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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조합원 아내들이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환영하는 푯말을 들고 있다.
 한진중공업 조합원 아내들이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환영하는 푯말을 들고 있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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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들이 나타났다. 파업 중인 한진중공업 조합원 아내들이다. 아내들은 한 글자씩 쓰인 패널을 높이 들고 있다. 그런데 한 아내가 무언가를 안고 있다. 아기일까? 가까이 갔다. 작은 아기 머리가 보인다. 엄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자는 아기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앳된 얼굴의 아기 엄마에게 물었다.

"몇 개월이에요?"
"11개월이에요."

짠하다. 어린 녀석이 엄마 따라 다니느라 고생이다. 아내들이 무대로 올라가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내려온다. 아기엄마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인터뷰를 청하고 아내들이 가는 곳을 따라갔다.

"언니, 제가 지금 남편한테 들러야 하는데... 남편이 우리 아기를 못 봐서 보여주어야 할 거 같아서예. 같이 가시면서 이야기해도 되지예?"

나더러 언니란다. 살가운 사람이다.

"아까 무대에서 하신 말 들어 보니 아침에 사정해서 들어왔다던데, 어젯밤은 어디서 보내신 거예요?"
"공장 밖에 있었어예."

참으려 하는데도 눈물이 나온다. 이 어린 녀석이 어젯밤, 바람을 맞으며 노숙을 했다니.
아기 엄마를 따라 건물 3층으로 갔다. 어두컴컴하다. 곳곳에 일인용 텐트가 쳐져있다. 한 텐트 앞에서 아기 엄마가 멈춘다. 남편이 자는 텐트다. 아픈 남편은 아내와 아기가 왔는데도 일어나지 못한다.

"감기 몸살이야? 약사오라 하지."

어린 아이와 엄마의 노숙... 누구 탓일까요?

아기를 안고 있는 두 엄마
 아기를 안고 있는 두 엄마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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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엄마 목소리에 안쓰러운 마음이 담겨있다. 가족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을 떨어져서 바라보았다. 

"언니, 이제 5층에 올라가예. 아기 젖 먹여야 할 거 같아서예."

5층은 희망버스 타고 온 여자들의 숙소로 쓰이는 곳이다. 5층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많아야 20대 후반처럼 보인 아기 엄마는 나이가 서른 세 살, 남편은 아내보다 2살이 많단다. 아이는 11개월 된 성민이 하나다. 아기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얼마나 배고 고팠는지 아기가 허겁지겁 먹는다.

"정리해고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아기가 몇 개월이었어요?"
"막 뒤집으려고 할 때니까 4개월 정도요."

"언제부터 정문에 아기랑 있었어요?"
"금요일 오후에 엄마들이 희망버스 오실 분들 먹이려고, 몇몇 집에 모여서 반찬 준비하고, 아이들 공연하려고 총연습하고 있었거든예. 그런데 용역업체 직원들이 공장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왔서예. 아빠들이 다쳤다고 소식도 오고예.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예. 그래서 급하게 아이들 맡기고 저녁 8시 반에 공장 정문으로 모였지예. 우리 아기는 너무 어려서 데리고 왔고예. 그런데 좀 있다가 싸움이 멈췄다고 하고 공장에서 제일 가까운 집에 모두 가서 잤지예. 다음 날(토요일) 아침 7시에 라면 먹고 공장 정문에 나와서예. 어제 저희가 서울 희망버스 오셨을 때 이 피켓 들고 눈물 흘리며 반가워했었잖아요."

생각이 난다. 정문을 막고 있던 2층 컨테이너 그 앞에 서 있던 노란 모자 용역들. 그리고 그 옆에 "당신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피켓을 들고 환호의 박수를 보내던 엄마들. 이들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공장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정문 앞에서 밤을 꼴딱 샌 것이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58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김진숙 지도위원을 지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희망버스'를 기획했던 송경동 시인이 기획팀인 '깔깔깔' 회원들과 촛불행진 도중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58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김진숙 지도위원을 지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희망버스'를 기획했던 송경동 시인이 기획팀인 '깔깔깔' 회원들과 촛불행진 도중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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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사정하고 정동영 민주당 의원이 도와주셔서 오늘(일요일) 아침에 겨우겨우 들어왔어예."
"아기 밥은 어떻게 먹였어요?"
"우산으로 가리고 젖 먹였지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기가 저리 어리면 숙소가 좋아도 여행 가는 것도 꺼려지는데 노숙이라니. 온종일 밖에서 기저귀는 또 어떻게 갈아주었을까?  

