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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원 안에 있는 교회에 목사님 자리가 잠시 비어 있어서 원생들은 모두 동산교회라는 곳을 다녔습니다. 동산교회는 모자원에서 제법 떨어진 작은 산, 그러니까 교회 이름처럼 작은 동산 위에 있었습니다. 당시 모자원 규칙이었는지 모르지만 모자원 사람들은 모두 교회에 다니거나 안 다니거나 둘 중 하나였지, 절에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자원 내에 있는 교회에 잘 안 나오는 사람도 체크를 했으니까 아마 교회를 다녀야 하는 조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지만 당시에는 교회에 다니는 것을 즐거워 했습니다. 특히 수요일 저녁예배 때 전도사님이 해주는 옛날 이야기는 지금의 미스터리 영화를 보는 것처럼 조마조마 했습니다. 전도사님이 여러 가지 목소리로 연기까지 해가며 해주는 얘기가 가장 재미있는 부분에서 다음 주 수요일까지 미뤄지면 그 얘기가 듣고 싶어 수요일 예배를 기다리고는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되었는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열심히 다닌 덕분에 크리스마스 전날 교회에서 하는 연극에 내가 주인공으로 발탁이 된 것입니다. 제목은 '엉터리 이발사'였는데 아마도 이발사가 호기심이 많아 연구 끝에 대머리에 머리카락을 자라게 한다는 게 잘못되어, 머리카락 있는 사람도 대머리를 만들어 놓고 대머리는 턱에 수염이 자라게 하고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열심히 율동과 함께 '엉터리 이발사' 연습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드디어 작은 교회 안 기다란 의자 위에 앉은 부모님과 친구들이 모두 지켜 보는 앞에서 연극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엄마와 오빠 언니는 오지 못했지만 이미 나도 집안의 사정을 잘 아는 터라 그런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연극을 하던 도중 나는 대사를 까먹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해도 대사가 생각나지 않자 나는 시간을 벌 요량으로 앞 줄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머리 위에도 물로 만든 가짜 약을 막 뿌리기 시작하자 교회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원래 그런 내용인 줄 알았는가 봅니다. 다행히 대사가 생각났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 다음 연기를 펼치고 연극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그리고 내가 놀란 것은 무대 연극이 끝나자마자 교회의 큰 문이 열리고 시원하면서 차가운 바람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것을 한번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내게도 작은 선물을 나눠주고는 교회문을 빠져 나갔습니다.

 

물론 산타할아버지는 전도사님이 분장을 하고 나타난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산타클로스는 내게 진짜 산타클로스였습니다. 너무도 신선한 감정이었으니까요. 나는 지금도 가끔 사는 게 힘들어질 때면 그때의 산타클로스를 생각해봅니다. 살면서 '지금의 내게 산타클로스는 과연 무엇일까' 하고 말이지요.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태그:#엉터리 이발사, #산타클로스, #동산교회, #학현이,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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