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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금요일 오후 3시경 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문자가 왔다.

 

"한진 500명의 용역 침탈. 결합할 수 있는 분들 빨리 한진으로!"

 

처음 문자를 받았을 때는 일을 끝내고 전화로 확인해보리라 마음먹고 쉽게 지나쳤다. 하지만 똑같은 문자가 계속 오자 심각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을 접고 한진중공업으로 친구들과 달려갔다.

 

한진중공업에 5시경 도착하였다. 심각한 문자 내용과 같이 용역이 회사의 곳곳에 있었고 한진 조합원들은 용역들과 대치 중이었다. 공장의 모습이 마치 전쟁을 치르고 난 후의 소강상태와 같이 곳곳에 쓰레기와 볼트와 너트가 흩어져 있었고, 분위기도 극도로 긴장되어있었다. 조합원들은 모자와 마스크를 푹 눌러 쓰고 담배를 뻐끔뻐끔 피며 긴장감을 강제로 억누르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내가 도착하기 전에 용역들과 물리적 충돌으로 조합원들 몇몇이 부상을 당했다고 했다. 소강상태가 지속되고 용역들은 사람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한진중공업 모든 출입구를 봉쇄하였다. 이런 소식을 SNS와 문자메시지 같은 수단을 통해 널리 알렸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았다.

 

같은 시간에 부산 서면에서 '반값등록금 실현! 6·10시민대회'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의 사정을 알면서도 순간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시민대회에 모인 사람들이 한진으로 왔다면 용역 500명은 쉽게 집으로 귀가시킬 수 있는데'라는 아쉬움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광화문에 치킨이 있다면 한진중공업엔 라면이 있다

 

소강상태가 지속되자 한진 조합의 집행부는 대치를 중단하고 공터에 모여 이후 일정을 공유하며 하루를 정리하였다. 한진 노동조합 집행부는 조합원들에게 오늘 밤은 술을 자제할 것을 부탁하였다.

 

"조합원 여러분, 오늘은 전쟁의 시작일 뿐입니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술을 조금씩만 하시길 바랍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한번 투쟁해봅시다. 투쟁!"

 

조합원들 모두 각자 숙소로 돌아가고 나와 20대 친구들이 머뭇머뭇거리고 있자 한 조합원이 배고프지 않냐며 따라오라고 했다. 작은 컨테이너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용기와 냉장고와 식탁이 있었다. 오늘 고생했다며 라면이라도 많이 먹으라며 라면 10개와 김치, 소주 한 병을 주었다.

 

라면 맛은 끝내주었다. 비록 서울 광화문에서처럼 연예인과 386세대 선배들이 사주시는 피자와 치킨은 없었지만, 조합원들의 라면은 우리의 배와 가슴의 뜨거움을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라면을 든든하게 먹고 귀가할까 하다가 한진중공업의 조합원들을 이대로 그냥 두고 가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그리고 지금 나가면 다시 한진 공장 안으로 들어오기 힘들다는 말에, 외박을 할 준비도 되지 않았지만 한진 생활관에서 숙식을 선택하였다.

 

한진중공업 집회를 지난 1월부터 계속 참가해보았지만 조합원들이 집회를 하지 않는 시간에 파업 투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번 숙식을 하면서 조합원들이 얼마나 외롭고 지루한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생활관에는 조금이라도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놀이 도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게임, 바둑과 장기, TV 시청 등을 하며 지루함을 이겨내고 있었다. 우리도 함께 생활관에서 먹고 자면서 조합원들의 일상과 해고 사유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생활관 곳곳에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을 깨고 조합원들 사이를 이간질했던 직원들에 대한 분노의 낙서도 찾아 볼 수 있었다.

 

"형님은 외출 5번 했다고 해고당했다. 이가 아파서 회사에게 정식으로 외출 신청을 했고 그 당시에는 회사 쪽에서도 아프니깐 빨리 치료 받고 정상의 상태에서 출근을 하라고 했는데. 근데 갑자기 회사에서 나를 해고시키드라. 인사과에 찾아가서 해고 사유를 물어보니 그때 외출한 5번이 문제였다는 어이없는 얘기를 하질 않나."

 

"희망버스 온다!" 삽시간에 도망간 용역들

 

11일 토요일 아침 7시 갑자기 옆에 자고 있던 조합원들이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나와 친구들도 잠을 덜 깬 상태로 영문도 모른 채 달려나갔다.

 

정문 앞에 있던 용역들이 공장 안으로 진입하여 조합원들이 그 근처에 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삽시간에 정문은 컨테이너박스로 봉쇄되고 어제 보다 많은 수의 용역들이 공장 곳곳을 막고 있었다. 이제 한진에 연대를 하러 오는 사람들도 공장 안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정부가 촛불 시민을 막기 위해 '명박산성'을 쌓았다면,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에서는 '정리해고 철폐'를 요구하는 조합원들을 막기 위해 '한진산성'이 만들어졌다. 3년이 흘렀지만 약자의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방법은 똑같았다.

 

10일까지는 그래도 밖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12일 새벽 0시경에 전국 각지에서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진중공업에 연대하기 위해 달려온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 버스에 천 명이 타고 있다고 하니, 고립된 한진을 구출할 유일한 희망이었다.

 

저녁 7시쯤 지나자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는 부산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봉쇄된 정문을 열기 위한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원회 소속의 조합원 부인들과 참가자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공장 안으로 넣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밤 12시가 되자 희망버스가 도착하고 많은 사람들이 한진중공업에 진입을 시도했다. 우여곡절 끝에 희망버스 참가자 천여 명이 공장 안에 진입하자 용역은 최루액을 발사하며 공장 밖으로 도망가버렸다.

 

희망버스 덕에 한진중공업에는 3일 만에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하지만 12일 아침 귀가하는 길에 보니 한진중공업 밖에는 경찰 버스가 가득했고, 용역들은 주변 초등학교에서 여유롭게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배우 김여진씨가 잠시 붙잡히기도 하고 용역과 대치 중에 부상자도 생기는 등 크고 작은 사건은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13일) 저녁 7시에도 한진중공업으로 달려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진중공업,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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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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