"엄마들은 밥을 어떻게 먹었어요?"
"아침은 라면 먹고 나왔고예. 점심은 밀면 시켜 먹고, 저녁은 부산·광주에서 오신 분들 저희가 주먹밥을 대접해 드리기로 해서 그것 같이 먹었지예."
"밥은 어떻게 했어요?"
"방앗간에서 쪄 달라고 주문을 했지예."

"희망버스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하셨어요?"
"희망버스 타고 오시는 분들이 아주 아주 많이 와서 우리랑 같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했어예."
"지금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제가 학교에서 강사일 시작했어요. 그래서 몇십만 원 정도 벌어예."
"아기는?"
"4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냈어예."

맘이 아프다. 4월이면 9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녔다는 말이다.

"어린이집에 적응은 잘했어요?"

적응? 9개월 아기가 무슨 적응을 할까.

"아프고 스트레스받아 울고 밥 안 먹고 그랬죠."
"남편분은 정리해고 대상자예요?"
"대상자예요."
"남편분은 며칠에 한 번씩 집에 들어오세요."
"한달에 한 번이요. 해고자이기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세운 거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들어 와도 예비군 훈련 같이 밀린 일 해야 해서 가족과 시간 보내기도 힘들어요."

첫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나도 첫 아이를 키우면서 참 힘들어했다. '산후우울증'이란 한 단어로 간단히 설명되는 그 상황이 참 외롭고 힘들었다.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살았던 스물일곱에 첫 아이를 낳았다. 내가 한 생명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존재인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깨닫게 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 엄마라는 이름이 내 삶에 얼마나 제약을 가져오는 이름인지 알게 되는 그 과정이 참 힘들고 외로웠다.

그 시절, 나는 오후 4시 반에 친정에 전화를 했다. 그 시간은 건물청소일 하는 친정엄마가 집에 들어오시는 시간이다. 투정 어린 내 전화에 친정엄마는 "아기 키우면 남이 다 해준 밥 먹는 것도 힘든 거야. 오늘 밥은 어떻게 챙겨 먹었어?" 하고 물으셨다. 엄마는 항상 힘들어하는 나를 다독여주고 안쓰러워하셨다.

엄마와 전화가 끝나면 나는 또 저녁에 퇴근할 남편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매일 전화 통화 해주는 친정엄마와 저녁이면 집에 들어오는 남편이 없었다면 그 시절을 어떻게 내가 버틸 수 있었을까? 그런데 11개월 성민이 엄마는 남편이 사라진 집에서 7개월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

"직장 다니며 아기 키우기 힘들 텐데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님이 도와주세요?"
"친정엄마가 장 보실 때 저희 것도 같이 봐다 주세예. 엄마가 물으세요. '돈 없지?' 그럼 내 '돈 있다' 그러고 말해요. 속상하실까 봐 돈 없다는 말 못하겠어예."

11개월 성민이의 일상은 왜 이리 험할까요

아빠에게 손 내미는 아기의 모습
 아빠에게 손 내미는 아기의 모습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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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변을 봤다. 기저귀를 갈아 줘야해서 인터뷰를 마쳤다. 무엇보다 성민이가 안쓰러웠다. 11개월 성민이가 감당하기에는 참 힘든 현실이다. 그런 아이를 돌보고 지켜야 할 엄마는 또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다음날(12일) 오후 3시 서울로 돌아가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김진숙씨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저는 우리 조합원들이 혁명적 투지로 무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6개월 전까지 살아왔던 삶을 지켜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저녁이면 땀 냄새 풍기며 집에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는 그 소박한 일상들을 지켜내고 싶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김진숙씨의 마지막 말을 듣고 한진중공업 동문 쪽으로 향했다. 문앞에서 가족들이 울먹이며 양말을 선물로 나눠준다. 양말에는 아기 사진과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추억 만드시고 가세요"라고  정성스럽게 쓴 쪽지가 들어 있다.

11개월 된 성민이가 아빠 엄마와 저녁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 길거리 은박깔개 위에서 찬바람 맞으며 자지 않아도 되는 그 소박한 일상. 그 일상을 돌려받는 일이 왜 이리 힘들고 먼 일인지 모르겠다.

왜 어린 성민이가 이 고생을 해야 할까? 누구의 탓일까?

희망버스 참가자에게 가족들이 선물로 준 양말과 감사 글
 희망버스 참가자에게 가족들이 선물로 준 양말과 감사 글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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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원회 후원계좌 : 부산은행 259-120436-107 변은경



태그:#한진중공업, #희망버스, #가족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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