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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을 이틀 앞둔 5월 2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파워 투 더 피플(Power To The People) 2011' 추모콘서트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을 이틀 앞둔 5월 2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파워 투 더 피플(Power To The People) 2011' 추모콘서트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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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가 또 다시 검찰 수사를 받게 될 모양이다. 보수단체들이 한 전 총리를 고발하자 검찰이 이 사건을 정식으로 배당하고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8일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엔 '국기 모독'이란다.  

검찰은 무엇을 문제삼았던 걸까. 발단이 된 건 지난달 23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2주기 추모행사에서였다. 행사장인 분향소의 바닥에는 대형 태극기가 깔려 있었고 그 한가운데 추모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전 총리는 추모의 뜻으로 신발을 벗은 채 추모비 앞에서 헌화를 했다.

당시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면서 일부에서 한 전 총리가 태극기를 밟은 것이 부적절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급기야 '종북좌익척결단' 등 몇몇 보수단체들은 "한 전 총리가 헌화하는 과정에서 태극기를 밟은 것이 국기모독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고발장을 내기에 이르렀다.

검찰이 자기 권한으로 고발 사건을 수사하겠다는 데야 토를 달 생각은 없지만 이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정도로 수사할 가치가 있는 사건인지 의문이다. 여기서 검찰 수사의 정치적 목적 따위를 거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 전 총리를 편들고 싶은 의도는 더더욱 없다. 다만 검찰이 수사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힐만큼 중대한 사안인지 한번 따져보고 싶다.  

일단, 그런 죄가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형법 제105조(국기, 국장의 모독)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하겠지만 형법에는 엄연히 국기모독과 국장모독을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여기서 국장(國章)이란 국기(태극기) 이외에 나라 문장, 군기, 국가기관의 휘장 등을 말한다. 이와 비슷하게 국기, 국장을 비방하는 것을 처벌하는 규정도 별도로 있다. 모두 국가나 국기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죄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대한민국 국기법'이 별도로 있다. 하지만 이 법은 "국기에 대한 인식의 제고 및 존엄성의 수호를 통하여 애국정신을 고양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국기의 제작·게양 및 관리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고 있을 뿐 따로 처벌규정이나 강행규정은 없다.

2010년 11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애국단체총협의회 주최로 열린 '김정일 독재정권 타도 국민대회'에 쓰였던 태극기가 쓰레기와 함께 버려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애국단체총협의회 주최로 열린 '김정일 독재정권 타도 국민대회'에 쓰였던 태극기가 쓰레기와 함께 버려져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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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모욕할 '목적'과 '행위' 모두 있어야 성립

국기모독죄를 한번 분석해보자. 우선 국기모독죄는 목적범이다. 죄를 저지를 목적이 있어야 성립되는 죄를 형법에서는 목적범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있을 때만 국기모독이 된다는 말이다. 한 전 총리가 추모 행사장에서 국기를 모독할 목적이 있었는지는 당시 상황과 그의 언행을 살펴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국기모독죄를 저지르기 위해선 국기를 '손상', '제거', '오욕'하여야 한다. 즉, 국기를 찢거나 불로 태우거나 색칠하거나 더럽히는 정도의 행위를 해야만 법조문의 해석상 모독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한 전 총리가 추모비에 헌화하기 위해 신발을 벗고 국기를 밟은 행위를 놓고 보자. 이것을 손상, 제거, 오욕에 해당한다거나 이에 버금가는 행위로 볼 수 있을까. 일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걸 판단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간혹 일부 보수단체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알리기 위해 길거리에서 태극기에 혈서를 쓰거나 펜으로 구호를 적는 행위가 한 전 총리의 행위와 비교했을 때 훨씬 더 국기를 '오욕'하는 행위에 가깝다고 본다. 그런데 그걸 법적으로 문제삼는 이들을 본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정리해보자. 국기모독이 되기 위해선 '국기를 훼손하거나 더럽힌다는 의도를 갖고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모독하는 행위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전직 총리가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헌화하는 과정에서 태극기를 밟았다는 점 때문에 국기모독으로 고발을 당했고, 이것을 검찰이 수사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안타깝다.

국기모독죄는 국기에 대한 존중을 법으로 강요한다는 점에서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죄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죄로 재판을 받거나 처벌을 받은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대학생들이 '미국 반대'를 목적으로 주한미군 부대 영내에서 성조기를 불태우다가 처벌을 받은 적은 아주 가끔 있는데, 이때 적용되는 죄는 '외국국기모독죄'이다). 

어렵게 찾은 1970년대 판례를 살펴보니 "국기에 대한 존중과 경의의 뜻이 있는 이상 (종교의) 교리상 국기에 대하여 절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했다 해서 바로 피고인들에게 국기를 모독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1975년 7월 22일 대법원 선고 74도213)는 취지의 판결이 있을 뿐이다.

2010년 6월, 브라질 월드컵 응원 모습.
 2010년 6월, 브라질 월드컵 응원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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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이 온 나라를 뒤덮던 6월, 시내는 온통 젊은이들의 물결이었다. 그때 새롭게 눈길을 끈 문화중의 하나가 다양한 태극기 패션이었다. 일부 여성들은 태극기로 치마, 스카프, 망토를 만들어 입기도 했다. 또 몸에 태극문양을 그려넣은 사람들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국기게양대에 걸려 있어야 할 태극기가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는 모습은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국기 모독으로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법도 시대를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그동안 사문화되다시피 하던 법조항들이 종종 언론에 등장한다. 대표적인 2가지를 들자면 전기통신법위반과 장례식방해죄다.

먼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처벌에 사용되었던 전기통신법.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47조 1항)는 조항을 근거로 검찰은 미네르바를 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법원의 무죄판결로 체면을 구겼다. 그뿐 아니라 결국 헌법재판소는 위헌이라는 판단까지 내리게 된다.  

민주당 백원우 의원에게 적용되었던 장례식방해죄도 물리력으로 명백하게 장례식을 훼방놓던 경우 외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던 죄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항의하던 백 의원이 장례식을 방해했다며 기소했다. 이 사건은 작년 10월 2심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졌고,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검찰이 '정치적 수사' 논란 피하려면

법률 용어 해설 : '기소'와 '고발'
기소 : 공소제기. 검사가 특정 사건에 대해 법원에 재판을 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피의자(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는 사람)가 기소되어 법정에 서면 피고인이 된다. 기소권은 현행법상 검사의 고유권한이다.

고발 : 범죄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려 처벌 의사를 밝힌다는 점에서 고소와 같다. 하지만 고소가 피해자(또는 법정대리인 등)가 하는 것이라면 고발은 고소인이나 범인 이외의 제3자가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요즘 중수부 폐지 문제로 검찰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검찰총장까지 나서서 '거악을 척결하겠다'고 다짐하는데도 왜 국민들은 검찰 편을 들지 않을까. 검찰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검찰은 거악 척결에 앞서, 시대에 뒤떨어진 법을 적용하거나 무리한 기소를 남발하는 관행부터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형사소송법에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제195조 검사의 수사)고 되어 있다. 반대로 해석하자면 범죄의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는 때에는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말이다.   

검찰의 수사 개시가 한 전 총리를 또다시 기소하기 위한 수순인지, 아니면 의례적인 고발 사건의 처리 방식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검찰이 정치적 수사라는 논란을 피해가려면 신속하고 현명하게 결론을 내리는 수밖에 없다.


태그:#국기모독, #한명숙,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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