 도보여행에 미친 언니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강도 높은 훈련(?)을 어쩔 수 없이 받던 동생이 이번 도보여행에서는 제법 잘 걸어 나를 놀라게 했다. 아니, 언제 이렇게 걸음이 빨라지고 체력이 짱짱해진 것이야? 역시 체력단련에는 도보가 제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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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7시 20분, 대관령을 향해 출발했다. 목적지는 대관령 바우길 1구간 출발지인 구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휴게소.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횡계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가면 된다. 대관령 휴게소에는 주말이라 차량들이 잔뜩 몰려 주차장이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대관령 휴게소 건너편에 있는 신재생에너지전시관 앞에 차를 세웠다.

대관령 바우길 1구간을 걸으려면 이곳에 주차하는 것이 더 좋다. 대관령야생화숲길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차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주차공간이 넓어 좋다.

바우길 구간지도에 표시된 대관령 바우길 1구간 '양떼목장 둘레길'은 전체 길이가 12.3km. 걷는데 걸리는 예상시간은 4~5시간 정도. 길이 완만하고 오르막이 별로 없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길은 서둘러 앞만 보고 걸으면 나중에 후회한다. 길 초입이 야생화숲길이라 길을 따라 다투듯이 피어 있는 야생화들을 보고 즐기면서 걸어야 제 맛이 나는 길이므로.

매발톱꽃
 매발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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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야생화숲길에도 매발톱꽃들이 잔뜩 피어 있다. 올해 유난히 매발톱꽃을 많이 보는 것 같다. 매년 자주 보이는 꽃이 달라지는 것도 신기하다. 꽃들이야 계절이 되면 알아서 피어나는 것이니, 꽃을 보는 내 관심이 그때그때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해, 내 마음가짐에 따라 혹은 걷는 길에 따라 유독 자주 눈에 띄는 꽃들이 변하는 것이리라.

매발톱꽃은 보랏빛 꽃만 보았는데, 이번에 대관령에서 처음으로 하얀 꽃을 보았다. 소복을 입은 자태 고운 여인네 같아 저절로 걸음이 멈춰졌더랬다. 꽃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 나이를 먹은 탓이라는데 내가 그런가 보다.

구간이 정해진 길을 걸을 때는 길 표시를 잘 찾아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마련. 대관령 바우길에도 바우길과 같은 하얀 리본과 빨간 리본이 곳곳에 매달려 길을 알려주는데, 꽃을 보다가 나무를 살피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리본을 못 보고 지나치기도 한다. 길이 외줄기로 뻗어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길이라는 게 어디 그러나. 샛길로 빠져 나가는 길도 있게 마련인데 미처 그 길을 보지 못하고 내처 걷다가 다른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걷다보면 심심치 않게 길을 잃게 된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그랬다.

은방울꽃. 대관령 바우길 2구간 고원마루길에 군락지가 있다.
 은방울꽃. 대관령 바우길 2구간 고원마루길에 군락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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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길을 잃기 딱 알맞은 지점이 있었다. 야생화숲길을 걸은 뒤 임도로 빠져 걷다가 구 영동고속도로를 건너 숲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지점을 지나쳐 한없이 걸은 것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이런, 리본이 안 보인다. 에구구, 지나쳤구나. 이 길로 가 보고, 저 길로 가보다가 이 길이 아닌가베 하면서 다시 길을 되짚어 왔다. 이번에는 작은 눈을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힘을 주면서 크게 뜨고 길을 살피고 또 살피지만, 리본은 숨바꼭질을 하는지 꽁꽁 숨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군부대 앞에서 길 건너 도로표지판 뒤에 붙어 바람에 나부끼는 리본을 발견했다. 길은 숲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길을 찾느라 한 시간 이상 엉뚱한 길에서 헤맸다!

바우길 리본
 바우길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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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에서 조성한 '국민의 숲'으로 들어가니 조림이 잘 된 숲이 나온다. 길은 그야말로 융단을 깐 듯 푹신거리고, 나무들은 푸른빛을 거침없이 내뿜고 있었다. 그런 길을 걷는다는 건, 행복의 극치를 느끼는 것과 같다. 그 만족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숨을 크게 내쉬고 들이쉬면서 걷는 길, 숲속에서 뻐꾸기가 오래 그리고 길게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음에, 걸을 수 있는 건강함에 감사하면서 걸음을 내딛는다. 바람이 살랑거리면서 불어와 걷느라 이마에, 겨드랑이에 이슬처럼 송송 맺힌 땀을 식혀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늦은 아침밥을 먹었더니 시장기가 느껴지지 않아 간식으로 준비한 빵과 토마토를 먹으면서 쉬었다. 이 길, 중간에 마을을 지나가므로 그곳에 있는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함박꽃. 지금이 함박꽃이 활짝 피는 계절.
 함박꽃. 지금이 함박꽃이 활짝 피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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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갈나무 숲에서 다시 길을 잃었다. 길은 외줄기로 곧게 뻗어나가는데 이런,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만큼 걷다가 아무래도 길이 아닌 것 같아 온 길을 되짚어나가기로 했다. 십여 분 이상을 걸어 리본이 매달린 나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는데, 잘못 들었다고 여겼던 길이 맞는 것 같다. 그 길 외에는 샛길이나 그 비슷한 길도 없다.

숲은 나무와 풀로 우거지고, 길은 사람의 발걸음이 드물게 오간 듯 잘 보이지 않는다. 웃자란 풀들이 바짓단을 툭툭 치기도 하고 휘감아 들기도 한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나와 동생, 이렇게 둘밖에 없다.

"언니 혼자 왔으면 무서웠겠다."

동생의 말에 웃었다. 혼자 이런 길을 여러 번 걸었기 때문이다. 이런 숲에서 혼자 길을 잃고 헤맨 적도 많다. 무서울 때도 있지만 호젓한 느낌이 들 때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은 뒷덜미가 땡기기도 했다. 그럴 땐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면서 성큼성큼 걸었더랬다. 길을 잃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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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갈나무 군락지를 따라 한참을 걸으니 숲이 점점 더 깊어진다.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길 끝에 표지판이 나타난다. 선자령과 대관령 갈림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었다. 선자령 방향은 바우길 1구간 선자령 풍차길로 가는 길이요, 대관령 방향은 바우길 2구간인 대관령 옛길로 가는 길이다. 이 분기점에서 대관령 휴게소까지 가는 길은 대관령 바우길 1구간과 바우길 2구간이 겹쳐진다. 이곳에서 대관령 휴게소까지 거리는 2km남짓이니 거의 다 온 셈이다.

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멀리서 쿵쿵거리는 타악기 소리가 들려온다. 대관령국사성황당에서 한창 굿판이 벌어진 모양이다. 이 길, 대관령 양떼목장을 끼고 도는 구간이 남아 있다. 목장을 따라 울타리가 쳐져 있다. 울타리 안에 양은 보이지 않고 양떼 구경을 온 사람들만 보인다.

자동차를 세워둔 신재생에너지 전시관에 도착해서 시간을 확인하니 5시 반이다. 12시 반 즈음에 걷기 시작했으니 휴식시간 포함해 얼추 다섯 시간을 걸었다.

대관령 바우길 1구간 양떼목장길(12.3km)

대관령하행휴게소 → 야생화숲길 → 능경봉입구(샘터) →  국민의숲 트레킹코스 → 남경식당 → 레포빌팬션  →  잎깔나무숲길(제궁골) → 바우길1구간 분기점 → 바우길2구간 분기점 → 양떼목장 → 대관령하행휴게소


태그:#도보여행, #강원도, #대관령바우길, #바우길, #눈꽃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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